[지금 강정마을에선 ④] 휴일도 반납하고 싸우는 주민들, 주민소환운동 돌입

정부 당국과 제주도 간 해군기지에 관한 협약서가 체결되면서, 해군기지 건설이 점점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국의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강정마을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는 벼랑 끝에 내몰린 가운데서도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마지막 분투를 기록하기 위해 강정마을로 들어왔습니다.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서 주민의 도움으로 숙소도 마련했습니다. 당분간은 집과 강정마을을 오가며 생활하려고 합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의 고달프고도 눈물겨운 소식을 독자들께 전해보고자 합니다. - 필자 주
 

▲ 간답회 홍희덕 의원과의 간담회에 주민 20여 명이 참여했다. ⓒ 장태욱
 

어린이날, 홍희덕 의원 간담회와 피디수첩 시청으로 희망의 불씨를

어린이날이자 징검다리 연휴 마지막 날이다. 도청이 휴무이기 때문에 주민들도 도청 앞 시위를 하루 중단하기로 했다. 강정마을 서쪽 인근에 있는 중문관광단지에는 관광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들었다. 이런 날은 해군기지에 대한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끼리 야유회라도 떠나면 좋으련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해군기지 싸움으로 지친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찾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주민들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동안 김태환 제주지사는 제주시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날 애향운동장에서는 보육교사들 주축으로 '해피 아이사랑 대축제'이라는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 김태환 지사 제주시 애향운동장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 장태욱
 

그런데 행사장 입구에는 어깨띠를 두른 아주머니들이 '관광객전용카지노 도입'에 관하여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명 목표치를 다 채우지 못했던지 서명을 받는 아주머니들이 서명용지를 들고 행사장을 가로지르며 서명을 부탁하기도 했다. 방정환 선생이 보면 기겁을 할 노릇이 아닌가?

더 가관인 것은 운동장 한쪽 구석에 걸려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도입'이라고 써진 현수막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이란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작년에 여론조사로 주민의 의견을 묻겠다고 선언했다가 여론조사에서 주민 과반의 동의를 받지 못해 좌절한 정책인데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버젓이 다시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 아주머니들이 행사장을 누비며 관광객 전용 카지노장을 허가해 달라는 서명을 받고 있었다. 카지노장과 어린이날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제주도의 비극은 돈이 된다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추진하는 천박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 장태욱
 

이렇듯 도지사가 밖에서 돈이 들어온다면 체면 무릅쓰고 받아먹으려고 나서고 있으니 그와 대항해서 싸우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답답함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오후에 강정마을을 찾아온 손님은 홍희덕(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이다. 홍 의원의 보좌관과 더불어 민주노동당 제주도당 강경식 위원장이 함께 마을을 찾았다. 마을회관 다목적홀에서 홍 의원과 주민들이 모여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날 간담회에는 주민 20여 명이 참여했다.

 

▲ 어린이날 기념식장에 걸린 현수막 영리법인병원은 지난 해 도민 여론조사에서 과반 득표를 실패해서 포기한 사업이다. 그런데 어린이날 행사장에 다시 '투자개방형병원'에 관한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럼 지난 해에는 도민들의 의견을 뭐하러 물었을까? ⓒ 장태욱
 

간담회에서 홍의원은 원내 의원 5명밖에 되지 않는 미니 진보정당의 한계를 솔직히 고백했다.

"민주노동당은 의원 5명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상임위도 국방위원회에는 한 명도 배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속되어 있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강정 해군기지가 각종 환경조건에 위배되지 않는지를 철저하게 묻고 따지겠습니다."

주민들도 강정마을의 상황에 대해 홍의원이 모르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주민 한 분은 강정 바닷가에 있는 연산호 군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보좌관과 홍 의원이 이를 듣고 상세히 메모하는 모습도 보였다.

 

▲ 홍희덕 의원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5월 5일 강정마을을 찾아 주민 간담회를 열였다. ⓒ 장태욱
 

"강정, 법환 인근에는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연산호 군락지가 있는데,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44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해안을 스스로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의원님이 이 점을 잘 추궁하여주기 바랍니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주민들은 가정에서 텔레비전을 켜고 문화방송(MBC)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피디수첩에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집중 보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된 피디수첩은 '제주도 강정마을, 그들은 왜 분노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14분 가령 집중 방송했다. 이를 본 주민들은 마을 주민들의 뜻이 모두 전달된 것은 아니지만, 도에서 공정하게 주민여론을 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여론조사 데이터 공개를 거부하는 것이나, 유관기관의 대표들이 모여 강정마을 내 주민갈등을 조장할 방법을 모색한 것 등이 방송으로 공개된 것에 대해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민소환운동 선언, 해군기지 투쟁의 새 전환점

연휴가 끝나자 아주 특별한 날이 밝았다. 이전처럼 연좌농성도 예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다른 날과 달리 가슴이 설레는 것은 주민들이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연계하여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을 선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회관이 북적거렸다. 주민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모여든 바람에 12인승 승합차와 15인승 콤비 버스로는 주민들을 다 수송할 수 없었다. 일부 주민들은 자가용에 동승해서 도청을 향해 떠났다.

 

▲ 농성 제주도청 앞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모여 매일 농성을 한다 ⓒ 장태욱
 

주민들은 아침 9시 40분경 도청 앞에 자리를 잡고 깃발을 흔들며 이전과 같이 농성을 시작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김태환은 폐기물', '양해각서 원천무효' 등 주민들은 모든 구호들을 총 동원하여 김태환 지사를 비난했다.

그러기를 약 40분쯤 하자 도청 앞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태환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을 시작한다는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김태환 지사의 소환운동에 동참하는 단체는 강정마을회를 비롯하여 도내 29개 단체에 이른다. 이 자리에 참여한 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김태환 지사를 소환해서 위기에 빠진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살리자고 주장했다.

강동균 마을회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강 회장의 목소리는 평소에도 우렁차지만, 이날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기자들에 둘러싸인 강 회장의 목소리에는 더 큰 자신감이 스며 있었다.

 

▲ 5월 6일 오전, 강정마을회를 포함해 제주지역 29개 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장태욱
 

"김태환 지사는 지난 시절 화순에서 5년, 위미에서 2년, 강정에서 2년을 주민갈등을 조장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강정마을 주민들은 단 한 차례의 폭력도 저지르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도지사와의 대면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도 납득할 수 없는 양해각서였습니다. 이제 우리 마을 주민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하였기에,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에 돌입할 것을 선언합니다."

시민사회단체의 주민소환운동에 대해 김태환 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본인은) "정치인이라기보단 직업공무원이라는 자세로 떳떳하고 추호의 부끄러움 없이 일해 왔기에, 오만 독선 등의 지적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소환운동을 선언한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모두 자리를 뜬 후에도 강정마을 주민들은 저녁 5시까지 도청 앞 연좌농성을 이어갔다. 무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겠다는 필자의 우려에 대해, 양홍찬 주민대책위원장은 "비가 오는 것보다는 날이 좀 덥더라도 맑은 게 훨씬 낫지 않겠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농성을 마치고 돌아온 주민들은 저녁을 먹고 다시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이후에 이어질 '소환투표 청구 서명'을 효과적으로 받아낼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해군기지 투쟁은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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