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 이야기(2)] 빙떡

▲ 제주에서 가장 맛없는 오명을 쓰고 있는 빙떡. 하지만 설명하기 힘든 그 오묘한 맛이 진짜 제주의 맛이다. ⓒ양용진

  제주의 전통음식은 대부분 한결같이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음식들의 맛 또한 독특하다. 그러한 제주 음식들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맛을 내는 음식을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 빙떡을 꼽는다. 빙떡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맛 때문인데 한마디로 아무런 맛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오묘한 그 만의 맛이 다시 중독성을 갖게 하는 참으로 독특한 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빙떡의 재료는 단순하다. 메밀가루로 만든 묽은 반죽에 무채나물이 전부다. 심심한 메밀 겉싸개와 심심한 나물 속을 조합하여 만드는 음식에서 무슨 맛을 기대하겠는가?  당연히 심심한 맛이 빙떡의 맛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 맛을 보는 사람들은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가 하고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이고 제주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 빙떡을 먹어온 토박이 제주사람들에게는 가장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고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고향의 맛으로 주저 없이 꼽는다.

10여년전 서울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시는 5~60대 고향 어르신들과 제주음식 얘기를 하는데 그분들 모두 가장 먹고 싶은 고향음식으로 빙떡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외지인 몇 사람이 도대체 어떤 맛인데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빙떡을 찾느냐고 궁금해 했는데 결국 아무도 그 맛을 바로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빙떡이란 그런 것이다. 설명할 수 있는 맛이 아니다. 그리고 한 두번 체험한다고 느낄 수 있는 맛도 아니다.  제주사람의 정서와 제주사람의 생활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빙떡의 맛을 느낄 수가 없고 반대로 빙떡의 맛을 음미할 정도가 되었다면 비로소 제주 사람이 다 되었다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빙떡의 유래는 일려진바 없으나 주재료인 메밀의 전래과정을 살펴보면 탐라가 고려 말 100년간 원의 직접 지배하에 있을 때 받아들여졌다고 하니 육, 칠백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겠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원의 관료들이 제주사람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소화도 잘 안되고 독성이 있는 작물로 알려진 메밀을 전해주었으나 제주 사람들은 메밀을 가루로 내어 소화 효소가 풍부한 무와 함께 메밀을 조리해 아무런 탈 없이 먹음으로서 원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하는데 무와 함께 조리한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메밀 조배기와 빙떡이다. 
  

▲ 빙떡. ⓒ양용진
  이후 메밀은 제주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작물이 되었다. 쌀에 익숙한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곡물이었으나 강원도와 북부지방의 산악지대와 제주처럼 돌이 많고 척박한 땅에는 더없이 좋은 작물이었다. 특히 재배기간이 길어도 100일을 넘지 않고 가뭄에 강하며 높이가 1미터도 되지 않으니 바람이 거세고 척박한 제주 땅에 이렇게 적합한 곡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거피작업이 힘들고 그로인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탁월한 소화효소를 함유하고 있는 무를 함께 섭취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우리 선조들은 보여주었고 그렇게 메밀은 버릴 것 없는 제주의 대표적 구황작물이 되었던 것이다. 주로 초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시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하여 먹었는데 주곡이었던 보리와 함께 활용도가 가장 높았던 곡식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쌀이 귀한 제주에서 쌀을 대신하여 떡을 만드는 재료로도 많이 활용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빙떡이다.  

  빙떡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무나물을 싸기 이전의 메밀전병을 ‘빙’이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국자를 빙빙 돌려가며 부친다고해서 그렇게 이름 붙었다고 말하는데 정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또한 빙떡을 ‘정기 떡’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정지(부엌)에서 부쳐 먹는 떡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보다는 제사상에 제물을 진솔할 때 밑의 받침으로 빙을 사용하면서 그릇을 의미하는 정기 떡이라 이름 붙었다는 설이 더 그럴 듯 하다하겠다.

  이처럼 독특한 빙떡이 한때 제주에서도 아주 사라져 버릴 뻔 했다.  빙떡은 평상시 만들어먹었던 음식이 아니었고 주로 관혼상제의 대소사를 치를 때 만들었던 행사용 음식이었던 탓에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국가적인 시책으로 가정의례간소화운동을 벌이면서 과거의 행사용 음식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고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국풍80’이라는 대규모 문화행사를 벌이면서 여의도에 각 지방 전통 문화를 집결시켜서 근 한 달여 동안 축제를 벌였는데 이때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공식적으로 출품이 되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 부분적으로 만들어 선보이다가 관광객들에게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여 다시 사장되는 듯 했는데 90년 후반대로 접어들면서 추억의 먹을거리가 상품화 되면서 되살아났고 이제는 제주의 모든 지역 문화 행사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빙떡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반죽은 메밀가루에 물을 섞어 장시간 치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찰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만들고 있는 빙떡을 보면 메밀반죽이 잘 안 부쳐 진다고 하여 메밀가루 반죽에 밀가루나 찹쌀가루, 계란 흰자 등을 섞어서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도청이나 시청 등 관공서의 공식적인 인터넷 사이트에까지 전통적인 방법이라면서 이러한 잘못된 지식을 게재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속을 채우는 내용물은 가을부터 겨울, 초봄까지 무가 제철이라  반드시 무채 나물을 만들어 넣는데 이때 쪽파와 소금 간 이외에는 별도의 양념을 하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무가 맛이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팥고물을 넣거나 콩나물을 소로 이용하는데 현대의 떡처럼 팥고물이 달거나 콩나물의 간을 세게 하지 않고 심심한 맛을 유지해야한다.

  빙떡은 처음 먹는 사람들에게서 맛을 제대로 평가 받기는 힘들다. 처음 빙떡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반생선을 같이 곁들여 맛을 보게 하면 십중팔구 맛있다고 한다. 특히 잘 말린 옥돔을 구워 그 쫄깃한 살코기 한 점을 빙떡위에 얻어서 한입 베어 물면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너번만 먹다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빙떡만 먹어도 그 맛을 즐기게 될 것이다. 

  요즘 빙떡은 과거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한입에 먹기 편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의 노점 등에서 만들어 팔고 있는 곳을 간혹 볼 수 있다. 가장 제주다운 음식이 좀 더 많은 곳에서 만들어 지기를 바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빙 떡의 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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