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제주 전의 특징은 소박함과 알뜰함"

  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다가오면 차례 상 준비에 분주해지기 마련인데 차례 상에 오를 제물을 만들어야 하는 주부들은 은근히 신경도 쓰이고 어떤 음식을 만들까 생각하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메로 올릴 좋은 쌀을 장만하고 갱거리를 장만하고 설이니까 떡국 떡도 맞춰두고 고여 놓을 과실도 장만해 두고 산적거리로 쓸 고기도 장만하고 나물도 색색 맞춰서 세 가지 준비하고 나면 차례 준비가 다 된 것 같은데 정작 가장 손 많이 가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제물은 따로 있다. 바로 ‘전(煎)’이다.

  전(煎)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재료를 얄팍하게 썰거나 빚어서 밀가루나 전분가루 등 곡식가루를 묻혀서 지져낸 음식의 총칭이다. 가루를 묻혀서 기름을 이용해 익힌다는 점은 튀김과 유사한 조리 방법으로 볼 수 있겠으나 기름의 사용량을 비교해 볼 때 확연한 차이가 나는데 이 점이 바로 인접한 나라인 중국, 일본의 음식과 한식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음식에는 튀김 류가 많은데 우리나라 전통음식에는 튀긴 음식 대신 훨씬 담백한 전류가 많다는 것이다. 기름이 귀하기 때문에 이를 절약하기위해 이와 같은 조리법을 이용한 것이란 시각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재료사용에 그다지 제한을 받지 않았던 궁중음식에도 튀긴 음식보다 전 류가 많다는 사실로 보아 담백함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식성에 따른 조리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 할 것이다. 

초기전 한라산의 특산물인 표고버섯은 특별한 조리과정 없이 계란만 입혀서 지져내면 그 향이 살아있는 명품전이 된다. ⓒ양용진

  이름의 유래를 보면 원래의 전은 전유어(煎油魚)혹은 저냐라고 부르는 생선전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전체적으로는 부침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겠으나 일반적으로는 부침개처럼 가루반죽에 내용물을 혼합해 비교적 크게 지져내는 음식을 ‘부침’이라 부르고 내용물에 가루와 계란물을 입혀 조그맣게 부쳐내는 것을 ‘전’으로 부르고 있는데 양반의 반상에는 반드시 오르는 반찬의 하나이고 제례를 비롯한 집안 대소사에 떡과 함께 반드시 만드는 귀한 음식이며 각 지방별로 특산 부침이 있을 만큼 중요하고 친숙한 먹거리다.

  언뜻 떠오르는 전류를 나열해 보아도 김치전, 감자전, 고추전, 호박전, 빈대떡, 굴전, 조개전, 두부전, 배추전, 새우전, 두릅전, 달래전, 부추전, 파전, 야채전, 표고전, 송이전, 느타리전, 양파전, 배추전, 육원전, 장떡, 북어전, 깻잎전, 메밀전, 연근전, 오징어전, 옥수수전, 재첩전, 홍합전, 콩비지전, 부꾸미, 화전, 해물파전, 고사리전. . . . . . 누구라도 수십가지의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임에 틀림없다.

  제주에도 제주에서만 부쳐 먹었던 전 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평상시에는 잘 부쳐 먹지 않았으나 집안 대소사에는 반드시 전을 부쳤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정확치 않으나 일상식과 비교하여 제례용 음식으로서 비교적 손이 많이 가는 타지방의 조리법과 동일한 방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보아 제주로 유배 온 유교학자나 종교인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타 지역과 다른 독특한 생활환경 때문에 전을 만드는 식재료도 매우 독특한 것들을 이용한 제주만의 전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북부기전, 초기전, 고사리전, 느르미전, 미수전, 메밀전 등이 대표적인 제주의 전이라 하겠다.

북부기전 허파의 쫄깃한 식감이 독특한 별미인데 보통 간전과 함께 만들어 차례지낸후 음복할때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다. ⓒ양용진

  ‘북부기전’은 돼지의 허파로 지지는 전이다. ‘북부기’란 허파를 이르는 제주 사투리로 흔히들 “화나게 한다!”는 표현을 제주도 사투리로 “북부기 데쌈져!”라고 하는데 “데쌈져”는 “뒤집는다”의 제주도식 표현으로 직역하면 표준말의 “부아가 치민다!”와 같은 말이 되는 것이다. ‘허파’의 고전적 표기가 ‘부아’이고 제주도식 표현이 ‘북부기’인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북부기전은 제주사람들의 대소사에서 빠지지 않는 돼지를 추렴 한 후 그 부산물을 다양하게 활용한 예를 보여주는 것인데 내장으로는 수애를 만들고 장간막은 몸국에 넣고, 허파와 간은 전을 부쳐서 내장 한 점도 허투루 버림 없이 모두 사용하여 참석한 사람 모두 나누어 먹도록 배려했다는 점이 돋보이는 음식이다. 우선 허파는 다른 부산물과 함께 돼지를 추렴하여 삶아낸 국물에 넣어 익혀 낸 후 식혀 두었다가 얄팍하게 편 썰어 메밀가루를 묻힌 후 계란을 풀어 묻혀서 번철에 지져내면 된다. 그런데 북부기전이 다른 전과 또 다른 독특한 점은 조선시대 궁중음식가운데 이와 똑같은 음식이 있다는 것이다. ‘부아전’이라 하여 재료명이 나타나 있으며 제조법 또한 똑같다. 궁중의 전은 그 자체로도 즐겨 먹었으나 우리가 흔히 ‘신선로’라고 알고 있는 ‘열구자탕’을 만들어 먹을 때의 내용물로도 활용된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국토 최남단 변방의 서민들의 음식가운데 궁중음식과 똑같은 음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초기전은 말 그대로 초기버섯을 전으로 지져낸 것을 이른다. 표고버섯의 사투리인 초기버섯은 예로부터 한라산의 특산물로 진상품이었지만 비교적 서민들도 채집이 가능한 임산물이었기 때문에 미리 채집하여 말려두었다가 물에 불려 계란을 입혀 전을 부쳐내 차례상에 올렸다.  타지방의 표고전은 표고 갓 속에 다진 고기 등을 넣어 만들기도 했으나 제주 사람들은 그저 계란을 묻혀 지져낸 소박한 전이었다.

  느르미전과 고사리전은 한라산 먹고사리의 특유의 맛을 잘 살려낸 전이다. 특히 느르미전은 제주산 쪽파와 고사리의 궁합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전으로 동래파전에 버금갈 정도의 지역 특산물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느르미전 어울릴것 같지 않은 제주산 쪽파와 한라산 먹고사리가 독특한 맛을 보여주는 제주의 대표 전이다.ⓒ양용진

  실파와 고사리를 나란히 늘어놓아 사각으로 부쳐내는 이 전은 100% 로컬 푸드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며 제주산으로서 품질을 인정받는 두 가지 재료가 만나서 조화롭게 만들어낸 독특함은 문화적인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비교적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은데 제주의 향토음식점은 시도를 하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외지사람들에게 이 느르미전을 선보이면 고사리와 쪽파가 어울릴 줄은 몰랐다는 반응과 함께 투박해 보이는 다른 전통음식에 비해 시각적으로도 타지방의 파전을 축소시켜놓은 것 같아 거부감이 없고 파전의 맛인 듯 하다가 고사리 특유의 맛이 어우러져 맛있다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느르미전도 분명 조만간 시내 곳곳에서 제주의 대표 전으로 선보이게 되리라 확신한다. 

  고사리전은 매우 단순하다. 아마도 차례상에 제물을 홀수로 진솔하기위하여 구색으로 지져냈거나 물자가 워낙 귀한 시기에 제례용으로 부쳐낼 재료가 귀하여 만들어낸 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계란을 아이 손바닥만한 크기로 얄팍하게 지지면서 고사리를 몇가락 얹어 익혀내면 되는 재료도 조리법도 간단한 음식이지만 그래서 더 정겨운 음식이다.

미수전 머리와 꼬리가 따로없다하여 붙여진 이름과 그 내용물의 알뜰함이 제주사람다운 귀여운 전이다. ⓒ양용진

  미수전은 삶은 돼지고기를 다져서 두부, 파 등으로 양념하여 계란 지단으로 감은 작은 빙떡과 같은 모양인데 이 또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전은 알뜰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돼지고기 산적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고기를 다져서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미수전이라는 이름은 머리와 꼬리가 똑같은 전이라는 재미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세우리전, 메밀전 등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전과 함께 최근에 도입된 양채류인 브로콜리, 고추, 양파, 단호박, 파프리카 등 제주 특산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류도 함께 상품화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본다면 또 하나의 제주다운 문화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기 나름대로의 스토리와 식품으로서의 우수성과 기능성 등을 부각시킨다면 이것 또한 작지만 소중한 제주의 경쟁력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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