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MD와 동북아(하)] '동북아 균형자'의 조건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우선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21세기 동북아 질서는 물론이고 세계 질서의 최대 변수라고 일컬어지는 미중관계 역시 대만 및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역내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일본 관계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독도, 역사 교과서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도 심상치 않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동북아 냉전의 한 축이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전래 없는 감정 싸움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러일전쟁 100주년을 맞이한 러시아와 일본 역시 북방 4개섬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주목할 점은 2005년 들어 일본이 동북아 갈등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대미 관계를 제외하고는 남북한,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 모두 갈등 관계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미 관계는 강화되면서 동북아 국가들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인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들이 영토, 과거사, 안보 등 민감하고도 근본적인 문제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갈등은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이와 같이 동북아 질서가 새로운 격변기에 접어듦에 따라 그 중심에 있는 한국의 딜레마도 커지고 있다. 일단 노무현 정부는 취임 3주년을 맞아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하면서 "한미일 삼각동맹은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대북한, 대중국 군사 행동의 자율성을 증대하고자 추진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구체화하듯 국방부는 가칭 '동북아정책과'를 신설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최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중국이 누구보다 한반도 평화안정을 바라는 만큼 한중 군사교류를 한일 수준만큼 강화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 같은 노무현 정부 움직임에 대해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은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며 견제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마치 한미관계와 한중관계가 '제로섬 게임'에 있는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면서 안보위기론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할 것인가?
 
보수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방위비 분담금을 삭감하려고 하는 것이 한미갈등의 핵심 요인이라고 진단한다. 이것이 갈등의 요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어이없게도 그 비판의 대상은 한국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로 향하고 있다.
 
다시금 강조할 필요도 없이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과 중국에 대한 선제적 무력 사용 태세를 갖추기 위함이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은 패권 전략의 일환으로 이러한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과는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중국과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인 것이다.
 
한국의 언론과 정당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협상에 눈을 부릅뜨고 감시와 견제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비판의 대상을 노무현 정부로 삼음으로써 대미 협상력을 스스로 저해시키고 있는 것이 과연 국익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위비 분담금 역시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주한미군의 병력수 3분의 1을 감축하고 있고 기지수도 대폭 축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한미군의 변형은 한국 방어는 한국군에게 넘기고 미국은 대북·대중 군사작전과 대테러 전쟁 등 '딴 일들'을 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다.
 
그런데 방위비 분담금은 이전 규모의 약 7%인 600억원 가량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 밖에 못 줄였냐'고 비판해도 모자랄 판에 보수파는 황당하게도 "왜 줄였냐"며 정부에게 따져 묻듯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균형자'의 조건

 
물론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및 남방 삼각동맹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들고 나온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논란에 여지가 많고 그 만큼 치밀한 검증을 요한다.
 
'동북아 균형자'가 과연 21세기 한국의 외교안보 지표로서 타당한 것인지, 내용과 실력을 갖추기도 전에 정치적 선언부터 하는 것이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지, 북한 및 주변국들과의 관계는 얼마만큼 고려하고 있는지, 그리고 '동북아 균형자'론과 근본적인 긴장관계에 있는 한미동맹과는 어떻게 균형을 맞춰나갈 것인지 등,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국내 정치를 너무 고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으로도 연결되는 지점들이다.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를 추구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그 수단에 대한 치밀한 고려이다. 한국이 군사력을 통해 균형자가 되겠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는 등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동북아의 불안정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북아 균형자'와 양립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동북아 균형자'는 어설픈 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말하는 '동북아 균형자'의 첫 번째 조건은 '균형자'라는 표현의 재고(再考)라고 할 수 있다. '동북아 균형자'의 목표가 이 지역의 패권 경쟁을 예방하고 갈등을 조정·중재하는데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데 있다면, 굳이 균형자라는 표현을 사용해 국내외의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야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미동맹의 '유연화'이다. 이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주한미군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주한미군의 병력뿐만 아니라 군사력 전체가 감축되어야 하고, 군사적 임무 역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유지로 한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및 미사일방어체제(MD)에 제한을 두는 것은 한미동맹 유연화의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작전계획 수립 권한 등 평시작전권의 완전한 환수 및 전시작전권의 환수를 통한 종속적인 한미동맹 구조의 개선도 중요하다.
 
세 번째는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 및 평화체제의 조속한 구축이다. 무엇보다도 핵문제의 조속하고 평화적인 해결이 선결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정책의 전환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대북특사 파견 등 남북대화의 복원을 통해 한국의 입지와 역할을 강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6자회담에 대한 중장기적인 구상도 중요하다. 6자회담은 동북아 6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유일한 정부간 대화라는 점에서 동북아 구상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자칫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제도화해줄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 6자회담의 의제도 동북아 안보 문제로 넓혀나갈 수 있는 방안을 지금부터 모색해야 할 것이다.

※ 기사를 보내주신 정욱식님은 오마이뉴스의 통일-평화문제 담당기자이며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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