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문학카페] 22 까뮈-그르니에 서한집달이 뜨지 않는 밤은 습관처럼 시집을 읽는다. 시집 속에서도 달이,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은 편지를 읽는다. 누군가의 따뜻한 음성이 못내 그립기 때문이다. 천성 외로움을 타는 탓도 있겠지만 분명 지쳐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럴 때 음악을 들으라고 하지만 아직 나는 말 없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하기야
21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바퀴벌레 한 마리 방바닥에 벌렁 뒤집혀 있다. 평소 같으면 신문지 뭉치나 신고 있던 실내화라도 벗어 내리쳤을 것을, 불현듯 그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 내려다본다. 아마도 카프카의 작품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떠올랐을지 모른다. 멕시코 농민혁명세력 사이에
20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드디어 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멀리서 검은 구름이 말발굽소리를 죽이며 서쪽으로 물러가고 머리를 풀어헤친 나무들이 태풍에 동강난 제 곁으로 그늘을 드리웁니다. 주변 도로에 세워진 깻단 비닐들이 끄나풀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그 옆을 가로질러 가던 고양이 한 마
19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린 들판풍경에서조차 건초에서 후~욱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시원한 느낌의 사진으로 바탕화면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에 저장해두었던 사진을 꺼내어 보다보니 시원한 듯 조심스러운 듯 내 마음에 흐르는 선율 하나가 있다. 비오는 날, 대나무
7월도 하순으로 접어든다. 장마가 걷혀가면서 어느덧 매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며칠 눅눅한 방에 갇혀 지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밀린 빨래에 마음이 안달 난 여느 주부들처럼 밀린 일감에, 처리해야 할 문서들에 머리는 한사코 쉬질 않으니 말이다. 자꾸만 시계에 눈이 가고, 쌓아둔 책에 눈길이 치인다. 쉬면서도 쉬질 못하니 이게 일중독이 아니고 무엇인가
17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국지성 소나기로 지열이 잠시 누그러진 거리를 타박타박 걷다 공원 벤치 위에 털썩 앉아본다. 이런 여유가 얼마만인가.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없이 신발을 벗은 채 벤치 위로 다리를 세우고 앉아 본격적인 방관자의 자세를 취해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은 보폭을 가늠하기엔 너무 빠르고,
16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의 「아미엘의 일기」 장맛비가 잠시 그치고 폭염이 밀려온다. 숲 자락을 씻고 지나가는 비구름이 저 산을 넘을 때쯤 텃밭 고추는 푸른 독기를 품은 채 맵싸하게 익어갈 것이다. 자꾸만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일으키며 산 아래 가부좌를 한 바위처럼 허리를 세워본다. 지금 내 생의 시계추는 어디쯤 가리키고 있
15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접힌 물살에 깃들어 흐르다가 물살이 양날을 펴는 순간, 깃털은 몸에서 떨어져 나와 이정표를 잃고 말았다. 삶과 몸이 동떨어져 있는 순간 포착된 현재는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고 있다. 그림자 안에서는 깃털의 갈라진 틈새가 확연히 드러난다. 제 마음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이렇듯 선명히 보일 때가 있다.
14 스탕달의 '적과 흑'교정에 산딸나무가 피었다. 몽올몽올 꽃봉오리가 맺히는 모습을 여러 날 지켜보았다. 비오는 날이 잦아서 꽃이 피기도 전에 봉오리가 떨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뭇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연은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법, 6월의 햇살에 산딸나무 꽃이 뽀얀 웃음으로 활짝 피어 오가는 이의 눈을 즐겁
13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월이다. 저절로 엄숙해지는 달이다.초등학교 때, 오후 5시면 태극기가 하강하고, 나는 그 앞에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를 속으로 되뇌었던 기억이 있다. 6월이면 그 생각이 자꾸 난다. 이것은 필경 필자만의
12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아침 출근길에 길옆을 보니 보리가 누릿누릿 익어가고 있다. 뉴스를 통해 청보리축제니 뭐니 하는 소식도 들었건만 눈앞에서 익어가는 보리 내음을 이제야 맡게 되다니……. 시간의 흐름도 감지하지 못하고 사는 하루하루가 문득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주말에 시간을
11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며느리에게나 보낸다는 봄 햇살이 제법 따갑다. 멀리서 바라보는 5월의 바다는 옥쟁반에 은어 떼를 풀어 논 것처럼 사운대며 반짝거린다. 바다에 은어 떼가 살리는 없지만 바다로 부서지며 수면을 비집고 들어가는 햇살은 과연 숙련된 요리사의 회 뜨는 솜씨와 흡사하다. 이런 날 세상사 다 잊고 한나절
10 우르스 비트머의 , 5월이다. 바람은 온화해졌고, 살가워진 바람을 타고 민들레 홑씨들이 나풀나풀 날아다니고 있는 풍경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들도 어느 곳엔가 뿌리를 내려 민들레 가족 일가를 이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 모레는 어린이날, 그리고 어버이날이 돌아온다.
9 김훈 '칼의 노래' 파군봉을 다녀왔다.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데도 소나무 사이에 질끈 동여맨 줄에 의지하면서 혹여 넘어질까 전전긍긍한다. 마음이 급할수록 걸음은 더디어 그동안 몸을 아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고나 할까. 소나무 숲 우거진 야트막한 산 아래 마을과 집이 오밀조밀 보이고, 저 멀리 바다는 아무 일이 고요하고
8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4·11총선이 끝났다. 막말 파문을 일으킨 후보는 낙선하고, 성추행, 논문 표절을 했다는 후보는 당선되는 등 이번 선거의 결과 또한 정책 대결 또는 후보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 지역 대립 구도로 막을 내렸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더해진다. 그렇다고 아예 희망을 놓아버릴 일은 아니다
7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목련꽃 그늘 아래 서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는다" 와 같은 노래가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은 봄날이다. 사방에서 풍겨오는 꽃향기에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고, 지나가는 새들도 나뭇가지에 깃들어 꽃에 물든 시를 노래하고 있다. 꽃과 바람과 시와 노래에
6 루쉰의 「아Q정전」흔히 쓰는 말 중에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너무 엄청나거나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다'는 뜻이다. 주로 황당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살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기도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거나, 애를 써서 쓴 글이 자
5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늘 그렇지만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을 비롯해 교사와 학부모들까지도 새로운 긴장감에 사로잡히는 게 사실이다.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심어주어야 하는 교사들의 마음도 사뭇 설렘과 기대감,
지난 수요일은 '화이트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날이었다. 거리의 제과점 앞에는 온갖 장식을 한 사탕바구니가 지나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랑의 마음을 받은 이들은 한 달 후인 3월 14일에 사탕으로 고마운 마음을 되갚는다고 한다.
3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국제사회의 혼란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연일 보도되는 ‘시리아 사태’는 충격을 넘어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정권 퇴진 운동으로 시작된 사태가 이미 7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하고, 정부군을 피해 레바논으로 탈출하는 양민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