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라도 씹어먹을, 한라산이라도 옮길, 가시낭에 걸어져도 잘 때인 젊음, 참으로 좋을 때다. 이번에 내가 찾은 책방 카페 “그건, 그렇고”는 젊음이 가득한 책방이었다. 이 봄날,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초록을 길러내는 연둣잎처럼 책방지기도 화사했다. 여행에서 제주에 반한 김중범 씨는 6년 전 게스트하우스를 시작으로 제주에 정착하고, 젊음의 길을 돌고 돌아 이제 오롯이 “그건, 그렇고”의 책방지기가 되었다.“책방을 출산하다”책방지기가 여행에서 만난 제주는 바다도 하늘도 너무 아름다웠다. 어디에 간들 하늘이나 바다가 없으랴만, 김
삐악삐악, 어미 닭의 뒤를 졸졸 따르는 병아리가 금방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처럼 봄 햇살이 화창하다. 책방 근처에 차를 세웠을 때, 노란 튤립이 병아리 대신 날 반긴다. 유채밭을 스치며 책방 앞에 도착한 내 마음도 노랗다.하지만 왜일까? 분명히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눌 땐 유쾌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는 자꾸만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란 노래를 읊조리고 있다. 우울해서가 아니다. 일어서고 싶지 않았던 책방 ‘깊이 보는 서점 인터뷰 interview’(이하 인터뷰)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산뜻한 내부, 게다가 한라산과 바다를
모처럼 방랑 기사 돈키호테를 떠올려본다. 기사 소설에 미쳐 세상을 떠돌며 악을 처단하고 약자를 구원하는 스토리에 꽂혀서 그런 걸까. 매번 실패와 좌절로 끝나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가지만 방랑을 멈추지 않았던 돈키호테의 모험이 그리운 날이다. 그래서인지 돈키호테 북스를 찾아가는 길은 즐거웠다. 책방지기 김보경 씨는 휴일이었음에도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주셨다.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표정에선 친근함마저 감돌았다.“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건”2017년 9월, 오픈했지만 책방은 힘들었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웹툰 작가 복희라는
지구를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지구는 자전을 하고아득한 우주로 음악이 퍼진다 외삼촌이 내게 준 지구 레코드 이제는 지구가 된 외삼촌 나는 지구 레코드를 듣는다 기억은 지구의 위성이다 깊은 밤, 다리 밑으로 떨어진 외삼촌 나의 지구는 오토바이 헛바퀴에서 자전을 하고 있었다 음악은 45RPM에서 33RPM으로 서서히 시들어갔다 병원에서 마지막 자전을 한 외삼촌 나는 지구 레코드를 쓴다 지구를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지구는 자전을 하고아득한 우주로 음악이 퍼진다- 현택훈, 지구 레코드 전문오후 일곱 시, 이미 캄캄한 밤이다. 그래도 내 마음은
지난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이제 9만 명에 이르렀다. 처음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도 불안했다. 그러나 이제 적응이 되어감인지 조금은 무뎌졌다. 그런데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적응 안 되는 것이 있다. 예기치 않았던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다.분명히 인터넷에서 책방이 영업 중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곳에 책방은 없고 공사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줄줄이 어긋났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땅거미 녀석이 슬금슬금 거미줄을 치는 시간이다. 할 수만 있다면 쉭, 쉭
노모의 칠순잔치 부조 고맙다며후배가 사골 세트를 사왔다도막 난 뼈에서 기름 발라내고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단골 정육점에 물어보니물어보나 마나 암소란다새끼 몇 배 낳아 젖 빨리다보니몸피는 밭아 야위고 육질은 질겨져고기 값이 황소 절반밖에 안 되고뼈도 구멍이 숭숭 뚫려 우러날 게 없단다그랬구나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 온 어머니저렇듯 온전했던 한 생을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거였구나그 불면의 충혈된 동공까지도 나 쪼아 먹고 살았구나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거미가 오줌을 누었대.근데큰일 났어.지나가던 지네가그 오줌폭탄에혼쭐이 났대.거미는그날 이후로거미줄을 치고밖으로 나오지 않는대.그럴 수가 있니.아무 곳에서나생각 없는 일 하면안 돼. - 김정희, 오줌폭탄 전문 -사시사철 쪽빛 바다에 발을 담근 서우봉이 빙그레 웃으면서 여행객을 품는 함덕리, 하지만 코로나19가 모든 이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며 서우봉도 쪽빛 바다도 쓸쓸하기만 하다. 동시전문책방 “오줌폭탄” 책방지기 김정희 씨도 그 족쇄에 묶여 여러 날 책방 문을 닫고 있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어렵사리 만나기로 한 날, 날씨는 화창했
登高南嶽擧深觴(등고남악거심상): 남악(南嶽)에 높이 올라 대폿술 마시고川上歸來興更長(천상귀래흥경장): 냇길 따라 내려오니 흥이 절로 새로워라滿眼黃花如昨日(만안황화여작일): 들국화는 만발하여 예와 같으니一樽仍作兩重陽(일준잉작양중양): 한 동이 술이 두 중양(重陽)을 이루네.이원진 목사, 〈무수천가찬시(無愁川佳讚詩), 탐라지〉무수천가찬시(無愁川佳讚詩)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효종 때 제주목사를 역임하였던 이원진 목사의 저서 「탐라지(耽羅誌)」에 실린 한시다. 탐라지는 1653년(효종 4년) 이원진이 편찬한 제주도 제주목 · 정의현 · 대
흔히 카페라 하면 목이 좋은 곳, 즉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요즘은 주택가에서도 작은 카페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심심찮은 풍경을 파고든 동네 책방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발길을 떼기가 두렵다.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든 코로나19가 칼날을 겨누기 때문이다. 책방지기님께 양해를 구했다. 기꺼이 휴일을 할애해 주셨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도이동에 위치한 “금요일의 아침, 조금 + 한 뼘 책방” 책방지기 조은영 씨를 만났다.“2021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 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의 하여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12월 중순, “아무튼 책방”을 찾아 모처럼 구제주로 들어갔다. 아무튼, 아무튼… 운전하는 동안 입안에서는 자꾸만 책방 이름이 맴돈다. 어느 순간, 하여가의 초장과 “아무튼”의 고리가 맞물렸던 것일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느닷없이 난 이방원의 하여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조선 건국을 앞두고, 얽힘의 논리로 화해와 조화를 요구하고 바라면서 정몽주의 진심을 떠보고
청춘의 무대에서 여행이란 연극을 한창 즐기던 때 만난 제주, 연극의 주인공인 이애경 씨 시야엔 정제되지 않는 날것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턱턱, 숨이 차오를 정도로 신선한 매력을 발산하며 이애경 씨더러 ‘어서 오라.’고 유혹했다. 그 청춘의 무대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짝사랑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자신이 나고 자란 곳 서울을 등지고, 2015년에 제주 사람이 된 책방지기이자 작가인 이애경 씨를 만났다. “아름다운 화합을 그리며”애월읍 중부 내륙 소길리에 자리한 책방 섬타임즈. 의외로 공간이 넓다. 작은 콘서트는 물론 세미나라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초등학교 6년에 중학교 3년을 다녔고, 두 아들마저 9년씩 다닌 곳이다. 게다가 현재 내가 사는 지역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 책방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다. 지나며 얼핏 간판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관심을 끌어당기지는 못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숨겨진 것 같은, 애월읍 하귀2리 “카페동경앤책방(이하 동경 책방으로 칭함)”의 김효진‧서은지 씨 부부를 만났다.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인 라엘이 읽어보라면서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들고 왔다. 책방을 탐방하면서 인연을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비로소 제 본색이 드러나는 나뭇잎, 이제 곧 이들도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뒹굴겠지. 봄이 되면 다시 연둣빛 잎과 함께 와자자 꽃을 불러오겠지. 분해될 거 다 분해되면 우리도 저 단풍처럼 고운 빛깔이 될 수 있을까. 여기,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까지 다다랐던 사람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가면을 분해하고 다시 기어올랐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유채꽃이 필 봄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삶에 유채꽃 필 무렵을 기다리며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 유채꽃머리 책방지기인 이진우 씨를 만났다.“우연한 만남, 책”한라대학교에서
푹푹 찌던 여름을 소리 없이 밀어내는 가을, 가을은 힘이 참 세다. 살랑살랑 다가온 바람이 책 곁으로 우리를 불러 앉힌다. 가을 분위기 완연한 시월에, 지금까지와 달리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월산 정수장 교차로에서 좌회전하고, 다시 외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외도천 줄기와 도근천 줄기를 끼고 앉은 도평동, 심심찮게 지나다니는 길이다. 그런데 3년 동안 책방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도대체 난 눈을 뜨고 다니는 걸까, 감고 다니는 걸까.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심 냄새에 도서관 같은 분위기가 풍긴
산길을 간다, 말없이호올로 산길을 간다.해는 져서 새 소리 그치고짐숭의 발자취 그윽이 들리는산길을 간다, 말없이밤에 호올로 산길을 간다. (후략)- 양주동 시 ‘산길’ 일부 -으레 큰길 혹은 마을 안에 있을 거로 생각했던 책방은 어디에 있을까. 장수물을 지나고, 마을 중심지에 다다르기도 전 내비게이션은 좌회전하란다. 인가가 별로 없다.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만의 상상을 앞세우며 달리는데 어디선가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바리톤 윤치호의 ‘산길’이란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나도 몰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으로 까딱까딱 운전대를
하늘과 땅, 산과 물을 연결하는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건 책이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조금은 수그러드나 싶었던 코로나19가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고민 끝에 일주일만 쉬기로 했다. 순식간에 여유가 찾아든다. 그 여유를 붙들고, 광령2리 그림책방&카페노란우산(이하 노란우산으로 칭함)을 찾았다.광령2리, 옛 이름은 ‘이신굴’로 유신동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신굴’의 한자 차용 표기로, 조선성종 때 이주자들이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 마을이지만, 시대에 따른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책방 입구, 나
장마 떠나고 몇 걸음이나 갔을까. 한림읍 상명리 ‘책방 小里小文’으로 향하는 길, 아침 볕살이 제법 야무지다. 책방 입구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연 순간,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근처 양돈장에서 풍겨오는 냄새다. 이 또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일 터, 시큰둥했다. 그래도 불쾌한 냄새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까짓 냄새쯤은 묻어두고, ‘책방은 이쪽이에요. 어서 오세요.’ 돌담 위 수세미가 노랗게 웃으며 책방 쪽을 가리킨다. 골목 정면으로 보이는 피자 가게가 화려하다. 낯선 이국땅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왼쪽 건물 처마 밑 돌담 벽에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내가 어릴 때 부모님께선 “과납”이라고 불렀다. 알려진 바로는, 이곳에 사람이 머물기 시작한 건 1300년 경(고려 충렬왕)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마을을 이루며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건너편 금악봉 때문이라고 여겼다. ‘납읍’,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금산공원. 사람들은 돌무더기뿐인 이곳에 나무를 심었다. 금악봉을 가리고자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액막이로 나무를 심은 것이다. 물론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때 심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며 사람들의 발길을
화분에 꽃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덩그러니 하나의 화분에 꽃을 키우는 것보다 여럿이 어우러져 있을 때 꽃이 훨씬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하가리 연화못에서 동남쪽 200m 위치에 또 하나의 마을 책방이 생겼다. 얼핏, 시골에 책방이 하나 더 생기면 ‘힘들겠다.’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화분이 여럿일 때 꽃이 더 잘 자라듯, 책방 또한 어우러져 있을 때 더 활기 띠지 않을까. 주제넘은 서점의 김용숙 씨가 발 벗고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장마의 끄트머리를 따라가는 길, 1억 5000만 킬로미터 저 멀리서 퍼붓는 태양의 열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옛 이름은 알더럭으로 고려 시대부터 화전민이 모여 살던 곳이다. 주민 대부분의 주 소득원은 감귤 농사지만, 양배추·수박 등의 채소류를 경작하는 주민들도 적잖다. 다시 말하면, 마을에 있던 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을 정도로 시골이란 뜻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손 놓고 바라보지 않았다. 기어코 학교를 살려냈다. 그런가 하면,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약 1만㎡ 면적의 연화못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연화못이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건 마을 주민들이다.언제부턴가, 이곳에 제2의 인생을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