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표에 다리(大里)라고 써 있습니다. 이국의 이정표, 이국의 사람들 그 곳에서 고향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내려놓고 싶은 삶의 짐에중년의 지친 몸과 마음만이 아닌생의 계단을 하나씩 오를수록 점점 멀어져가는 또렷한 유년의 그리움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어나고 자랐을 뿐만 아니라고단한 삶 속에 기도하는 순수 영혼풍요 너머의 자유로운 영혼 그러나 차
배가 항구에 다다르면 안전하지만그 역할은 끝이나 그 생은 무의미할 것입니다.집을 떠나는 것 어쩌면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쿤밍에 도착해유명세의 석림을 가려하는데가는 방법을 찾고 또, 도중에 일행을 잃어버려 반나절을 보냈습니다.길들여진 일상의 때를 벗고여행에 익숙해지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가봅니다.무작정 목적지를 향해 가는 흥분만 앞세울 것이
가끔은 일상에 길들여진다는 생각이 듭니다.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 역시 오늘 같을 것이고이런 무탈한 일상이 머리로는 감사한 것임을 알지만가슴은 지루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이럴 땐 떠나는 것이이 번 여행은 중국 윈난성 쪽으로 정했습니다.구름도 쉬는 남녘의 이국 티베트로 가는 차마고도의 길목속내로, 예스런 향취에 마음의 위안과 정화를 얻을 수 있을 것
장마 때 물이 새서처사님들 몇 분이 오셔서 지붕을 고쳤습니다.비가 온 뒤라 햇볕이 따가운데다익숙히 않은 일을 하시느라 고생들이 많았습니다.며칠 뒤, 솔잎차가 생각났다며 더위를 피해 차를 마시러 오셨습니다.지난 번 고친 곳을 돌아보며 모두 흐뭇한 표정이었습니다.그분들 가운데 한 분“스님, 제가 그날 일을 해보고 자신이 붙어시골집 대문을 고쳤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밤바다를 벗들과 걸었습니다.까만 바닷가에 등대불빛 조명에 춤을 추는 파도의 하얀 포말어둠의 정적과 조화로운 파도소리…건장한 사내가 숨을 고르며 뛰어가고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발등을 적시는 물결 길 따라 하염없이 걸어간 뒤편 모래언덕에서 몇 쌍의 연인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시계의 끝에 진지하고 다정한 여인이 보였습니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 7백년 잠들었던 고려의 혼 깨워한 서린 하얀 넋 피어나고 못 다한 붉은 설움 토해냅니다.생명의 전설을 간직한 연꽃 화장세계에 사바세계에 다리를 놓아 피었습니다.잃어버린 하나의 고국 지금 나는 저 잠들었던 세월만큼의 거리를 두고이국에 있는 듯 합니다. UFO를 쏘아 올려 우주와 소통을 바라며내 소망보다 더 높은 두 조국의 철망그 보다 더
삶의 길에는 늘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과 저것이라는 선을 긋고 취해야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별합니다.요즘은 장마철이라마당에 풀 뽑기가 좋습니다.얼마나 풀이 잘 자라는지.도구를 빌릴 것도 없이 길게 자란 풀의 밑동을 잡고 팔뚝에 힘을 주면가슴속 찌꺼기로 남아있던 번민마저 딸려서 쑥 뽑히는 듯합니다.그렇게 풀을 뽑다보니 마당에 경계
하염없이 비가 옵니다.푸른 등짐을 지고 하늘땅을 쉼 없이 걷고 또 걷습니다.이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미얀마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철나던 때가 생각납니다.그곳에 생활의 바탕은 ‘무상’입니다.우리는 삶이 무상한 것인 줄 다 압니다만실은 모르고 있습니다.그곳에 불자들은 주말이 되면 절에 가서 청소와 같은 이러저런 봉사를 합니다.그리고 오후
지금 이대로 계속 가면 어디가 나올까.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바람을 거슬러도 보고바람을 따라도 봅니다.그래도 결국 익숙해진 지금의 길 그 끝을 보기 위해 걷습니다.이렇게 우리는 매일 매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알 수 없는 미래 앞에신을 찾기도 하고 불안으로 떨기도 하고기대와 희망을 걸기도 합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는 기대와 용기
보리가 익어갑니다.누런 물결이 들판의 바람을 따라 흔들리면나의 마음도 따라 흔들거립니다.유년의 보리나라에서‘삐-- 삐-’ 길고 짧은 보리피리를 불며학교를 가던 그 아이를 기억하십니까?고령의 분들은 배고픈 절박함이 생각나시겠지만내겐 마냥 즐거운 시절이었습니다.보리를 수확하고 나면 짚단으로 ‘눌’을 쌓습니다.어른들은
붓다께서 최초의 절 죽림정사에서 안거를 나고 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인도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왕의 신하가 와서 이웃의 작은 나라 왓지국을 침공해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여쭈었습니다. 붓다는 그 신하에게 직접 답하지 않고 제자 아난다와 ‘왓지국 사람들이 번
저 숲 어디선가 뻐꾸기 울어여름이 왔음을 알립니다.저는 때를 알아떠나고 돌아옵니다.나는 저를 통해야 그 때를 압니다.철모르는 나는 게으르기 한이 없어 새 아침이 와도의지의 근육보다 육신의 무게만 더하며어제에 오늘을 포개 놓을 뿐입니다.저 숲에는 열정이 있습니다.등나무와 칡넝쿨이 서로 얽히어새 숲을 향해 가한 열정으로 갈등합니다.건강한 생존의 모습입니다.나는
오월입니다.따사로운 햇살 등에 받으며조금 이르다 싶긴 하지만 콩을 심었습니다.비가 오고 순이 났습니다.흙먼지 날림을 방비하고자 앞마당에 심었는데새들 특히 멧비둘기가 자주 방문하기에보기도 좋고 지가 먹으면 얼마나 먹나 나뒀습니다.그런데 싹이 난 후가 문제였습니다.숨어 있던 씨앗들마저 모두가 노출되어꿩들까지도 겁 없이 코앞 방문턱까지 접근해서 며칠 째를 쫓고
노인네 한 분호젓한 호숫가를 걷고 있었습니다.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얼굴로따사로운 햇살만큼이나맑디맑은 물빛만큼이나정갈한 모습으로노인네 한 분월든 호숫가를 걷고 있었습니다.그 오솔길과 지금은 표지석만 남은 작은 오두막 주인은 길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하였지만걷고 있는 노인의 나이보다 곱절도 넘었다고 합니다.그래서 강원도 산골 오두막 짓고마음의 벗을
비가 옵니다.고사리 장마라지요.들은 더욱 푸르러질 것이고농부들의 일손도 바빠지겠습니다.작은 연못을 만들고어설퍼 보여소박한 돌탑을 쌓아보았습니다.특별한 바람이 깃든 것은 아니지만세우고 나니뭔가 바랄 게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저의 삶도그런 것 같습니다.큰 의미를 담아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지난 모든 것은 소중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잘한 일보다 잘 못한 게 많기에
지난 겨울내린 눈이 꽃과 같더니이 봄에는 꽃이 도리어 눈과 같구나.눈도 꽃도 참(眞)이 아니거늘어째서 내 마음은 찢어지려고 하는가.만해 한용운스님의 견앵화유감(見櫻花有感)이라는 시입니다.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이렇듯 봄꽃을 보면 강인한 투사의 가슴도 찢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얼굴도 환합니다.꽃을 보니꽃의 마음을 닮은 게입니다.휘파람새
단순하게 살아라.간소하게 생활해라.만족할 줄 알아라.그 노인의 잠언입니다.어디 그 분만이겠습니까.열거할 수 없을 만큼 우리가 마음에 담고 있는 분들이 남기신 말입니다.저는 아득합니다.저의 생활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강원도 산골 오두막 보다야 많지 않겠습니까.넉넉하지 않다는 생각도 많은 것입니다.그럼에도 가난하고그럼에도 부족한 게 하나 둘 헤아려 집니
노인네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이렇게 온 나라가 숙연해졌습니다.연일 정쟁과 참혹함이 뉴스시간의 반 이상을 채우며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로암담한 번민과 삶의 회의가 흐르는 가운데한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가우리네 걸음을 멈추게 하고우리네 거친 호흡을 고르게 하고 우리네 가닥 없는 생각을 하나의 사유에 머물게 하고성찰하며 참회하고 감사하며 기도하게 합니다.그 분의 입멸
봄이라 믿었던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누가 준 아픔도 아니건만파릇한 냉이를 캐서 끓인 된장국 진한 향에 마음을 빼앗겼던 터라자연의 일을 쉬 인정하기가 힘이 듭니다.누군가에게 받은 맘보다누군가에게 준 맘이 더 큰가 봅니다.봄이 와서 설레고 눈이 와서 시린 게 아니라우리 마음이란 것이 참 요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어쩌다 제가 있는 처소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듣는
안개가 자욱하고 돌풍이 붑니다.어제와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고어떤 분은 고사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하고어느 마을에선 마을 굿도 하였다고 합니다.흐린 하늘 넘어선 밤에는 보름달도 뜹니다.모두 오는 것을 맞이하러 분주합니다.참 기쁜 일이고 함께 충만한 기운을 나눌 때입니다.이렇게 우리들 가슴이 흥분과 긴장되어 있을 때 쓸쓸한 뒷모습으로 떠나가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