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촌 막다른 길 오후 해가 지나간다독거노인 안부 묻는 이웃돕기 박스 하나그 누가 안고 왔는지 온기 아직 남았네요못 보고 사는 것쯤 이젠 제법 길 났는데찾아올 낌새 없던 내 자식 다녀간 양황노인 닫힌 가슴이 볕살 바라 열리네요오래된 형광등에 불빛이 깜빡대듯밭은 숨결 풀어가며 한 발짝씩 다가서는여기도 봄이 오느라 바람 죽지 부푸네요- 이남순 전문-영국의 소설가 더글라스 노엘 애덤스는 그의 소설 에서,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들에 대한 궁극의 해답은 42라고 했다. 그러
붓이 닿지 않는 곳도 그 의미를 살려내듯진한 눈물 없어도 한 슬픔이 젖어서말 없는 소멸의 길에 빗방울이 스몄다흔적을 찾고 보면 그 안의 모든 것이한 생을 말하다가 문득 멈춰 서 있는데배경은 보이지 않고 바람 또한 스쳐갔다때로는 주인으로 어떤 때는 손님으로 홍제천변 빈자리를 살펴보던 백로처럼씻은 듯 맑은 하늘에 빗금 하나 그어 놓고-김삼환 전문-2020년을 마무리하려 한다. 코로나 19가 온 지구를 덮쳐 버린 해. 그 한 해가 가고 있다. 피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2020년 365일을 무사히 살아낸 사
그 해의 첫눈이 내리고 난 이후엔함박눈 쏟아져도 눈은 그냥 눈이듯빈은 첫, 복사되지 않은오직 하나의 표정겨울 달 눈빛 같은 차고 맑은 눈물 맛염색한 말의 가죽 덧대면 흔해 빠진다공들인 시의 집에서도 금세 낡고 닳는 말마스크 쓰고 있어 읽을 수 없는 마스크견고한 틀 하나로 뭉뚱그리기 전에원본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파일명은 빈문서-서연정, 전문-숨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밖으로 열려 있는 모든 창문을 닫고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내가 세상의 한 가운데 서 있어야 할 때다. 좀 더 깊숙이
실반지를 꺼내 놓고 손과 발 문득 보네하나는 드러내고 하나는 늘 감추는한몸에 나고 자라도 그늘진 이끼의 발짧고 무딘 발가락을 손가락에 대보네모두 다 길었다면 먼저 잡으려 다투고밑에서 받쳐주는 일 서로 미뤄 놓쳤겠지사는 가락 달라서 헛뿌리로 견뎌온 길치켜세워 힘을 주는 뚜벅이 발끝에서미더운 하나를 골라 발가락찌 끼워 주네- 이숙경, 전문뒤에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반짝 반짝 빛나던 시기를 건너왔거나, 아직 그 빛나는 시기조차 가져보지 못한 것들, 어디 가서 목소리 한 번 크게 내보지도 못하고, 묵묵히 눈만
물질 작업에도 은퇴가 있으시대요칠십 년 물질 생활 퇴출을 당하던 날울 엄마 흐르렁대며 바다처럼 우셨대그날부터 울 엄마 섭지코지 찾으신대갱이발 문어발 뒤뚱뒤뚱 걸음으로일출봉 뜨고 지는 해 등짐으로 지신대내 다린가 미역 다린가 마른 뼈 만지시며오늘도 장판을 펴고 섭지 바다 파는 엄마구십 년 뒤척인 바다에 주름살이 더 깊다- 고혜영, 전문내게도 해녀였던 시어머님이 계시다. 눈 뜨면 밭으로, 해 뜨면 바다로 나가시던 분이다. 미역철이면 미역을 건져 올리고, 소라철이면 소라를 잡으셨다. 태풍보다 먼저 오는 너울성 파도
노란 봄배추 꽃에게 말하지 않겠네청초함 사랑 했노라고설 킨 생 살아가는 담쟁이에게도 말하지 않겠네끈질긴 생명력 사랑 했노라고하늘미나리에게도 말하지 않겠네물 갈망하던 그대 사랑했노라고늙어 휘어진 감나무에게 말하지 않겠네그대 참으로 사랑 했었노라고구름 머물던 향나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네은은한 그대에게 사랑 보냈노라고늘 푸르던 소나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네변치 않은 그대 사랑 했노라고먼동 물고 오던 새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겠네아침 노래 진정 사랑 했노라고그대들 거기 그대로 있기에 떠나가는 나는, 눈시울만 촉촉이 적신다네-박흥순,
반쯤 남은 가을이노을 끝에 달랑 걸려남은 반쪽더 빨갛게물이 드는 저물녘가만히올려다보는볼도 붉게 젖습니다.-윤현자, 전문-며칠 동안 참 분주하게도 살았다. 해야 할 일들은 꿈속까지 따라와 나의 정신을 흔들어 깨우고, 나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서 몽롱한 채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하나의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저녁. 자신이 외면된 시간동안에도 묵묵히 나를 기다려 준 시집에서 를 읽는다. 동동거리던 시간 동안 흔들렸던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상처입고 상처 입히던 언어의 가시들도 천천히 풍경을 읊는
보름은 당신의 오래된 우상당신이 쓸어내리는 사시사철살아서 손금선 넘어 건네받은 명줄 아흔 아홉 조각 꽃잎들로 뼈를 맞춘 열두 달 버거운 하늘이 저려온다 만월滿月,달빛을 신으로 모신 어머니의 눈썹경전經典 바람을 베끼는 지난한 필사 먼 곳은 잘 있다는 풍문이 흩날린다떠받들던 하늘 그림자가 휘어든다북쪽 하늘 끝자락 움켜쥔 오래비 고봉밥에 수저를 꽂는다골 깊은 아흔 아홉 골 벼랑에 영혼꽃이 핀다 버려야 가벼운 호젓한 슬하 매운 이력의 끝을 읊는달빛 한 점 한껏 몸을 낮추어생의 절기를 이어나간다-고영숙 [만월(滿月)] 전문-후대의 자손들은
태어나 말 배운 뒤엄마를 반대하다가코 밑 수염이 생겨난 뒤로아버지를 반대하다가신발의 문수바꾸지 않게 된 뒤로부터독재를 반대하다가배 불룩 나온 뒤로부터아내를 반대하다가나 어느새 머리칼하얀 중노인이 되어버렸다-이재무, 전문-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제목과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작가 이름만 기억이 나는 경우가 있고, 작가의 이름도 잊고 제목도 잊었는데 내용만 또렷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 경우의 의미를 다 파악할 필요는 없지만 내게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이재무 시인이다.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아침 여섯 시어느 동쪽에도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유독 성산포에서만해가 솟는다고 부산필거야아침 여섯 시태양은 수만 개유독 성산포에서만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무슨 이유인가나와서 해를 보라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해를 보라-이생진, 전문- 지인의 책장에서 오래된 시집을 발견했다. 다행히도 같은 시집이 두 권이어서, 지인은 흔쾌히 그 중 하나를 내주었다. ‘바다와 섬과 고독의 노래’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 이생진 시집이었다. 1987년 3월 10일 초판을 발행하고
어쩌자고 기다리지 않은 너는 닥치는지창 밖 네온불빛 온 몸을 휘감아든다희망의 봄빛을 밀쳐낸다어둠만이 엉겨든다삼백예순날을 헤치고 견뎌온 끝이 여기인지향방 없이 가고 또 가는 참이라는 수렁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그러안을 수 없다그럴싸 달근한 언사 여린 너를 길들이고구절양장 토해내어 만장으로 내걸어도천칭을 손에 든 저 여인도가리지 못한 진실-김연희, 전문-춘추시대 제나라의 영공은 아내가 남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게 유행이 되어 제나라 여인들이 남장을 즐겨 하였는데, 이를 탐탁하지 않게 여긴 영공이 관리들에게 명하여 이를 금
거친 활자 언어들이 호우로 쏟아진다높낮이 가리지 않고 몰염치로 파고드는주의보 읽기도 전에수위 넘는 제보들산 하나 허물도록 핏대 세운 모다깃비장마도 질긴 장마 시류를 끌고 간다묻힌 숲 단서를 찾다 반성문을 쓰는 밤반듯한 궁리들이 거름인 양 엎드렸는데가진 자 욕심 앞에 남은 건 얼룩 자국참 오래 잊고 지내던 책의 서문 펼친다-최성아, 전문-장마가 참 오래 간다. 바쁜 와중에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날씨가 어떻게 변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유독 이번 장마가 인식되는 이유에는 코로나19 영향도 컷으리라.
죽도록 일만 하다 잡혀 죽은 두더지다저리 쉽게 잡힐 건데왜 깊숙이 내려갔나어둡고 딱딱한 땅속 길 있을 리 없는데주인 위한 그 노동이 죄 아닌 죄가 됐나강철이 된 언 땅까지괭이질로 터널 뚫던잠시도 쉼 없는 생은 차라리 꽃이었다언제나 당하는 건 제일 아래 계급이지뭘 더 뺏으려고술 감옥에 가둬놓나두더지 굵직한 몸이 미라로 앉아있다-변현상 전문-변현상의 시는 날것의 냄새가 난다. 그의 길은 휘거나 돌아가는 일 없이 직선적이다. 한 번 목표가 정해지면 곁눈을 두지도 않는다. 앞뒤를 재거나 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는 걸
들끓는 햇살들의 한여름 대낮처럼빛을 건넌 그림자가 오래도록 선명하다안과 밖 나의 경계가 까닭 없이 흔들린다내 생을 끌고 가는 그것은 무엇일까금강 같은 신념인가 구름 같은 약속인가생각이 생각을 안고 한참을 망설였다-김민정 전문-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경계선을 지워가는 것인가. 선명하게 그어졌던 나와 세계 사이의 경계, 나와 나 사이의 경계, 세계와 세계 사이의 경계. 모래 먼지 같은 시간이 지나고 발자국처럼 남겨진 생각들이 까끌거리다 어느덧 보면, 조금씩 무너져 가는 경계선. 내 안에 내가 들어와 있고, 나인 듯 내가 세
잠들기 전 생각한다, 그가 잠들었을까일어나며 생각한다, 그도 일어났을까물든 잎 바라보다가물들고 싶은 아침모든 것의 모든 것인 눈물의 항아리은빛 물결에 닿는 바람의 푸른 입술어디쯤 멈춰 섰을까먼 산머리 해거름 녘때 없이 생각한다, 눈 시리게 치는 물결오색 분수 속으로 함께 솟구쳐 오르는 꿈구름이 내려앉을 때훨훨 날아오르는 못물-이정환 전문-사랑한다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의 시작이라던 누군가의 말을 인정한다. 우주의 모든 주파수가 한 곳으로 모이고, 아주 작은 파장에도 일희일비하며 세상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드는
시간이 흘러 흘러 당신이 늙어지면손끝이 마르고 씨방이 마르고나 또한 늙어 늙어서 남은 시간 빤히 보이는 날씨주머니 다 비우고 쏟아놓은 말뿐인데그 말 단물 다 빠지고찐득찐득 질긴 사랑만이 남아최후의 발끝에 달라붙을 때이 먼 길 오느라 수고했노라마주 잡으면 다시 불꽃이 일 것 같은마른 손으로 서걱서걱 볼 비비며토닥토닥 삭정이 같은 등 두드리며우리가 함께 늙어가까운 곳도 먼 곳도 분간하지 못하고오로지 마주 보는 얼굴만 그렁그렁 넘칠 때꽃조차 힘이 세져 좀처럼 꺾이지 않고천신만고 끝에 꽃을 꺾어그대 귀 뒤에 꽂아주리라청춘의 기억 같은 꽃을
저 힘차게 파닥이는 생명을 보아라덧붙이거나 빼거나 늘 그대로 있으면서조용히 혁명을 예감하는깊고 넓은 저 아름다운 사랑을 보아라온갖 목숨 꾸밈없이 키우며버려진 대로 갈라지지 않고건강하게 한 혈맥으로 흐르는저 밑바닥 백성의 마음들을 보아라마른 이에게 가슴 열어 나누고믿는바 노여워 살을 일으키고도 곧평정을 되찾아 비밀하나 없이어두울수록 빛나는 양심저 우주적 진리를 보아라멀리 혹은 가까이서 가닿지 못하여 앓는 사람아-김경훈, 전문-중산간 마을에서 태어나 처음 바다를 인식했던 일곱 살 정도였던가... 그 때의 바다는 나를 쉬지
철썩뺨에 파도가 쳤다 생각하기로 했다다시 한번 뺨을 향해 달려오던 파도는옆으로 꼬꾸라졌다고름이 부풀어 터질 듯한 바다게들처럼 줄지어 선 배들은며칠째 포구에 묶여 정박 중이고기름때 덕지덕지 묻은 아버지 등 너머바람에 요란스럽게 부딪치는 술병들도며칠째 마루에 정박 중이다바다도 아빠도 나도모두 아픈 밤이었다- 허유미 전문-삶의 목적이 행복에 있다면 그 행복을 충족시켜 주는데 가장 필요한 조건은 가족이 아닐까. 파도가 몰아치는 날 고래 뱃속 같은 골목을 돌아다니면서도 서로에게 등대가 되어 주었던 자매[자매], 늦게까지 일을 하고
햇살 자박자박 방으로 걸어 들어온다텔레비전 안의 사람들 재잘거리며빈 방을 휘돌고할 일을 마친 청소기여전히 바쁜 세탁기오늘은 너무 평화로워묵은 것들 다 비워내도아프지 않을 것 같은 휴일넣기만 했을 뿐오래도록 비우지 않은 가방에서낡은 메모지 뚝! 떨어진다토사물 같은 취중의 말들바닥과 허공으로 널뛰던 이야기들흔들리던 볼펜 끝의 기억담아두기만 했던핏줄 드러나는 말, 말, 말들하나 둘 후드륵 떨어진다이제는 그저 빛바랜 종이를 닮은스쳐간 인연들 사이사이구겨져 있던 것들을 펼쳐 들어본다실핏줄 촘촘히 박혀 시리기만 한 민낯낡은 메모들 쓰레기통에
물 싸민 해영헌 모살물 들민 널른 바당열 여덟에서 마흔까지 토산리 젊은 사름덜향사로 모이랜 허난 줄레줄레 간 겁주그 사름덜 모살판에 끗어당 무사 죽여불미꽈잊혀지질 안 헙니께, 동짓돌 열 아흐렛날곱닥헌 처녀덜 따로 심어단 어떵 해분 얘긴입 종강 말쿠다토벌 갈 거매 지서로 모이랜 허난세화리 사름덜 어이쿠! 이거 이제 살아질로고나나흘치 쏠이영 촐래 고심 짊어졍 가신디모살판에서 오꼿 죽여분댄 헌 말이 무슨 숭시꽈어떵 잊어붑니까 동짓ᄃᆞᆯ 열 일뤳날경만 헌 게 아니라 다리에 총 맞아 살아난 사름기멍 ᄃᆞᆯ으멍 집이 와신디또시 심어강 죽여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