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제주여성과 그들의 삶이 젖어있는 문화적 발자취를 엮은 이야기로, 2009년말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펴냈습니다. 『제주여성 문화유적 100』은 2008년에 이미 발간된 『제주여성 문화유적』을 통해 미리 전개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필진들이 수차례 발품을 팔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력이 깃들어 있습
성산읍 신천리는 성산읍의 14개 마을 중 첫 마을로 천미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신천리의 설촌은 1609년(광해군 원년) 남쪽 바다로 들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천미연대가 설립되면서 연대를 관리하는 사람들과 신풍리 하천리에서 바다밭을 일구겠다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형성되었다. 처음엔 현(玄), 고(高), 최(崔) 씨가 많이 살았다.1915년에
제주도 동쪽 끝에 유명한 섭지코지와 태평양을 품고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하는 마을 신양리가 있다. 이곳의 경치는 성산일출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비경 중 비경이다. 설촌된지 100주년이었던 2004년에는 섭지코지 입구에 설촌기념비도 세웠다. 처음에는 고성리 사람들이 1894년부터 내려와 바닷일을 하면서 살다보니 점점 가호 수가 늘어나 1933년에 고성2구로,
수산리 올레모루하로산당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9-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수산1리, 수산2리, 고성리, 오조리, 성산리, 신양리 여섯 마을의 본향당신이다. 지금은 난산리와 신양리는 따로 떨어져 나가 별도로 하고 있으나 수산리에서 파생된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상시에는 신당 문이 잠겨 있어 안을 볼 수가 없다. 당집 안에는 나무인형을 신체로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탑은 구좌읍 상도리 해녀박물관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곳은 연두막 동산으로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해녀들의 2차 집결지로서 상징성이 큰 장소이다.1930년대 일제는 전 국민 전시동원체제 시기로 엄청난 인력 수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그 당시 조선 민중들은 맥을 못 추고, 일제에 의해 힘없이 끌려가는 형상이었다. 그럴 때 제주섬에서 해녀들이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은 제주4·3사건 당시 토벌대의 토벌작전을 피해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모여 지내던 굴이다. 그러나 굴은 토벌대의 손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지고 말았다. 1991년 처음 굴이 발견되었을 때, 제주4·3사건 당시 희생된 유해들이 가지런히 누워있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보여주는 부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두
갯것할망당은 어부들을 전담하는 해신당이다. 정월에는 만선(滿船)을 소망하는 어부들이 오색 깃발이 잔뜩 달린 깃대를 이곳에 가져다 놓을 때도 있다. 이곳에 좌정하고 있는 여신은 ‘들어오는 배 나가는 배 모두가 위하는 어물(魚物)에 대한 영험이 좋은 여신’이다(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2007).이 당은 원래 평대리 갯마리와 세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