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국제자연보호연합(ICUN)이 아마미오시마, 도쿠노시마, 오키나와 북부 및 이리오모테 섬의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정식 결정될 전망이다. 오키나와 섬 북부의 후보지인 약 7700 핵타르의 숲은 생물 다양성의 핫스팟으로 불릴 만큼 독특하고 풍요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오키나와의 산과 숲을 각별히 사랑해 온 여성 사진가가 있다. 올해 80세가 되는 카네시로 준코는 대학 시절 등산부에서 활동했으며 그 후로도 오키나와의 산뿐 아니라 대만의 옥산과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까지 올랐다. 고교 교사를 퇴직한 후,
지난 번 글에서 필자는 홍콩의 ‘지역주의’를 언급하며 처음에는 진보적인 범좌파적 도시 운동 속에서 생겨난 그 언설이 이후 역설적으로 보수적인 우파적 이데올로기에 점차 지배되고 그것이 오늘날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트렌드’가 복잡한 요소를 수반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지만, 그것이 정말 불가피한 것인가? 이는 중요한 질문이지만 간단히 대답할 수는 없다. 아마도 우리는 지역주의를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저항의 유일한 가능성으로 보고 '거침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전시되는 오키나와·제주…인류관과 산업박람회오키나와 근대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류관(人類館) 사건’이다. ‘인류관 사건’이란 1903년 일본 오사카 권업박람회 전시장이었던 학술 인류관에 류큐인, 조선인, 아이누인 등이 전시되었던 일을 말한다. 일본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류큐인과 조선인, 아이누인이 함께 ‘전시’되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1907년 도쿄에서 열린 권업박람회 수정관에서도 조선인 남녀 한 쌍을 전시한 일이 알려지면서 당시 조선에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박람회에서 인간을 전시했던 것은
도쿄 올림픽에 대해 지지하는 통신사가 4월에 실시한 일본 국내 여론 조사에서는 39.7%가 중지, 25.7%가 재연기라고 회답했다. 70% 가까이가 개최를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일본 정부는 코로나19가 만연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각지에서 121일간 성화 봉송을 전개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도 5월 1, 2일 이틀간 200여 명이 100m씩 달려 성화를 봉송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일본 조직위원회는 희망의 길을 이어가자는 캐치프레이즈를 한다. 그러나 이 성화는 정말로 ‘희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1964년 도쿄 올림픽이
동아시아 각지의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돌아보면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전임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승리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세계는 또 다른 사이클로 접어들었다. 세계화 이후 포퓰리즘 폭동, 미중 두 제국의 관계가 갈수록 긴박해지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새로운 냉전이 형성됐다. 과거에는 중국의 세계시장 진출을 지원함으로써 경제가 좋아진 후에 민주적 개혁을 단행할 것으로 믿어졌다. 그 결과 중국의 강력한 전쟁 늑대 외교가 대만과 홍콩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신장과 티베트의 인권 문제와 최근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군사기지 건설 반대 운동,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동아시아 곳곳에서 일어난 반핵 운동 등. 지난 10년간의 동아시아 사회운동은 토지와 생활공간, 경제적 분배의 모순을 둘러싼 대립을 계속하면서 첨예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영향력 증대와 개입해 들어오는 지배가 일으키는 불안과 저항 등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에 초점을 맞춘 움직임도 있다. 후자는 최근 홍콩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 개혁을 목표로 한 '우산 운동'이 종료된 지 약 1년 후인 2016년 이후 홍콩에서는 '로컬리즘'과 '홍콩
1. 말 없는 말들을 듣는 일제주의 4월은 꽃 핀 자리마다 눈물이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피는 꽃인데, 73년이나 지났으면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무산 시인이 노래했듯, 그해 사월 피어났던 꽃들은 “단 한 번만 피는” 꽃들이었다. “다시 피는 꽃은 없고”, 다시 사는 생(生)은 없다. 사월이 아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영선 시인이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겠지만’이라고 말했던 것은 어찌 보면 그해 사월 사라진 이들이 끝내 하고 싶었던
춘분을 맞은 오키나와의 낮 기온은 28도까지 올랐다. 바다와 초목의 푸르름이 생명의 빛을 발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은 그러나 오키나와와 제주에 해마다 되풀이되는 상(喪)의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제주의 1948년 4월 3일, 오키나와의 1945년 3월 28일 이후 섬이 송장으로 뒤덮인 처참한 기억은 지금도 각 섬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아픔으로서. 전쟁 체험자들에게 적어도 편안한 잠을 청해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이 오키나와의 현실이다. 한때 원수지간이었던 미일 양군은 동맹
미얀마에서 군부독재의 광풍이 불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을 가로막고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혔지만,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군인의 총은 시민들의 신체를 직경하고 있다. 목숨을 잃은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있어야 민주주의의 봄이 올 수 있을지 암담한 상황에서도 미얀마 국민들은 한결같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염려와 안타까움 또한 점점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 대만C-LAB예술은 한 거울처럼 여러 시대에 있어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1947년 중국 쓰촨에서 온 예술가 황롱찬(黃榮燦)이 2.28사건 발생 후에 대만 각 지역을 방문해, 목각 판화 '무서운 검사-대만 2.28 사건'을 만들어 수난자에 대한 인도적 연민을 드러난다. 대만 그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로 황롱찬이 이 작품을 상하이로 밀수해 1947년 4월 28일에 발간된 '문회보(文匯報)'에 리쥔(力軍, Li Jun)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다. 그 후에 일본 지인에게 맡아 가나가와현립 근
진상과 표류에 의해 촉발된 만남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제주와 오키나와(류큐)의 교류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475년(세조3년)에 풍랑을 만나 류큐에 표류한 제주 사람을 조선으로 송환했다는 기록부터 1891년(고종 28년) 제주에 표류한 오키나와(류큐)인을 돌려보내도록 했다는 기록까지 제주와 오키나와의 조우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류큐 어선이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에 표류했다거나, 류큐의 사신이 조공을 바쳤다는 사실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오키나와는 제주, 나아가 조선의 시야에서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수
많은 동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키나와에서도 설은 중요한 민속 행사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후 1872년 12월에 그레고리력으로 이행을 포고하고 국가적으로 ‘근대’의 시간에 참가했지만, 사람들의 심신에 깊이 박힌 생활의 리듬은 쉽게 덮어쓰기 할 수 없었다. 자연으로부터 소외되는 대중 소비 사회화의 흐름에 있어도 다행히 아직 오키나와에서는 음력의 시간축이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다. ‘오키나와’라고 묶어서 말해보자면, 음력에 이뤄지는 민속행사는 섬마다 다르고, 게다가 같은 섬 안에서도 마을마다 다르다. 섬과 각 마을이라는 소우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위기상태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입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1940, 철학자)2019년 12월 31일 이후, 우리 세계는 전례 없는 변화를 겪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이 지구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쳤다. 2020년에 1년 동안 맹위를 떨친 후,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폐렴은 중국 우한에서 전 세계로 그리고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1억 명의 사람들을 감염시켰고,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1980년대 초반 제주에서 표준어 시범학교가 지정, 운영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학교에서의 표준어 교육은 강압적이었다. 그 당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사투리’를 썼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았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체벌이 예사였던 시대라, 호되게 매를 맞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제주에서의 표준어 교육은 80년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1960년대 제주도교육위원회가 발간한 '교육제주'라는 잡지에는 표준어 교육에 대한 논의들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까지도 학교 현장에서 ‘표준어 교육을
2018년 12월 말, 나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오키나와로 돌아오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이트 앞에는 혹한의 반도를 벗어나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새해 휴일을 보내려는 한국인 가족 동반자가 여러 쌍 있었고 기내는 가득 차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왕래를 할 수 없는 지금은 꿈같은 기억이다.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앞으로 갈 곳을 어떤 곳이냐고 부모에게 묻는 듯했다. “감사합니다는 일본어로 뭐라고 해?” 부모님께 배운 대로 '아리가토'하고 반복적으로 발성하는 그 울림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감사의 말을 먼저 기억하고 싶다는 한국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의 평화누리공원에는 바람의 언덕이 있다. 그 언덕에는 거대한 대나무 인간들이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최평곤의 작품, '통일바라기'이다. 그의 작품들은 대나무를 쪼개서 긴 선재를 만들고 그것을 얽어서 거대한 인간 형상을 만들어 야외공간에 세우는 설치작업이다. 선으로 볼륨을 만드는 그의 설치조각들은 DMZ 경계선을 시작으로 포천 산정호수, 서울 용산가족공원, 대전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김제 벽골제, 순천만국가정원, 제주도 알뜨르비행장 등 전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장소의 서사를 끌어들인 인간
한때 동양의 진주라 불리던 아름다운 도시가 2019년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변했다. 2020년 정부가 방역을 명분으로 각종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믿기 어려웠다. 21세기 문명화된 홍콩에서 인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단 말인가. 모두 ‘의심할 점 없음’으로 분류하고 종료된다. 가해자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인가? 이것이 2019년 '반송중(反送中)' 운동 이후 홍콩의 실정이고, 지금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칼럼의 주제인 오키나와, 제주, 대만과 뚜렷한
오키나와 작가로는 처음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던 소설가 오시로 다쓰히로(大城立裕) 씨가 2020년 10월 27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오시로 다쓰히로는 194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마타요시 에이키, 사키야미 다미, 오시로 사다토시, 메도루마 슌 등 오키나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오키나와문학의 거장이다. 아쿠타가와 수상작인 ‘칵테일 파티’를 비롯해, ‘신의 섬(神島)’ 등 다양한 작품을 써왔다. 그의 문학세계는 오키나와를 넘어 동아시아, 나아가 새로운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열어왔다고 평가받는다.오시로 다쓰
2020년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사망한 지 50년을 맞은 해이다. 살아있다면 그는 95세에 이르렀을 것이다. 조숙한 천재로 불리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며 문단을 초월하는 작가로 늘 세간의 주목을 받던 인물이 자위대 주둔지에서 대원들에게 궐기를 촉구하며 격문을 띄운 끝에 할복자살한 게 1970년이다. 근년, 그의 행동의 의미를 재고하는 시도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미시마와 도쿄대학 전공투(전공투는 1960년대에 나타난 대학생들의 반체제 운동 조직체)와의 공개 토론회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어 화제가 된 것도 그 현상의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인간 개별과 인류사회는 문명사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수렵과 채취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던 시대와 농경을 통하여 자연의 제한적인 조건에 맞서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던 시기가 있었다. 근대 이전까지 인류사회는 자연의 품 속에서 그럭저럭 순응하면서 살아왔지만, 기계와 전기, 석유, 플라스틱 등 산업사회의 등장과 급속한 변화를 맞이했다.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근대산업사회의 개발논리는 자연과의 공존보다는 자연을 파괴하고 인공의 문명을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고, 그 결과 인류사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