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따르는 삶, 불행인가? 행복인가? 최근 검찰 고위직인 전·현직 검사장이 쇠고랑을 차고 청와대 고위직이 비리 의혹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걸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싶다. 만일 부모 잘 만나 좋은 대학 나오고 고시 패스해서 소위 잘 나가는 자들의 무리에 끼어 있었다면 나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 지금껏 온전했을까? 이 나라의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자’라고 하지 않던가? 1945년 정부수립 이후 70여년 동안 각종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간 정치인, 고위...
누가 이 사람을 ‘정치 초짜’라 하는가? 일본의 막부시대에 세 영웅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투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이다. 흔히 정치학이나 행정학에서 이들의 리더십 유형을 다음과 같이 비교해서 설명한다.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다고 죽여버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도록 만들어보려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대렸다.” 물론 비유적인 설명인데, 오다 노부나가 리더십의 특징은 결단력, 도요토미는 예지력, 도쿠가와는 인내력이라 할 수...
이스라엘·요르단·이탈리아 성지 순례기(聖地 巡禮記) 성경을 열 번 이상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부럽다 못해 존경스럽다. 나는 성경을 한 번 반, 곧 1.5번 밖에 읽지 못했지만 대강 감이 잡힌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장대한 역사가 펼쳐지는 ‘대하 드라마’이고, 신약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행적을 그린 ‘휴먼 드라마’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드라마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제주화북교회(담임목사 강은철) 성지순례단의 일원이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6.5.16....
K형.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우리가 소년시절에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고 문득 형이 그리워져서 펜을 들었어요. 어언 50여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네요.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90대의 철학자 김형석이 “인생에서 어느 때가 가장 좋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65세 쯤”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문학평론가 김시태는 65세에 교수직을 은퇴하고 나서 4.3소설 「연북정」을 썼지요. 그는 “문인에게 정년퇴임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지금이 가장 행복한 인생의 황금기”라고 했어요. K형, 60대가 되면 좋은 게...
보도에 따르면 술 마시는 책방(책바: Book+Bar)이 서울 마포구·서대문구를 중심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다. 한 직장인은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긴 아쉽고, 그렇다고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어울리고 싶진 않은 날 이곳을 찾는다. 술과 책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했다. 책방 주인은 “위스키를 마시면서 살짝 취한 상태로 시를 읽고 가벼운 맥주를 마시면서는 소설을 읽으라”고 추천(?)한다. 책바의 등장은 몇 가지 점에서 기성의 사고체계를 뒤집는다. ‘술은 여럿이 어울려서 취하게 마시는 것...
이런 군인이 있다면 미사일도 두렵지 않다#1.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세계가 시끌벅적하다. 김정은의 무모한 전쟁놀이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서른 한 살(?)의 철부지 동키호테가 벌이는 위험한 도박으로 세계가 떨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필자는 ‘때가 차매…’라는 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천방지축, 구제불능 독재자의 마지막 발악은 몰락이 가까워졌음을 예감케 하는 것이다.#2. 1972년 신병훈련소를 졸업하고 백골부대(3사단)에 갓 도착한 나는 전입신고식에서 사단장 박정인 장군의 훈시를 들었다. 훈시 도중 갑자기...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무릇 군자는 만 권의 책을 읽고(讀萬卷書) 만 리를 걸은 후(行萬里路) 세상을 논하라!” 명나라 때 서예가 동기창이 한 말이다. 군자는 독서와 여행으로 지식과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뜻이다. 맞는 말인데 필자는 여기에다 교만인우(交萬人友: 만인의 벗을 사귀라)를 덧붙이고자 한다. 독·행·교 이 세 가지는 다 필요하지만 특히 교만인우는 정치인, 행정가, 학자, 예술인들에게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생각한다.정치인과 행정가는 민의를 수렴하여 현...
을미년, 한 해가 또 저문다. 올해도 제주도민에게 최대의 과제요 숙제인 4·3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민사회의 가장 큰 갈등요소인 이 문제를 제쳐둔 채 화해와 상생을 운위하는 건 연목구어에 다름 아니다.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진영논리를 넘어선 새로운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 한 해결은 요원하다. 진영논리의 함정에 빠진 이데올로기란 집단이기주의이고 배타주의일 뿐이다. 진영논리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기 위해서는 해묵은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4·3논의의 초점을 ‘과거에서 미래로’, ‘제주에서 세계로’ 옮기...
알고보면 여행은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에 버리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길 위에서 행복을 줍는다. 낯선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술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생의 윤활유와 활력소가 되고 때로는 접착제와 방부제가 되기도 한다. 나의 내면이 더 풍요로워지고 썩어가는 영혼을 치유키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한 잔의 술과 단 한 번의 사랑에 취하듯이 나는 한 순간의 여행에 취한다.□오! 달콤한 밀월여행오끼나와 시인협회의 초청으로 제주PEN클럽(회장 박재형) 회원 16명과 동반자 3명 등 모두...
추석 이틀 전. 허름한 식당에 파나마모자를 쓰고 한껏 멋을 부린 노인과 후줄근한 점퍼 차림을 한 70대 노인이 들어선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말 저말 하는 노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게 무슨 관음증처럼 재미가 쏠쏠하다.박 노인 : 낼모레가 추석인데, 뭐 생각나는 게 없어?김 노인 : 없어…. 어릴 때 생각이 나긴 하지. 그땐 명절과 제삿날을 손꼽아 기다렸어.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으니까.박 노인 : 또 하나 있어. 운동회와 소풍 가는 날.김 노인 : 명절을 앞두고 이발관과 목욕탕이 사람들로 득시글거렸지. 목욕...
전기 작가 프레드 캐플런에 의하면 링컨은 셰익스피어와 바이런을 즐겨 읽은, 작가와 시인을 사랑했던 대통령이다. 그는 수많은 문학적 산문을 남겼고, 그의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의 바탕에는 이렇듯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길러진 문학적 감성과 창의력이 있었다.링컨은 평생 학교를 일 년도 다니지 못했지만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올바른 신념을 키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책을 살 돈이 없었기에 걸어서 다른 마을까지 찾아가 책을 빌려 읽은 이 가난한 소년에게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품성을 가르쳐 주었다. ...
사진쟁이 김영갑의 삶과 예술▲ ⓒ KIMYOUNGGAP GALLERY DUMOAK우연히 마흔 아홉에 세상을 떠난 김영갑의 사진과 글이 담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게 되었다. 단숨에 책을 독파하는 동안 파스텔 톤의 은은한 풍경사진에 매료되어 나는 그를 ‘카메라를 든 화가’ 또는 ‘풍경화를 그리는 사진가’로 부르고 싶었다. 그의 사진 속에는 대자연의 교향악과 시정(詩情)이 넘쳐 흐르기 때문이다.그런데 20년이나 제주섬의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던 이 치열한 작가정신과 투철한 예술혼을 지닌 동시대의 진정한 예술가, 김영갑을 모...
시베리아 여행기나의 버킷 리스트에 생전에 가야 할 첫 여행지로 시베리아의 거대한 호수, 바이칼을 올린 것은 굿 박사이자 시인인 내 친구 문무병의 영향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바이칼을 동경해왔는데, 그것은 바이칼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2500만년), 가장 깊고(1637m), 가장 넓은(3만1000㎡) 호수여서가 아니라, 한국 샤머니즘의 원조이기 때문이다.나에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베리아는 왕년에 8권의 전집을 다 읽어치운 위대한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산실이다. 네플류도프가 카츄사를 따라간 ‘부활’(톨스토이)의 배경이요,...
제주 신화 ‘가믄장아기’에 등장하는 아기는 셋째 딸이다. 첫째, 둘째 딸은 부모를 배신하지만 셋째는 효도한다. 나중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탄생한 영국의 ‘리어王’ 전설은 셋째 딸 코오델리아만 끝까지 아버질 배반하지 않고 효도하는 이야기다.우리 속담에 “셋째 딸은 선도 보지 않고 며느리로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 셋째 딸을 며느리로 맞이한 시부모는 복덩이가 굴러왔다고 희희낙락한다. 조영남의 노래도 ‘최진사댁 셋째 딸’이다.왜 셋째 딸이 이처럼 주목받는가? ‘일반화의 오류’란 게 있다. 특수한 것을 일반화하는 잘못이다. 그러나 ...
의학자들은 요즘 떠들썩한 메르스(MERS)의 병원체인 ‘신종 바이러스’도 진화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말한다. 새삼 다윈의 진화론에 주목하는 이유다.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자연계에서 ‘종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종은 어느 것이나 따로따로 창조된 게 아니라 변종처럼 다른 종에서 유래한다는 것, 즉 하나의 종이 진화하면서 여러 종으로 분화한다는 것이다.(예컨대 비둘기의 종은 수십 가지이나 그 조상은 들비둘기이다)『종의 기원』의 핵심 키워드=종+변이+생존경쟁+자연선택이다. 이 ...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02세의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장례를 마치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놀랍게도 당신 연세 86세 때(1998년) 쓴 편지를 발견했다. 일곱 살에 제주시 본가에서 서귀포(옛 중문면) 張氏 가문에 양자(養子)로 간 나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타임머신을 탄 어머니가 과거로 내려가 아가를 불러낸 것은 아마도 중년의 자식(당시 형의 나이 53세)에게 새삼스레 옛일을 털어놓는 게 쑥스럽고 민망했기 때문이리라. 양아버지가 사망하자 열 살 이후에 형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팔레스타인, 가봉, 아르메니아와 함께 세계 143개국 중 118위다. 지구 최빈국 아이티(61점)보다 낮다.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걸까?어느 시인은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든 동화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주인공이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난다. 특히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는 해피엔딩 신드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연애와 결혼, 성공과 출세, 권세와 재물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도 다 행...
젊은 시절 한때, 혁명의 열정을 품었던 건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난 후였다. 그 책을 읽고 나서야 왜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에게 열광하는가를 알았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와 베레모를 걸치고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청년들을 미친 놈들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체’를 알고 나서 불현듯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처럼 나도 불꽃처럼 살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이 넝마처럼 너절하고 지겹도록 반복되는 누추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저 높고 빛나는 혁명의 제단에 피 끓는 심장을 바치고 싶었다.(우리 모두 시시포스와 탄탈로스 운...
지금 제주도에는 정치가 없다. 정확히는 실종됐다. 원 도정과 제주도의회의 대치정국 때문이다. 그 원인은 예산문제다. 원 지사는 예산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예산은 하나의 조직이 실현해야 할 목표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조직 내부와 외부의 이해집단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하고 타협한다. 그러므로 예산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타협의 대상이다. 더욱이 정치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다. 그게 없으므로 정치가 없다고 한 것이다.이처럼 지방정국이 파행과 경색으로 치닫게 된 데에는 원 지사의 책임...
가: 커어! 술맛 좋다. 낮술이어서 그런지 몇 잔에 벌써 알딸딸하네.나: 그래서 ‘낮술에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고 하잖냐. 헌데, 이 속담 과학적 근거가 있더라고.가: 근거라니?나: 낮엔 신진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에 알콜 흡수가 밤보다 더 빠르고, 뇌의 반응도 더 예민해진다는 거야.가: 탈무드에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金)이고, 밤술은 은(銀)이며 낮술은 독(毒)과 같다’고 했어.나: 한자는 상형문자이고 회의(會意) 문자잖아? 술 주(酒)를 해자(解字)하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해. 첫째가 술은 유시(酉時: 오후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