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안경을 벗고 보니 / 홍경희 개나리 맞춤법에 그냥저냥 맞춰 사는 어제도 오늘도 오타투성이 주변머리 눈 코 입 다 닳아버린 미륵불이 앉았다. -홍경희 전문- 사는 게 다 그렇다. 마음에 낸 길 열두 갈래일지라도 어느 하나를 제대로 밟고 가지 못한다. 마음이 혹하는 대로, 또는 아쉬운 마음에 어쩔 수 없이 ‘그냥 저냥 맞춰’ 산다. 그러다보면 ‘오타투성이’ 시간들만 덩그러니 남아서 너의 삶은 이러 하였느니 빛나지 못하는 인생의 한 페이지를 부끄럽게 내 보이고 마는 것이다. 안경을 벗고...
(2) 고사리 / 오영호 들판 어디에든 꼭꼭 숨어 있어야 해. 총알이나 죽창을 피하기 위해선 함부로 하늘을 쳐다봐선 안 돼. 두 눈에 불을 켠 산 자들이 너를 만나기만 하면 여지없이 허리를 꺾어버릴 거야. 반백년이 흐른 다랑쉬오름 자락엔 오늘도 안개비만 내리고 한 발의 총탄에 4.3의 짐을 지고 북망산천 떠돌고 있는 형님의 제사상에 올릴 살진 고사리를 아내는 절 하듯 절 하듯 꾸벅꾸벅 꺾고 있다. -오영호 전문- 제주작가에게 4.3은 영원히 끝낼 수 없는 숙제와도 같은 것. 여백을 채우지 못한 결핍...
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놓았던 김연미 시인이 시(詩)를 들고 돌아왔다. 시 한 편과 사진, 그리고 여기서 포착해낸 소중한 삶의 의미들을 차분하게 펼쳐낸다. ‘살며詩 한 편’을 통해 메마른 이 시대의 삶이 조금은 촉촉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1) 화재주의보 7 / 임태진 출동벨이 울리면 짧은 기도를 한다 큰 불이 아니기를 자체 진화 되기를 단 한 명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기를 출동로가 막히면 또 다시 기도한다 모세의 기적이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