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보리 익어갈 때 맛있는 멜(멸치)

▲ 멜 ⓒ양용진

  ‘요즘 갯것 중에서 먹을만 헌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받는데 아직까지 물회를 거론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어서 딱히 생선류에서 먹을 만한 것을 권해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꼭 하나 보리 익는 철에 맛있어지는 생선이 있는데 바로 ‘멜’이다. 사람에 따라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분명 바닷고기가 맞지않으가?! 

  멜은 수심 0∼200m 정도의 대륙붕 해역에서 생활하는데 산란은 봄, 가을 2차례에 걸쳐 일어나며 지금이 바로 산란기에 접어들며 기름이 오르기 때문에 맛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봄에서 여름까지 연안에서 생활하다가 가을 산란기 때에는 북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가을 산란기에는 제주에서 맛 보기 힘들다.  

  주로 수심 20∼30m층에서 밤 중에 산란하며 표면 가까운 곳에서 무리를 이루어 지내는데 수명은 1년 반 정도이고 최대 몸길이는 15cm까지 자라고 다 자라면 등쪽에는 짙은 푸른색, 몸통 중앙과 배쪽에는 은백색 비늘이 뒤덮는데 특히 제주 북쪽 근해와 추자도 근해에서 잡히는 큰 멸치는 몸통중앙의 백색 비늘 사이에 짙은 은색 비늘이 선명히 박혀있어 이를 꽃멸치라 부르기도 한다.      

▲ 멜국 ⓒ양용진

  그런 이유 때문에 꽃멸치와 멸치가 다른 종류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별반 다른 종류라고 분류하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멸치속 어류에는 8종정도만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종들은 연안에 서식한다. 사할린섬 남부,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의 연근해와 페루 등 남미 연안, 호주산과 유럽산 멸치도 유명하다. 대부분 비슷하여 식별이 곤란하지만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별종으로 처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제주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멸치는 사실 한 종류이다. 다만 그 용도에 따라 크기별로 분류하는데 건어물상에서 분류하는 기준은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다.

- 대멸(오주바/오바) : 7.7㎝ 이상 (일반적으로 국물용으로 많이 이용)
- 중멸(고주바/주바) : 4.6~7.6㎝ (국물용 또는 안주용)
- 소멸(가이리고바/고바) : 3.1~4.5㎝ (안주용이나 꽈리고추 등과 볶음용으로 이용)
- 자멸(지리가이리/가이리) : 1.6~3㎝ (견과류나 고추등과 볶음용으로 이용)
- 세멸(지리멸) : 1.5㎝ 이하 (주로 볶음용으로 이용)

  제주의 음식문화에서 멜이 차지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크다. 특이하게도 작은 멸치는 식용으로 포획하지 않았으며 주로 대멸위주의 활용방법이 돋보이는데 가장 유명한 제주의 젓갈인 ‘멜젓’의 원료이고 여름철 밥상에 자주 오르는 ‘멜국’과 ‘멜지짐’은 독특한 여름반찬으로 자주 상에 오르던 음식이다. 멜지짐은 남해안 일부에서도 만들어 먹는 음식인데 제주의 멜 지짐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의 멜지짐은 마른 멜을 이용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이었는데 요즘은 생멸치에 우거지나 신김치를 넣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새빨간 국물이 자작한 멜조림을 팔면서 제주식이라고 우기는 식당들이 늘고 있다. 이는 분명 제주식이 아니라 하겠다. 

▲ 멜젓 ⓒ양용진

  멜을 이용한 제주 전통 음식가운데 특히 ‘멜국’은 생멸치와 배추로 끓이는 국으로 신선한 멜이 아니면 시도할 수 없는 국인데 여기에 제주 멜의 가치가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멸치 가운데 가장 으뜸은 남해의 죽방멸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죽방멸이 우수한 이유는 그물로 잡아채듯 어획하는 일반 멸치와 달리 소쿠리 같은 도구로 멸치를 들어 올려 신선할 때 삶아내서 바로 채반에 널어 말리기 때문에 비늘이 다치지 않고 그래서 비린내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국물멸치 2kg들이 한상자에 2~3만원정도에 거래될 때 죽방멸치는 심지어 그 열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곤 하는데 이마저도 물량이 달린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사람들의 멸치잡이는 이러한 죽방멸의 우수한 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어로방법을 보여준다. 바로 ‘테우’를 이용한 어로 방법인데 테우에 달려있는 그물은 마치 큰 그물 소쿠리를 연상시키며 이 그물 소쿠리를 바다에 담가놓고 멜이 그물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테우 뱃머리에서 물속을 살피던 이가 “멜 들었져!”라고 외치면 한번에 멜을 걷어 올려 멜이 다치지 않고 또한 갓 부화한 작은 새끼들은 자연 방사가 되어 어족자원이 고갈되지 않는 현명한 어로방법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멜은 주로 ‘대멸’일 수밖에 없었으며 비리지 않은 신선한 멜을 온 동네 사람들이 소금구이로, 국으로, 지짐으로, 젓갈로 다양하게 만들어 나눠 먹을 수 있었던 초여름 마을 공동체의 화목함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음식재료인 것이다.     

▲ 멜조림 ⓒ양용진

  생멸치는 의외로 지방함량이 높아 칼로리가 다른 어종이나 육류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러나 다른 등 푸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오메가-3 지방산을 비롯,  DHA(14.1%), EPA(9.2%)등의 영양소가 많으며 특히 뼈를 튼튼하게 하는 칼슘, 인의 함량이 높아 성장기의 어린이나 노약자 등 고칼로리 영양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실제 한방에서도 멸치는 신우염, 신결석, 신장염등 신장이 약하고 양기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약으로 사용되며 멸치국물을 만들어서 장기 복용하며 회양에 도움이 되고 부인의 산후지절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멸치에는 타우린(Taurine)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낮추는 작용과 혈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게 하며 심장도 튼튼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심장병, 뇌졸중의 원인인 동맥경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돼지고깃집을 가면 제주 멜젓을 끓여서 고기를 찍어먹게 하는 방법이 전국에서 통용되고 있는데 실제로 동물성 지방을 분해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 ⓒ양용진

  그리고 멸치속에는 항암작용이 있는 니아신(Niacin)이 들어있고 핵산의 함량도 풍부하며 영양적으로 균형이 잡힌 우수한 식품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몸에 좋은 멸치는 제철 생멸치를 빼고는 건멸치로 유통되기 때문에 건조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멸치를 유통시킬 때는 가능한 냉장상태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냉장온도가 모든 음식물을 가장 잘 건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냉장 상태에 있다가 여름 실온에 노출되면 오히려 급속하게 눅눅해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 되기까지는 냉장보관 하는 것이 좋다.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 ⓒ제주의소리
  그리고 좋은 멸치는 죽방멸처럼 비늘이 온전히 붙어있고 비늘상태가 반짝거릴 만큼 윤기가 돌고 통통한 것이 최상품이다. 일반적으로 실온에서 박스에 담겨있는 상태의 멸치를 보관할 때는 건조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고 간혹 박스를 개봉해서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우리는 우리 제주의 선조들이 품질면에서도 가장 우수한 멸치를 친환경적으로 어획해온 사실을 모르고 지내왔다. 멜이라는 고기는 제주사람들에게 흔하디흔한 존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의 소중함을 인간들이 알아가듯이 제주사람들도 하찮은 멜의 소중함을 알게 될 날이 머잖아 오지 않을까? 그만큼 제주바다는 고갈되고 있기 때문에.....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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