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현혹시키는 '거짓, 말' 넘어야

반값 등록금 논쟁이 치열하다. 4.27 보궐 선거 후 여당에서 내뱉은 담론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가 이제 비등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로마시대에 줄리어스 시저가 귀족들의 공화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처럼, 한번 공론화된 이 담론을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었다. 정책 결정권을 쥔 정부와 여권이 해법을 내놓아야 될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애매모호한 어법으로 위기의 순간을 교묘하게 빠져 나가려는 반동적인 움직임도 고개를 치밀고 있다. 이상한 논리로 변명하고 논점을 호도하려 애쓰고 있다.   

‘공약을 한 적이 없다’, ‘실현 가능하겠느냐’, ‘재정부담으로 세금만 더 올라 국민들의 등골이 휠 것이다’, ‘좌파의 포퓰리즘이다’라며 발뺌하고 색깔을 덧씌우고 망국 행위로 매도한다. ‘반값 등록금’ 대신에 ‘등록금 인하 방안’으로 이름도 바꾼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가난해도 자격이 없다’, ‘왜 부실대학의 학생에게 지원해서 부실 사학을 살리느냐’는 면박도 들린다. ‘대학에 가지 말아야 할 학생들까지 대학을 가는데 무슨 반값 등록금이냐’, ‘진학률이 80%가 넘는데 등록금을 지원하면 과잉 교육이 심화된다’며 학력 격차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심지어 ‘기여금 입학제 도입’으로 딴청을 부리거나, ‘교수들의 고액 연봉’ 때문이라고 물타기까지 한다. 경찰은 촛불집회에 대해 ‘등록금 관련 야간 촛불집회’ 대신에 ‘한대련 등 등록금 관련 야간 불법집회’로 바꾸라고 방송사 교통정보 리포터들에게 ‘보도지침’까지 전달했다고 한다.

언어의 마술이 현란할 정도다. 일부 계층에게는 타당하게 들릴 수도 있고, 반값이라는 말에 짜증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국가재정 확보나 부실사학 개혁과 과잉교육 해소 등의 문제가 반값 등록금보다 긴요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등록금 문제는 대다수 국민들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 실존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일과성 냄비현상으로 치부하고 프로파간다로 막아낼 수 있다는 태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진정성도 없고 친서민ㆍ공정사회ㆍ사회안전망 강화와도 거리가 먼 언어의 희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언어의 술수로 핵심을 교란시켜 빈껍데기로 만든다는 뜻의 ‘족제비 말’과 같다.

‘족제비 말’은 캐나다 퀘벡대학 교육학 교수인 노르망 바야르종이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에서 사용했다. 족제비는 새 둥지에 감추어진 알을 교묘한 방법으로 공격하여 알에 구멍을 뚫어 속만 빼먹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둔다. 어미 새는 알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내용물은 쏙 빠진 빈껍데기 상태가 된다. 여기에서 착안한 표현이다. 어떤 단어를 슬쩍 끼워 넣거나 바꾸어서 중심내용을 쏙 빼내 문제를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거나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매일 인터넷을 비롯한 대중 미디어가 중심이 된 공론의 장에서 수많은 담론을 접한다. 담론의 홍수 속에서 ‘족제비 말’들은 우리들을 현혹시킨다.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거짓을 진짜인 것으로 둔갑시켜 믿으라고 한다. 아름다운 말로 치장하여 진의를 왜곡한다. 완곡어법을 펼치며 그 안에 치명적인 비수를 숨긴다. 포퓰리즘ㆍ매국 행위 같은 낙인찍기로 논점을 흐려 놓는다. 공포감을 조성하여 태도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수법을 동원하여 공격하면, 어떠한 개혁 시도도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용두사미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의 사법개혁 논란도 이런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언어에 숨겨진 진의를 정확히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언어에 대한 비판적 자세가 중요하다. 언어로 표현된 내용ㆍ의미ㆍ배경ㆍ반응부터, 언어를 사용하여 기만하는 방법까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언어의 힘을 악용하려는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해야 언어로부터 해방되어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시도할 수 있다. 우리의 진정한 정신의 자유는 여기서 시작된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기디언 래치먼은 세계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장과 번영의 환상이 지배하는 ‘낙관의 시대’에서 ‘불안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국제 금융위기 이후 고성장과 저물가의 ‘골디락스’ 시대는 끝났다. 개인, 사회, 국가, 세계의 의미와 역할이 재정립되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이러한 전환기에 반값 등록금은 우리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다. 개인과 전체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재구조화를 통해 공동체의 역량을 한 차원 더 높여주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반값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우리 공동체의 미래상이 결정될 것이다. 반값 등록금이 ‘족제비 말’을 넘어 서야할 이유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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