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 우습게 여겼으면 관리권 넘어가도록...

▲ 한라산 백록담에 최근 1000㎜의 장맛비가 쏟아지면서 모처럼 물이 가득 찬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물이 가득 찬 백록담의 모습. 사진=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제공
   ‘물 가득 찬 백록담 언제 본적 있나요?’ 그렇게 <서울신문>이 물이 가득 찬 백록담 모습을 전했다. 작년 여름 사진이지만, 요 며칠간 1,000밀리의 비가 쏟아졌으니, 올 해도 백록담 만수는 어김없이 찾아왔으리라. 그래서 앞으로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라는 노래가사처럼 비가 많이 올수록 생각나는 게 하나 더 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문득 백두산 천지연 정경이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한반도의 남과 북 두 개의 명산은 기이하게도 산꼭대기에 분화구를 갖고 있다. 백두산의 천지는 일 년 내내 물이 가득한 호수를 보유 하고 있어, 그 영험함이 더 돋보인다. 그래서 특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은 백두산 천지를 보고 싶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한라산 백록담에서는 가득찬 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필자도 처음 고등학교 때 이후 몇 번이나 백록담을 찾아가 본 적이 있지만, 꿈에 그리는 백록담 비경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백록담은 그렇게 천지연과 비교된다. 백록담의 화산암반 퇴적층이 투수를 너무 쉽게 하기 때문에 백록담 만수는 고작해야 1년에 5~6일밖에 안 된다. 이마저도 비와 안개 등의 날씨가 변덕스러워 만수를 감상하기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신문> 기사처럼 모처럼 찾아오는 백록담 만수는 신비로움을 더 할 수 있다. 물론 천지연이 일 년 내내 물이 가득한 화구호라고 하여 쉽게 볼 수 있는 비경은 아니다. 필자도 세 번째의 탐방에서 날씨가 좋아 가까스로 장엄하게 펼쳐진 천지연을 본 적이 있다.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운 좋게 ‘사랑의 감귤’ 북한 보내기의 일환으로 평양을 거쳐 백두산을 갔을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아 중도 포기한 적도 있기에, 그 이후 중국을 경유해서 간 천지연 탐방은 오래 간직되는 추억이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 더 천지를 찾을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가능하면 북한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미련은 여전하다. 감귤 말고 무엇을 갖고 가면서 ‘한라에서 백두’를 기약할 것인지. 몇 년간 남과 북의 어긋남이 지속되는 게 못내 아쉽다.

  천지에 대한 추억만큼 백록담에 대한 추억이 절박하지 않은 건 꼭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든 가고 싶으면 쉽게 갈 수 있기에, 서울 남산 구경만큼이나 한라산 정상에 가보기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한라산 정상에도 잘 가지 않는 필자에게는 백록담 만수 감상은 거의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엊그제 <서울신문>이 전한  백록담 만수 사진은 필자가 그동안 얼마나 백록담을 무시하고 방치해 왔는지를 돌아보면서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굳이 백록담만이 아니다. 제주사람이라면 누구나 말로는 한라산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행동은 부족한 게 우리들이다. 오죽 한라산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툭하면 한라산 정상까지 케이블카 놓아서 돈을 벌자고 하질 않는가. 해발 560고지인 한라산 중턱에서 롯데에게 최고급 리조트를 짓도록 허가하려고 하는 제주도정의 친개발 행보에다, 며칠 전에는 행정 미스로 인해 한라산 관리를 제주도에서 환경부로 환원하게 되었다고 화들짝 놀라는 기사까지, 한라산은 항상 말로만 아낀다. 

  아마도 롯데리조트는 우근민 제주도정의 ‘선보전 후개발’ 초심과는 거리가 멀기에 허가가 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될 터이다. 한라산 없는 제주도는 이미 죽은 제주도나 다름없는 것이라는 제주도민의 압력이 절대 요청된다. 한라산이 신음하고 아파하는 데도 ‘친환경’의 기치 아래 경제 살리기에 올인만 하면 된다는 건 21세기 세계환경도시를 지향하는 제주의 비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목소리 높여야 한다. 생태와 환경 보전을 최우선 지침으로 삼고 있어도 자칫 개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게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항상 주위를 돌아보면서 제주의 자연 생태와 환경 보전, 특히 한라산 중산간의 보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일상의 모습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침 한라산 관리권 환원 문제가 제주도민 사이에서 쟁점이 되는 최근의 쟁점화를 하나의 기회로 삼는 건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이는 최근 어처구니없게 불거진 것처럼 한라산 관리권을 환경부로 환원되도록 대통령의 재가가 나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부서의 안일이나 문제점을 점검하여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나지 않도록 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차제에 한라산이 제주도(민)와 대한민국(민)에게 갖는 생태학적-정서적-경제적-미학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재점검하면서, 과연 제주도는 한라산을 제대로 관리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지를 체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맡는 것보다 환경부가 그 부처 명칭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친환경 시각과 국가적 의지로 한라산의 보전-관리에서 남다른 비전과 방침을 보인다면, 꼭 제주도가 한라산 관리 전담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차제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한라산이 제주도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혹은 1970년부터 계속 제주도가 한라산 관리를 맡아온 관행에 매달려 무작정 제주도의 한라산 관리 고수만을 외치는 건 옹졸해 보인다. 한라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폐지되게 되어 한라산 관리에 제주도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됨에 따라 제주도민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게 되었다는 넋두리에 그쳐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이렇게 최근 한라산 관리의 국가 환원이 쟁점화 된 것은 한라산에게는 더 없는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한라산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정부가 공문을 3번이나 내려 보내도 담당 부서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겠는가의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앞으로 한라산을 어떻게 보전-관리할 것인가의 지혜 모음과 도민의식 전환이 이루진다면, 한라산 관리의 전담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최근의 제주도 행보도 정부에 대해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라산 관리권 쟁점화를 통해 앞으로 한라산 관리의 신기원을 찾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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