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아픔을 성찰 없이 외면한다면...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법치를 강조하며 반대 행동에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 이후 공권력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반대측 주민들은 추진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자연파괴와 제주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대못질 중단과 기지 건설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시민ㆍ사회단체, 문화예술인, 종교인, 야당,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해외 지식인들이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부산의 한진중공업 사태에 비해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동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디어 노출 빈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도는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캠페인에서 보인 저돌적 모습과 달리 중앙정부의 눈치보기에 바빠 어정쩡하게 찬성입장을 밝히고 있다. 결국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말 것이라고 체념하는 도민들도 부쩍 많아졌다.

일부 보수언론은 소수 ‘종북 좌파세력’이 국책사업을 훼방하고 있다고 매도한다. 제주 해군기지가 한국경제의 생명줄이라고 견강부회하며 엄호사격을 날리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기 잣대에 맞지 않으면 ‘친북 좌파’라고 낙인찍었던 상투적인 수법을 이번에도 반복하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한진중공업의 ‘희망버스’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이며, 생명ㆍ평화를 지키고 올바른 소통을 위한 사회적 연대 운동이다. 우리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의로운 행동인 것이다.

강정마을 부근을 따라 나있는 올레 7코스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에도 아랑곳없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다. 올레 참여자들에게 강정마을 문제는 주민들만의 문제로 보이는 것 같다. 사람이 길을 걷는 것은 자기 앞에 놓인 난제들을 성찰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스스로의 몸으로 고난의 길을 자처하는 순례의 참뜻일 것이다. 강정마을과 올레길 순례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 올레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면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원래 순례는 종교적 구도나 신앙심을 더욱 돈독히 할 목적으로 시작 되었다. 순례길은 인간이 오고 가며 만든 길로 성자들의 순교의 길,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의 길이었다. 영성의 길, 삶의 길, 청심의 길이다. 그러나 순례는 십자군 전쟁처럼 정복과 살육의 길로 변질되어 그 이름속에 칼을 품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순례는 인간의 욕망 충족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인간의 정복 욕구나 이기심을 자극하여 영혼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인간의 오만ㆍ탐욕ㆍ질투ㆍ분노에 맞닿아 있다. ‘길위의 현자’ 보다는 부자가 되고 싶은 인간의 바람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순례에 숨에 있는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오늘날 대량 소비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순례길은 상업화 되었다. 물질적 보상이 중요시되는 ‘이기의 길’이 되어 버린 셈이다. 경쟁에 집착하는 세속적인 열망으로 가득한 길이다. 나와 내 가족이 남보다 더 잘 살고 화려해 보이기 위해서 길을 걷는다. 자신이 이웃보다 더 잘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길위에서 남을 해치거나 훔치지는 못하더라도 경제적 탐욕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제주 올레는 소수 코스만 사람들로 붐빈다. 나머지는 사람의 흔적이 드문 편이다. 정성스럽게 만든 대다수의 길은 외면받고 있다. 인기 있는 코스에 노점상들이 진을 치게 되고, 급기야는 걷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음과 어울려 다시 걷고 싶지 않는 길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현재로서는 올레길에 상업주의가 과도하게 번지는 양상이다. 순례에서 과도한 욕망은 자칫 소멸을 재촉할 수 있다. 영국의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은 <희망의 이유>에서 “세계는 일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한동안 흐느끼는 사이에 종말을 맞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순례길은 진리의 길이고, 치유의 길이며, 현자가 되고 싶은 길이다. 우리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이웃의 아픔에 공감ㆍ협력하는 이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다. 강정마을을 지나치며 잠깐이라도 순례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자. 우리가 거듭날 절호의 기회다./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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