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 고향 제주서 전시 ‘풍화’ 열어...10월 21일까지
작가는 햇볕 드는 창가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와 마주앉아 인터뷰하던 선배 기자는 ‘강 화백님 맞춤형 포즈’라고 농했다. 아낙네 밭 갈듯 쪼그려 앉은 포즈가 어색하지 않았다.
3년 만에 고향 제주에서 전시를 갖는 강요배 화백을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만났다. 묘하게 대칭을 이룬 삐친 머리와 물결치는 눈가 주름이 여전했다. 전시는 29일부터 10월 21일까지.
작가가 붓 들고 춤 춰 만들었다는 작품 ‘파도와 총석’(아래) 앞에 그의 몫으로 의자를 뒀다. 강 화백은 의자에 앉아 “제주의 거친 파도를 표현하기 위해선 규모 있게 그릴 필요가 있었다”며 “붓 자국이 춤추는 듯 느껴질 것이다. 그리는 동안 춤을 췄다. 지휘하듯도 했다”고 말했다.
강요배 작품 특유의 질감은 종이를 접어 만든 붓에서 나온다. “내가 종이 붓으로 그리는 것은 형태가 아닌 ‘결’”이라고 설명했다. “바람결, 물결 등 자연의 결을 담으려 하고 있다. 흐트러지더라도 딱딱한 형태 보단 질감을 강조하려 한다”고도 덧붙였다.
강 화백은 ‘결’이란 주제어에 사로잡힌 듯 했다. 그는 “‘결’이 형성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노동을 많이 한 사람의 손등, 세월이 스쳐간 할머니의 살에는 거친 결이 있다. 오랜 시간을 함축한 결과다. 자연에도 결이 있다. 물결, 나뭇결뿐 아니라 돌에도 결이 있다. 마음결이 곱다, 머릿결이 곱다 등 여러 말에도 나타난다. 이젠 무엇을 그렸느냐, 형태가 무엇이냐 보단 이 ‘결’이 다른 관점과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폭낭(팽나무의 제주어)’이 그의 작품('우레바람나무' 기사 밑)에 자주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폭낭’은 오래된 것들이다. 시간을 머금고 있다. 폭낭을 보고 있노라면 성장을 위한 과정이 보인다. 휜 나뭇가지와 거칠거칠한 거죽들에서 말이다”
작가는 점차 비워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작품도 거칠고 무거운 데서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으로 정리돼 간다는 평이다.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청시창’(기사 밑)을 꼽은 것도 같은 이유다.
강 화백은 “작가가 단 한 점을 그리기 위해 그 작품을 몇 번을 들여다보겠나. 지겨운 마음도 든다. 이 작품(‘청시창’)은 많은 생각 없이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창 같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론 작업실에도 작품을 걸지 않는다. 비워 둬야 다른 작품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업실에 작품을 거는 대신 작업장 바깥의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풍경을 즐긴다고 했다. 정원엔 감나무 등 나무들이 꼿꼿하고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그의 정원에 난 감나무 잎, 꽃 잎이 콜라주 작품('소슬바람' 기사 밑)으로 이번 전시에 걸렸다.
강 화백 작품 속 시간은 대부분 어스름 녘이다. 그는 “별, 새벽, 흐린 날 같은 잔화(타고 남은 불)가 좋다. 이때 감성은 더 풍부해진다. 화창한 날은 너무 선명하다.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풍부한 색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 2층에는 작가가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강서대묘를 방문했을 당시 서둘러 드로잉한 사신도가 전시돼 있다. 작가는 “중요한 경험이었다”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찾아가 그리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강 화백은 작가 생활 30여년, 제주작가 생활 20여년을 맞고 있다. 그에게 20여년의 제주 작가생활을 물었다. 그는 “처음 10년은 자연을 대상으로 두고 탐구를 해왔다면 나머지 10년은 자연을 빌어 나를 표현해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 생활 30여년. 강 화백의 ‘결’에는 제주의 흙과 바람이 묻어 있다.
다음은 기사에 언급된 강요배 화백의 '풍화' 전시 작품.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