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 고향 제주서 전시 ‘풍화’ 열어...10월 21일까지

작가는 햇볕 드는 창가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와 마주앉아 인터뷰하던 선배 기자는 ‘강 화백님 맞춤형 포즈’라고 농했다. 아낙네 밭 갈듯 쪼그려 앉은 포즈가 어색하지 않았다.

3년 만에 고향 제주에서 전시를 갖는 강요배 화백을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만났다. 묘하게 대칭을 이룬 삐친 머리와 물결치는 눈가 주름이 여전했다. 전시는 29일부터 10월 21일까지.

작가가 붓 들고 춤 춰 만들었다는 작품 ‘파도와 총석’(아래) 앞에 그의 몫으로 의자를 뒀다. 강 화백은 의자에 앉아 “제주의 거친 파도를 표현하기 위해선 규모 있게 그릴 필요가 있었다”며 “붓 자국이 춤추는 듯 느껴질 것이다. 그리는 동안 춤을 췄다. 지휘하듯도 했다”고 말했다.

▲ 붓을 들고 지휘하듯 그렸다는 작품 '파도와 총석' 앞에 자리한 강요배 화백.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강요배 작품 특유의 질감은 종이를 접어 만든 붓에서 나온다. “내가 종이 붓으로 그리는 것은 형태가 아닌 ‘결’”이라고 설명했다. “바람결, 물결 등 자연의 결을 담으려 하고 있다. 흐트러지더라도 딱딱한 형태 보단 질감을 강조하려 한다”고도 덧붙였다.

강 화백은 ‘결’이란 주제어에 사로잡힌 듯 했다. 그는 “‘결’이 형성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노동을 많이 한 사람의 손등, 세월이 스쳐간 할머니의 살에는 거친 결이 있다. 오랜 시간을 함축한 결과다. 자연에도 결이 있다. 물결, 나뭇결뿐 아니라 돌에도 결이 있다. 마음결이 곱다, 머릿결이 곱다 등 여러 말에도 나타난다. 이젠 무엇을 그렸느냐, 형태가 무엇이냐 보단 이 ‘결’이 다른 관점과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폭낭(팽나무의 제주어)’이 그의 작품('우레바람나무' 기사 밑)에 자주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폭낭’은 오래된 것들이다. 시간을 머금고 있다. 폭낭을 보고 있노라면 성장을 위한 과정이 보인다. 휜 나뭇가지와 거칠거칠한 거죽들에서 말이다”

▲ 강요배 화백.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작가는 점차 비워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작품도 거칠고 무거운 데서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으로 정리돼 간다는 평이다.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청시창’(기사 밑)을 꼽은 것도 같은 이유다.

강 화백은 “작가가 단 한 점을 그리기 위해 그 작품을 몇 번을 들여다보겠나. 지겨운 마음도 든다. 이 작품(‘청시창’)은 많은 생각 없이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창 같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론 작업실에도 작품을 걸지 않는다. 비워 둬야 다른 작품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업실에 작품을 거는 대신 작업장 바깥의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풍경을 즐긴다고 했다. 정원엔 감나무 등 나무들이 꼿꼿하고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그의 정원에 난 감나무 잎, 꽃 잎이 콜라주 작품('소슬바람' 기사 밑)으로 이번 전시에 걸렸다.

강 화백 작품 속 시간은 대부분 어스름 녘이다. 그는 “별, 새벽, 흐린 날 같은 잔화(타고 남은 불)가 좋다. 이때 감성은 더 풍부해진다. 화창한 날은 너무 선명하다.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풍부한 색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 2층에는 작가가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강서대묘를 방문했을 당시 서둘러 드로잉한 사신도가 전시돼 있다. 작가는 “중요한 경험이었다”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찾아가 그리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강 화백은 작가 생활 30여년, 제주작가 생활 20여년을 맞고 있다. 그에게 20여년의 제주 작가생활을 물었다. 그는 “처음 10년은 자연을 대상으로 두고 탐구를 해왔다면 나머지 10년은 자연을 빌어 나를 표현해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 생활 30여년. 강 화백의 ‘결’에는 제주의 흙과 바람이 묻어 있다.

다음은 기사에 언급된 강요배 화백의 '풍화' 전시 작품.

▲ 강요배 作, '파도와 총석'.

▲ 강요배 作, '우레바람나무'.

▲ 강요배 作, '청시창'.

▲ 강요배 作, '소슬바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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