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해부⑤] 제주해군기지 참여정부 인사들 '말 바꾸기'

 

최근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에서는 기지 공사를 하려는 해군과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몇 차례 충돌했습니다. 기지 확장 가능성, 결정해 놓고 실시하는 여론조사, 민군복합형미항의 실체, 강정마을 보호가치 외면한 군사안보 논리, 평화의 섬 지정과 동시에 군사기지를 추진하는 모순 등 10년간 끌어온 제주 해군기지사업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제주해군기지 사업의 문제점을 5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 최병수 작가가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 건설 현장에 설치한 이지스함 모양 작품 안쪽으로 범섬과 해안기지를 반대하는 깃발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강정마을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삼무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는 선언문의 전문(前文)이다. 2005년 1월 27일 발표된 당시 선언문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명도 있다. 그러나 선언 발표 3개월 뒤, 제주 해군기지 재추진 계획이 나왔고 추진 기획단이 구성됐다. 2002년 제주 화순항에 추진되던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지역주민과 도민의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는 "백지 상태에서의 재검토"를 약속했던 터였다.

그런데 '세계 평화의 섬, 제주' 지정 원년에,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되살아났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어떻게 재검토 됐는지 모르지만, 취임 후 2년여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제주 해군기지 계획은 2002년 당시보다 더 확대된 형태였다.

'평화의 섬 제주'의 핵심논리는 '비무장'

앞서, 선언문에도 반영되었듯이, '세계 평화의 섬, 제주'의 지정 배경에는 4.3문제 해결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으로 규정된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승화하자는 밑바탕에는 더는 국가폭력의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이 녹아 있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유족과 도민 앞에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폭력 반성이 무색하게도 제주 군사기지 건설 추진은 또 다른 형태의 국가폭력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아가, 제주에 군사기지 건설 추진은 평화의 섬 지정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제주 평화의 섬 논의는 지정 10년 전부터 진행됐다. 이 과정에 참여한 도내외 관련 학자와 연구기관들이 핵심으로 내세운 게 다름 아닌 '비무장'이었다.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비무장'이 전제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일례로, 2000년 제주발전연구원이 내놓은 '제주 평화의 섬 모형정립과 실천방안'은 평화의 섬 정책의 내용적 배경으로 한몫 했는데, 여기에서도 전제 조건은 '중립화'와 '비무장화'이었다. 즉, "동북아 국가 간의 이념 및 군사적 대립구조의 역학관계 속에서 제주가 군사적 대립과 전쟁 개입 가능성을 예방하고 한반도 내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립화' 또는 '비무장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10년 앞서, 1991년 10월 15일부터 이틀 동안 제주국제협의회가 마련한 '평화의 섬 제주'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회의에서도 '비무장' 개념이 제시됐다. 제주국제협의회는 제주도 내외의 유력인사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잠깐 보자.

"평화의 섬을, 첫째 제주도의 비무장화 , 둘째 평화와 질서를 위한 중심지화, 셋째 갈등과 논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지역센터화와 평화 연구·훈련의 장, 넷째 평화의 섬을 행동화하는데 능동적이고 지역적인 노력을 전개하는 제주도민, 다섯째 평화의 개념과 일치하는 균형 있고 분권화한 자생적인 발전을 위한 장소로 규정한다."

제주 평화의 섬 개념이 제주도의 비무장화 논리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제주 평화의 섬 정책이 추구하는 방향이 이른바 '소극적 평화'를 넘어,'적극적 평화'를 지향한다는 점도 드러난다. 실제로, 제주 평화의 섬 지정에 따른 '개요'에서는 평화의 섬 정책이 지향하는 '평화의 의미'를 "모든 위협 요소에서 자유로운 상태인 적극적 의미의 평화를 실천해 나가는 일련의 사고체계와 정책 등을 포괄하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활동체계"로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의 평화가 아닌,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고 정의가 존재하는 상태'로 정의한 것이다. 

정부의 분열적 평화관 드러낸 제주 해군기지

▲ 문정인 연세대 교수.(자료사진) ⓒ 유성호 문정인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평화의 섬 논리는 하루아침에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해군기지 건설을 정당화하려고 군사기지는 평화의 섬과 양립 가능하다는 논리까지 동원하며 분열 양상마저 드러냈다.

지난 2007년 2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는 "제주 해군기지는 군사전략상 필요한 사업이며,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는 양립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적지 않은 관련 전문가, 학자들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동북아 분쟁의 빌미가 되거나 이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 계획이라고 경고하는 마당에, 어떻게 군사기지가 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 있는지 설명은 없었다. 그냥 일국의 총리가 양립 가능하다고 하면 끝일까? 제주에서는 이에 대해 당시 공식 질의를 보냈으나 정권이 바뀐 현재까지 답변은 없다.

이러한 우리나라 정부의 분열적 평화관은 당시 대통령의 언급에서도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열린 제주평화포럼 개막 연설에서 동북아지역 상호 군비경쟁의 지속을 우려하면서 "6자 회담이 동북아 평화안보협력을 위한 다자간협의체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 기구가 "군비를 통제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항구적인 다자안보협력체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한 시간 후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에 대해서는 "무장과 평화가 같이 있는 게 잘못은 아니다. 안심할 수 없는 평화를 위해서도 무장"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참여정부는 2005년 미·일·중·러의 동북아 대결구도를 완화하고 균형자 노릇을 자처하면서도, 군사력 증강을 통한 한미군사동맹을 강조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딜레마였고, 우리 정부의 평화관이 여전히 힘의 논리를 앞세운 분열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이를 드러내는 프리즘이기도 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평화의 섬 정책은 사실상 희석됐다. 10년 넘게 일궈온 평화의 섬 정책을 향한 논의와 노력들 또한 한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 정책을 논의하고 추진했던 정책 주창자들 또한 입을 다물어 버렸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때 동북아시대 위원장과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이 중 가장 핵심적인 인사다. 그는 제주 평화의 섬 정책의 최초 입안자이자 정부가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제주 평화의 섬 논의의 핵심이 '비무장'을 전제한다는 것 또한 그의 입을 통해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그는 2001년 4월, 제주4.3 평화공원 조성계획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제주를 '평화지대(peace of zone)'로 선포할 것을 제안하는 것과 아울러, 제주의 '비군사화(비무장화)', 또는 '중립화'를 국제적으로 선언해야 하며, 심지어는 한 발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군사목적의 선박 및 항공기의 기항과 기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었다.

하지만 문 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관광미항 기능의 해군기지 건설'이 핵심의제로 들어가 있는 '제17대 대통령 제주지역 공약실천협의회'에 도외 인사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또 지난 3일 CBS 라디오 한 인터뷰에서 "국가이익 위해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시민의 말 바꾸기 "지금 추진되는 해군기지 너무 작다"

▲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자료사진) ⓒ 남소연 유시민
여기에 유시민 현 국민참여당 대표의 '말 바꾸기'도 한 몫 했다. 지난 2007년 8월, 유시민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 자격으로 제주를 찾아 "제주는 전략적으로 요충지"라며 "지금 추진되는 해군기지 규모는 너무 작다, 함대급 장성 지휘관이 오는 해군기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추진되는 제주 해군기지는 1개 기동전단 체제인데, 이보다 3배 규모의 전략기동함대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한 셈이다. 해군의 숙원인 전략기동함대의 건설을 대신 주장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유시민 대표의 주장은 불과 2년 전 한 주장과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그는 2005년 12월, 당시 열린우리당 제주도당 여성위원회 초청으로 이뤄진 강연에서 제주를 "특별자치도와 함께 '평화의 섬'으로 강조했으면 한다"며 "해군기지 유치는 물론 어떠한 군사시설도 없는 그야말로 평화의 섬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었다. 

이보다 앞선 2002년 10월, 당시 개혁당 출범 과정에서는 제주를 방문해 "제주는 평화의 섬"이라며 "제주에서 무기를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런 유시민 대표가 왜 갑자기 제주에 "더 큰 규모의 해군기지" 건설을 주장했을까? 대선후보 자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나는 유시민 대표의 그런 태도와 안일함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고 본다. 유 대표는 참여정부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금 민주당이 당론으로 '반대'하는 영리병원 도입을,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제주도에서 추진했다. 

실제로 그는 2005년 12월, 앞서의 초청강연 자리에서 "제주도는 열면 열수록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며 "단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제주를 찾거나 고급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제주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제주 영리병원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최근, 이른바 '유시민 반성론'이 회자되고 있다. 유시민 대표는 지난 7월 5일 전국농민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참여정부의 한미FTA 추진과 관련해 "FTA 비준문제는 이제 민주노동당과 함께 반대한다는 입장을 세워놓고 있다"고 종전의 견해를 번복했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자신이 핵심으로 있던 참여정부 정책을 반성한다는 유시민 대표. 그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주 해군기지 문제, 참여정부의 책임은 없나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말바꾸기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다. 우 지사는 지난 2001년 제1회 평화포럼 개막연설에서 제주도지사 자격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만일에 한국·중국·일본 동북아3국이 상호존중, 공동번영의 정신을 버리고 팽창주의적인 태도로 나아가면 제주의 (발전)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지정학적 중요성은 다시 위험성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만일 팽창주의적 움직임 속에서 제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면 제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다른 나라의 팽창주의적 압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제주는 국제적 위험성 앞에 노출되고 말 것입니다."

어느 학자가 써준 연설문일지 모르지만, 제주도지사 우근민이 행한 연설의 일부이다. 한 마디로, 제주에 어떤 이유이든 군사시설이나 기지가 만들어지면 제주는 위험에 처한다고 경고한 셈이다. 

그런 우근민 지사가 작년 지방선거를 통해 다시 제주도지사에 취임한 이후, 기회 때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우 지사는 나아가 작년 도의회에서 '해군기지 공식 수용' 입장을 서둘러 천명했다. 왜 그랬는지 묻고 싶지 않다. 다만, 제주의 대표가 10년 전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 천명한 바로 그 제주의 '가능성과 위험'은 지금 첨예하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제주 평화의 섬을 입안하고 주장했던 유력 인사들 대부분은 해군기지 추진 이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심지어 종전과 달리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앞장서 주장하기도 한다. 참여정부 시절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지만, 오늘의 '사태'에 책임있게 나서는 이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어떤가. 제주 해군기지 사안이 민주당 정권에서 비롯되었다며 '책임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국가안보'를 내세워 해군기지 '반대세력'을 '불순 세력'으로 몰며 공권력을 통한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제주 해군기지. 이로 인해 주민들의 갈등과 고통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다. / 고유기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입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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