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아버지' 논란은 정권말기 우파 조급증

 
한국방송(KBS)이 이승만 특집 다큐멘터리를 9월중에 방영을 강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어 서울 남산에는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동상도 세워졌다.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탄압에 앞장 섰던 친일파 장군을 전쟁 영웅으로 부활시킨 TV프로그램도 방송되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역사교과서에서 기존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자는 우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역사교육과정을 고시했다.

우파의 애국주의 이념 공세는 비장하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국민교육헌장’의 애국주의를 살려 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위해서는 부정적 사실이나 이미지를 감추고, 친일파도 애국자라고 호도하는 극단적 국가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빨리 극우 국가로 교정해서 선진국가로 만들겠다는 열정이 넘쳐난다. 보수정권 말기의 우파의 조급증이 엿보인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일 뿐이다. ‘건국대통령’이라는 표현은 이승만 혼자서 나라를 세운 것으로 과장하고 신격화하려는 일종의 상징조작과 다를 바 없다. 또한 ‘건국’이라는 용어도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비논리적인 헛소리고 어불성설이다. 1948년 정부수립 이전에는 우리에게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일제로부터 영토를 빼앗아 새로운 국가를 세운 것으로 오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승만이 일제치하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항상 불화와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승만은 정부 수립 이후 독립운동가를 제거하고 친일파와 함께 민주주의를 왜곡, 독재정치를 펼쳐 4.19혁명으로 수많은 시민 학생을 희생시켰다. 공적보다는 과오가 더 큰 인물이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파는 “국가는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으로 국민ㆍ영토ㆍ주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임시정부는 국가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정부수립은 5천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민족 국가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이룩한 것이다.

역사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산업화 시대를 신화로 만들고, 우파를 선진화의 정통적인 주역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선진화라는 기호는 국민들에게 열등감을 불어넣어 성장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침묵을 강요할 수 있다. 복지ㆍ정의ㆍ평등ㆍ평화 등을 주장하면, 선진화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호도할 소지가 크다. ‘국기에 대한 맹세’같은 애국주의 물결로 국민을 통치하려는 것과 흡사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우파의 도깨비 방망이인 셈이다.

우파의 열렬한 애국주의 공세는 대중적 이미지 조작을 통해 국민들에게 광복 이후의 역사를 웅장하고 드라마틱하게 미화할 가능성이 크다. 자기만이 진실이라고 우기며, 또 하나의 ‘건국신화’를 만들고자 한다. 인간의 기억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가 왜곡되면 정신구조도 비틀어진다는 말이 있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짜가 된다”고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는 말했다. 편협한 애국주의가 상대편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파시즘처럼 변종이 발생하기 쉽다.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 비결은 애국주의의 정체를 왜곡, 악용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극우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도 대표적 사례다.

우파의 ‘애국주의적 허세와 과시’가 도를 넘어섰다. 그릇된 애국주의 열풍은 권위주의 독재정치를 합리화하고 민주주의를 왜곡시킬 것이다. 애국주의는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보수집단만이 나라를 세워 발전시킨 애국자이고, 여기에 따르지 않는 집단이나 개인은 좌익 종북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온갖 선전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들에게 우파의 논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제할 가능성이 크다. 민족 자존, 지도자 숭배를 부추기는 전체주의 망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역사 발전을 거스르는 과거로의 회귀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굿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애국주의는 보수주의나 진보주의와 상관이 없다. 애국주의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헌신을 의미한다. 지도층이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선결 조건이다. 우파는 ‘애국’을 부르짖기에 앞서 자신들이 소박한 애국심을 가진 민중들보다 병역 기피, 탈세, 위장전입ㆍ투기같은 법질서 무시행위 등 실천적 애국을 외면하고 계급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 보수주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도덕성과 공동체 정신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비뚤어진 애국주의부터 청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개인의 사상ㆍ신념의 자유를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애국주의는 국민을 결집시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애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은 별로 없다. 우리는 2002월드컵에서 애국주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애국주의는 비판적 지성을 경유하고, 합리적 이성과 함께 할 때에야 비로소 긍정적인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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