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맞서 인간존엄성을 지키는 강정주민들이 있기에

         I. 위대한 보류를 꿈꾸며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나날이 뜨겁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4년 넘게 때때마다 부적절과 무모함이 엉켜 있어서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은 게 강정해군기지이다. 오죽하면 문대림 제주도의회 의장이, ‘제주해군기지 갈등 문제는 예수나 부처가 와도 해결하기 어렵다’고 하겠는가. 해군기지 해법이 이렇게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넘어서 버렸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폭발이든 허탈이든 아니면 정지든,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오늘도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현장에서는 포크레인 소리가 우렁차게 기정사실화의 현실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을 게다. 해군기지 문제가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대칭에서 벗어나 점점 더 강정평화를 옭아매는 공권력의 무자비한 점거로 옮겨가는 현실에서, 이제는 해군기지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논거를 떠나 도민 모두가 정부에 대해서 ‘너무 하는 게 아니냐’는 자존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구속과 연행, 벌금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위협을 받는 부자유의 공포 상황에서 우리 모두 숨쉬기가 어려운 답답함이 제주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게 2011년 9월의 강정이다. 왜 강자인 정부가 보다 더 많은 여유와 양보로 해군기지 문제를 대하지 못 할까의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이라고 자부하는 한, 5년간은 위임된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에게 최소한의 아량과 양해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왜냐하면 동남권 신공항 논쟁에서 보듯이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명분하에 정책 집행을 보류한 경우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정해군기지의 경우도 안보적 타당성을 좀 더 면밀히 따져본 다음에 추진해도 괜찮은 게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지역 교수들이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 및 재논의를 촉구하는 것은 단순한 반대 의사 표명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전문적인 국제정치적 맥락과 안보상의 이해득실 및 타당성을 따지고 파악한 연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하는 게 순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기지로 인한 제주지역의 경제활성화라든가 주변 지역의 개발지원 계획은 그 다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주도정에서는 본말이 뒤바뀐 채 기지건설에 따른 실리와 이익이 무엇이냐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안보는 제주특별자치의 소관사항이 아니기도 하다. 그것은 중앙정부의 독점적 영역이기에 정부의 논지에 발맞추면 될 일로 치부되고 있다. 

  그래도 제주도민도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이기에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정말 강정 해군기지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안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일까? 만약 해군기지가 미래에 있을 법한 해상안보상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강정 해군기지도 그렇게 미래를 위한 여유와 절차적 순리를 거치면서 천천히 추진하면 되는 게 아닌가? 꼭 2014년 혹은 2015년까지 해군기지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특수한 이유 혹은 군사기밀이라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누구도 이에 대해 답을 줄 수가 없는 상태에서 해군기지 강행은 막무가내의 안보지상주의로 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무턱대고 해군기지가 건설된 이후 어느 날에는 무용지물이 된 해군기지를 놓고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머리 싸매면서 사는 게, 이른바 대한민국 중심주의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의 숙명일까. 

  이런 저런 의문도 불구하고 2011년 제주의 현장에서는 대통령이 불쑥 한 마디하고는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에 강정 주민의 삶과 제주의 생태-평화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더 해법은 이명박 대통령에 의한 ‘위대한 보류’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II. 이의 제기가 제주의 미래를 살린다

  강정 해군기지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나 방책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오히려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 해군기지 건설을 기정사실화 하여 강행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꼼짝하지 않는 한,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제주 도지사나 도의회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전임 김태환 도정처럼 현 우근민 도정도 해군기지 때문에 그리고 해군기지 문제에 얽매어 무능력한 도정으로 치부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해군기지 문제는 제주의 생태-평화라는 미래 비전에서뿐만 아니라 도민 역량을 결집하여 국제자유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데도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해군기지 문제를 조속히 끝내기 위해서 여론조사나 주민투표가 거론되고 주창되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의 수용 거부로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여론조사나 주민투표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도민의사가 많다고 하여 이에 따라 국방부가 해군기지를 무효화할 의사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안보는 투표와 같은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라는 국방부의 안보 성역화 논지이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국방부의 의사대로 해군기지가 진행되는 것 이외의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노무현정부도 국방부의 대양해군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는데, 하물며 그 보다 더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에서 해군기지 전면 재검토가 가능할 것인가는 회의적이다. 

  그래도 혹 제주해군기지의 최종적 해법 찾기의 정치적 가능성이 국방부 혹은 청와대에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것은 이명박 정부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려는 제주도민의 남다른 이의제기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9월 3일 강정마을에서 2,000여명이 참석한 평화문화제를 포함하여 9월 6일 도의회가 시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여는 것 모두가 다 정치적 압박을 위한 여론 몰이의 하나이다. 제주도민이 가만히 있으면 제주해군기지는 국방부의 자의에 따라 제멋대로 흘러갈 뿐이기에, 더욱 더 도민의 견제와 이의제기가 요구된다. 그래야 제주의 미래가 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명박 정부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제주에 대한 고려와 양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제주도정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의 솔직한 내부적 의견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근민 지사가 주재했던 9월 5일의 직원조회에서 보듯이 공무원들마저도 정부의 해군기지 추진에 대해서 우려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소개된 바에 따라 요약되는 도청 직원들의 최소 공감대란 크게 2가지가 아닌가 싶다. 하나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해군기지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적 순응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주민 입장을 고려하는 적극적 대화를 통해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앙정부의 적극적 대화 자세를 통한 이해 수렴이 하나의 해법임을 정확히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나 주민투표가 해군기지 해법을 도민이 결정하는 민주적 절차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중앙정부의 적극적 의견 수렴은 해군기지 해법을 정치적-행정적 책임 당사자인 청와대-국방부가 직접 나서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도의회가 주민투표를 내세우는 이유는 중앙정부의 적극적 의견 수렴을 촉구하는 의미도 클 것이고, 또 해군기지 강행만을 고집하는 중앙정부에 대한 이의제기이기도 하다. 이는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해법 찾기에 나선다면, 굳이 주민투표로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속내이기도 하다.

  문제는 해군기지 해법 찾기에 임하는 청와대-한나라당-국방부의 자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해군-경찰의 움직임을 보면 해법 찾기에서의 의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8월 30일 전국 시.도의회 의장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제주해군기지가 ‘전임 정부에서 결정된 국책사업’이며 ‘해외사례를 보면 해군과 관광이 함께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말로 강행 의사를 피력하였다. 이 발언에 발맞춰 경찰은 9월 2일 새벽 5시에 경찰 600여명을 투입해서는 주민 35명을 연행하였고, 해군은 이러한 대규모 경찰병력을 등에 업고 해군기지 공사장 출입을 막기 위한 펜스 설치를 완료했다.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의 해법 찾기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떻게든 도민들에게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지역 여론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기보다는 해군기지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치부하기에 바빴다. 국회 예결특위 내의 이른바 ‘해군기지 소위’의 활동을 보면, 해법 찾기를 위한 여론 수렴에는 관심이 없고 여전히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의 공방전으로 일관하였다, 해군기지 소위 활동 기간 중에는 공권력 투입을 자제한다던 조연호 경찰청장의 발언과는 달리 강정마을에 경찰이 투입되었다면, 이에 대해서는 여야를 떠나 공통의 이의 제기를 한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이렇듯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를 포함하여 기성 정치권을 거부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과학대학원장의 최근 행보가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호응을 받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아마도 해군기지에 대한 국방부의 집착은 하늘을 찌른다고 보아 무방하다. 집착은 무모를 부르고 무모는 파탄을 낳는다는 데, 아니나 다를까. 급기야 국방부의 무조건적인 제주해군기지 집착은 공문서의 이중 작성으로까지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해군기지 기본협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방부가 해군기지 이외의 다른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의 명칭 변경을 한사코 거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제주해군기지 건설이라는 국방부의 고집이 관철되도록 호응하고 방관한 제주도정과 국토해양부도 문제이지만, 여기에는 이른바 군산복합체의 경제적 토대와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지불식간에 내재화하여 있는 반북 이데올로기가 크게 한 몫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실 해군기지 문제는 단순한 국방부의 관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시대적 쟁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강정해군기지 문제가 단순히 해군의 관료적 이익이나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보컴플렉스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 배후에 숨겨진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가 작동하는 복합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면, 더 더욱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해법 찾기는 무망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계란으로 바위 때리기’일지 모르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이의제기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국가의 강력한 물리력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강정 주민들이 있기에 제주의 미래가 있고 대한민국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나름대로 격려와 성원을 보내는 데 주자하지 말자.

▲ 양길현 제주대 교수
  마지막으로 사족처럼 한마디. 앞으로는 해군기지를 반대한다고 하여 또는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하여 이를 이른바 종북주의자로 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언명과는 전혀 달리 해군기지에 이의를 제기하는 도민들이야말로 건실한 민주시민임을 이해해 주길 바라고 싶다. 제주해군기지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군사 시설이라면, 북한의 무모함에 싫증을 내는 사람들은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게 혹 종북주의가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제주해군기지는 해군이 공식으로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남방 해상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제주해군기지가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왜 북한으로부터 먼 제주에 해군기지를 설치하는 지 그것이 알고 싶다. 혹 국방부의 속내에는 해군기지를 서해 5도 어딘가에 설치해야 하는데 그러면 즉각 중국과 북한이 반발을 할 것이라서 애꿎게 멀리 제주에 설치하는 것일까. 그게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감춰진 진정한 이유일까. 이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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