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또 하나의 광풍 불가피

개인이나 회사는 파산하면 법원으로 간다. 파산관재인의 감독하에 잔여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분배하는 청산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독립국가 자체가 채무자인 소버린 디폴트의 경우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법원에 가는 일이 없다. 이 경우에 채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채무국가 대표들과 마주 앉아 향후의 대책을 협의하는 것뿐이다. 물론 모든 회유와 압박 수단을 동원하겠지만.

그래서인가, 지난 30년 동안 크고 작은 국가 부도 사례는 20건에 이른다. 주로 중남미와 동구권 국가들이었지만 적지 않은횟수다.

그리스의 경제 규모는 유럽 전체의 2%에 불과하며 미국의 평균적인 일개 주보다도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소버린 디폴트 사례에 그리스처럼 대책 마련이 장기화되었던 경우는 없었다.

그리스가 특이하다면 유로존의 일원으로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에 문제가 생길 경우 유로화 가치에 미칠 악영향과 그리스의 전례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더 큰 나라들에게 확산될 것 등을 우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의 신용등급은 작년 4월에 이미 정크본드 등급인 '트리플 C'로 강등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그리스의 부도를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3000베이시스 포인트를 넘어선 그리스 국채에 대한 CDS 스프레드가 이를 입증한다. 즉, 원금 1만유로의 상환을 보장받기 위해서 매년 3000유로를 지불한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경제는 금년에 5.5% 마이너스 성장하고 내년에도 2.5%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측되고 있다.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핍(耐乏) 및 이를 조건으로 한 금융지원으로 그리스의 디폴트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식(虛蝕; pretence)일 뿐이라는 것이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의 신랄한 지적이다.

질서 있는 디폴트?

뉴욕 대학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그리스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질서 있는 디폴트("orderly default")뿐이라는 주장을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질서 있는 디폴트란 채무상환 위기가 임박했음을 인지한 경우 채권단과 채무국이 채무구조조정(restructur ing)을 사전적으로 협의하는 것을 말한다.

채무 구조조정 사례와 관련해서는 1989년의 '브래디 본드'(Brady Bond)가 종종 거론된다.

중남미와 동구권 국가들의 정부 부실대출금을 할인된 금액의 채권으로 교환해 준 사례로서 이 아이디어를 짜내고 전 과정을 중재한 미국 재무장관 니콜라스 브래디의 이름을 딴 것이다.

채권은행들에게는 당초 대출금액보다는 작은 금액의 "상환이 확실한 채권"으로 갈아타든지 아니면 감액 없이 전액에 대하여 채권을 받되 시장 금리보다 현저히 낮은 이자율을 수락하든지 하는 선택이 주어졌다. 당시는 시중금리가 높을 때였기 때문에 원금을 깎으나 이자를 깎으나 실제 탕감효과는 동일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브래디 본드의 상환만은 확실히 보장해야 했기에 그 방법으로서 채무국 정부는 미국의 재무성 증권을 매입하여 이를 담보목적으로 제3자에게 신탁하도록 했는데 그 자원은 IMF와 세계은행이 지원해 주었다.

할인 금액은 부실 정도에 따라 30%에서 50%에 이르렀으니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은 손실을 그 선에서 매듭지을 수 있었고 채무국들은 물론 숨퉁을 돌릴 수 있었다. 에쿠아도르 분을 제외하고 이 브래디 본드는 1997년 이전에 모두 상환되었다.

2010년 5월 합의한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 중 미집햅행 450억이 남아 있다. 이 중 제6차 지급분 80억유로의 집행을 검토하기 위해 그리스를 방문했던 협상단이 재정적자 감축 목표가 미달되었다며 중도 철수했다. 이것이 집행되지 않으면 10월 중 부도는 불가피하다.

또 하나의 광풍 불가피

길은 두 가지다. 어떻게든 재정적자 감축안을 짜내어 디폴트를 끝까지 미루든지, 아니면 디폴트를 기정사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화하고 채무 구조조정에 임하든지이다. 후자의 경우로 진전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질서 있는 디폴트라고 해도 그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또 하나의 광풍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선(線)을 긋는 것은 불확실성의 종식이라는 더 큰 의미가 있으며 그럼으로써 허식으로 인한 불신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전염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나라들도 더 중요한 다른 숙제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기사는 '내일신문'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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