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제주형 그라민은행의 가능성을 찾아서

무담보 소액은행인 그라민은행이 다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다. 그 배후에는 71세의 무함마드 유누스가 자리하고 있다. 모국인 방글라데시에서 정치적 이유로 추방되다시피했던 그가 미국에서 다시 기지개를 펴면서, 큰돈만이 아니라 작은 돈도 하기 나름으로 빈곤퇴치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방글라데시에서의 성공과 좌절을 거쳐 미국 뉴욕에서 ‘그라민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새둥지를 폈다는 그라민은행의 성공 스토리는, 그야말로 우리네 삶의 이율배반적 속성과 함께 미래가능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짧은 정보 속에 들어있는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지만 놀랍게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1, 2위를 다툰다는 믿기 어려운 그런 미지의 나라이다. 가난과 행복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이유와 배경이 꽤 궁금할 터이지만, 누구도 이를 명확하게 해명해주는 이는 없다. 그저 우리는 가난하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신화에 이끌려 오늘보다 내일에는 조금이라도 더 부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그러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 하에 온갖 술수를 다 부리고 있을 뿐이다.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국민들이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이 가난한 방글라데시에서 일찍이 빈곤퇴치에 애을 쓴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무함마드 유누스이다. 대학교수였던 그가 1976년 불과 27달로 시작했던 무담보은행 실험은 현재 1,175개 지점에 약 3조 3,600억 원을 대출해 주는 대형은행으로 성장하였다. 그가 정치적 좌절을 넘어 다시 2011년 9월 27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국내 언론에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 금융선진국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다’는 기사로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였다.

  종래 방글라데시형 그라민은행 모델은 경제적 여건이 다른 미국에는 맞지 않은 것으로 널리 치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민은행 모델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이 점은 대표적으로 최근 서울시장 시민후보로 선출되어 널리 각광을 받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금액이 소액이라는 이유 말고도 경제가 후진인 방글라데시와 산업국가인 대한민국의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라민은행 모델은 그다지 응용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대답이 그것이다. 그래서 박원순 변호사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저소득층을 위한 데로 사용하는 기부문화의 창달에 더 힘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번에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그라민은행 모델을 서울시정에 창조적으로 응용해 보는 시도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가 이렇게 그라민은행 모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은 물고기를 나누어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더 좋다는 금언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다면 누구든 처음부터 포기하지 말고 한 번 쯤 물고기를 잡으러 시도를 할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그라민은행의 도전정신이란 바로 이와 같이 그런 기회와 여건을 제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방글라데시의 빈곤층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제공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자활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도록 하는 성과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바 있는 무함마드 유누스. 그래서 제주도의 2012년 평화포럼에는 유누스를 초청하여 빈곤 타파를 향한 그라민은행 모델의 가능성을 재음미하면서 제주에서의 창조적 적용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요즘처럼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이 최대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먼저 빈곤층과 청년층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자활을 지원하고 모색하게 하는 방향에서 ‘제주형 그라민은행’의 응용 가능성을 널리 공론화하는 그런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함마드 유누스는 3년 전쯤인 2008년에 미국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리는 데도 고집스럽게 그라민 아메리카나를 설립한 듯하다. 그 때 자본금이 150만 달러(18억원)인 것을 보면, 그 시도가 얼마나 미미했는지 알만 하다. 그러나 그리 많지 않은 돈이지만 이를 500달러-3,000달러(60만원-360만원)로 나누어 무담보로 대출해 주면서 이를 네일숍이나 액세서리 판매 등을 통해 돈을 버는 데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무담보 대출의 은행이 실패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대출 회수가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인데, 그라민 아메리카는 뉴욕 일

▲ 양길현 교수 ⓒ제주의소리
대만 4개 지점에 약 6,000명의 고객을 거느리고 있으며 99%의 대출 상환율을 보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빈자의 아버지 무함마드 유누스의 지적처럼, 경제가 어려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신용점수나 담보가 아니라 사람’일 게다. ‘얼마나 삶에 대한 의지가 뜨거운가’에 주목하여 우리의 숨겨진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제주도정이 적극 나서길 기대하고 싶다. 외자유치를 적극 활용하는 외향적 성장 중시에서 벗어나 제주형 그라민은행의 활성화를 통해 가난한 도민들에게도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서의 내향적 성장을 재음미하는 가운데 우리의 미래를 찾아보면 어떨까. / 양길현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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