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안철수 신드롬'과 영화 '도가니' 파장을 보면서...

‘안철수 신드롬’과 영화‘도가니’의 흥행몰이가 우리 사회에 큰 돌풍을 몰고 왔다. 단순한 흥미 차원을 넘어 획기적인 변화를 열망하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두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가지다. 우연히 나타난 일로 평가절하하고 열쇠구멍 같은 좁은 틈으로 보는 관점과, 체제 전환적인 의미를 함축한 중대한 변화로 평가하는 거시적 시각이다.

두 사건은 대중에게 커다란 공감과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포퓰리즘의 산물로 치부하고 단순하게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쌓여온 부조리한 문제들이 상징적인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역사에서 우연적인 사건이란 없다.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필연적인 의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인물에 열광하고, 사회 고발 영화를 보고 절규하고 있다. 정치ㆍ경제ㆍ사회의 기존 질서를 바꾸지 않으면 공동체가 허물어 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제 기능을 상실한 정당, 타락한 사학ㆍ종교ㆍ언론권력, 자본가 등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그릇된 보수집단이 똘똘 뭉쳐 만들어 놓은 탐욕의 사회를 준엄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는 민중문화가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쳤다. 민중문화론자들은 ‘바보상자’로 대변되는 대중문화가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고 탈정치화시킨다고 비판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민중문화는 퇴조하고 새로운 대중문화가 부상했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이 몰아친 이후 대중문화는 급격하게 상업화됐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위안거리로 전락해 결국 대중을 탈정치화시켰다.

‘오빠부대’의 등장,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문화 콘텐츠, 자기계발서 따위도 이와 더불어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인문학이 쇠퇴하고 우리 사회의 지적토양도 황폐하게 변해갔다. 신자유주의가 절망적일 정도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되면서 우리 사회의 대중은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상의 미디어 혁명과 개인미디어 시대의 도래 국면에서 대중은 다시 똑똑해졌다. 우리 사회를 다양하고 깊은 눈으로 성찰하는 ‘지성적 대중(smart mob)’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성적 대중’은 개혁과 변화가 필요한 부문을 세밀히 관찰하고 널리 전파하는 놀라운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정파성의 늪에 빠진 기성 언론의 메시지를 비판하고 허위를 까발리는가 하면, 자발적으로 의제를 제시하고 새로운 담론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덕분에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는 과거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즐기고 시간만 축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지성적 대중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소셜 네트워크(SNS)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지성적 대중문화’는 대중을 의식화하고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첨단 무기로 무장시켰다.

이번 신드롬에 대해 정계, 정부, 언론 등은 앞으로 몰고올 파장을 예의 주시하며 부산을 떨고 있다. 하지만 향후 정치 일정에 따른 정치공학적인 접근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자기반성보다는 거짓신호를 보내며 권력 쟁취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이는 ‘지성적 대중’의 선(善)한 의지를 과거의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려는 변화를 거부하는 헛된 시도다. 독재정권과 친일파에 대한 미화라거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민주화 세력이 줄어야 사회 안정이 된다’는 조현오 경찰청장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그런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보수주의는 국가가 역사와 전통을 보호하고, 규범과 제도로 시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해 있다. 도덕적 엄격성과 자유와 책임의 원칙,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지성적 대중’이 부상한 것은 도덕적 부패에다 책임과 자제력을 잃고 권력의 단물에 취한 보수 때문이다. ‘지성적 대중’은 보수주의라는 ‘거짓선지자’가 내세우는 ‘경제성장’이라는 헛된 약속의 본질을 이미 깨닫고 있다. 더 이상 보수의 허망한 언어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로디외는 “집단의 운명은 그들을 지칭하는 언어에 속박된다”고 말했다. 정도를 일탈한 보수 앞에는 일패도지(一敗塗地)의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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