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의 선구자들] 제주를 학문 영역 끌어올린 선각자

“‘나비 박사’ 석주명 박사와 조선산악회 국토구명사업팀이 독도를 가기로 했었는데 석 박사는 독도에 가지 못 했어요. 나비를 좇느라 길을 잃고 밤을 꼬박 새버렸거든요”

‘나비 박사’로 알려진 석주명 박사(1908~1950). 제주도에서는 제주를 어엿한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제주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기도 하다.

▲ 전경수 서울대 교수.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제주학회 창립 멤버이기도 한 전경수(62) 서울대 교수가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발견한 석 박사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 양영흠) 주최 제주문화강좌 ‘제주학의 선구자들, 제주를 빛내다’ 첫 번째 강사로 나섰다.

석 박사는 청년기 대부분을 일제 강점기 아래서 보냈다. 하지만 아시아의 식민지 연구자가 이룬 나비 연구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영제국의 왕립학술원은 과학자 상을 시상하며  박사의 업적을 높이 샀을 정도다. 당시 그는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전 교수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생물학자 중에서 전 세계에 알려진 학자가 몇이나 되나”며 “석 박사는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석 박사는 1926년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고시마 고등농림에 유학했다. 이곳에서 석 선생은 곤충과 식물병리 과목을 전공하며 나비 박사로서의 면모를 갖춰간다.

나비 연구는 송도고보 교사를 지낸 193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표본이 있는 곳은 북쪽으론 중국 하얼빈, 남쪽으론 멀리 대만까지 찾아다녔던 것으로 알려진다.

석 박사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당시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에 근무하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제주학 관련 연구서만 ‘제주도방언’, ‘제주도의 곤충상’ 등 6권을 냈다. 한 수필집에서는 “제주도에 관한 것이라면 수시로 기록해 쌓아 두었다”고 적고 있을 정도로 제주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전 교수는 “‘지역’ 안에는 곤충과 물, 돌 그리고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있다”며 “이 차원에서 석 선생은 제주도 민속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 박사가 쓴 ‘제주도 총서’ 자평에서 이 같은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역을 통해서 땅과 나비의 관계를 알자는 것, 지역을 통해서 나비를 알자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시기 역사의 타살로 생을 마감한 그를 두고 전 교수는 “조금만 더 연구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면 기록적인 성과를 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석 박사는 110편의 논문, 우리나라 지도 250장, 세계지도 250장, 나비 분포도 등의 연구 결과물을 남겼다고 알려지지만 상당수는 확인할 길 없는 상황이다.

전 교수는 “경성제국대학은 일본 패전과 함께 모든 공문서를 소각했고, 이후 그가 일한 국립과학박물관의 자료들 역시 함포 사격을 받는 등 관련 자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석 박사를 조명하려는 시도는 2008년 석주명 박사 탄생 100돌을 맞아 열린 추모사업과 학술대회,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가 지난달 진행한 기념 학술대회 등 간헐적으로 이어져 왔다.

전 교수는 “학계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석 박사의 연구를 어떻게 계승하느냐에 의견이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생물학 지식을 자연과학 에 맡길 게 아니라 지역 주민과 민속 속에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만 석 박사가 남기고 간 과제인 제주도학의 완성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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