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경제학의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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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주 칼럼] '화폐시장경제학'에서 멈춘 경제학

프랑스 칸느에서의 G20 정상회담을 불과 이틀 앞두고도 유럽 국가 정상들과 유럽중앙은행, IMF, EU 등 소위 트로이카 대표들은 그리스 문제의 최종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 미국과 유럽의 청년실업률이 각각 17.1% 및 20.9%에 달한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심지어 시장자본주의의 효능에 대한 의문까지 공공연하게 나도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경제학의 역할에 대한 반성도 적지 않게 일고 있다.

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한 학자인 영국의 E.H.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지난 25년 동안 경제학이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조금도 기여하지 못했다. 양적인 분석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시대적인 과제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방해물로 기능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의 경제학의 발달이 숫자로 표시가 가능한 이자율과 환율 같은 변수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말하자면 '화폐시장경제학'쯤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 아닐까?

그러고도 경제학자들이 고개를 쳐 들 수 있었던 것은 화폐시장의 지식과 정보에 대한 수요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한 예로 금융파생상품 시장의 규모를 보자. 파생상품이란 그 가격의 변동이 다른 금융상품의 가격에 따라 좌우되는 금융상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세계의 주식, 채권, 및 은행예금 등 금융자산의 총합계는 167조달러인데 파생상품의 명목금액 합계는 600조달러를 넘어서서 파생상품이 원상품보다 오히려 더 크다고 한다. 이 중에서 이자율과 환율을 매개변수로 삼는 상품이 각각 80% 및 10%로 대종을 이룬다.

'화폐시장경제학'에서 멈춘 경제학

경제학의 본연의 임무가 인간의 본성(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구하려는)을 대 전제로 한 사회과학 탐구에 있다면, 그래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자원, 그리고 인간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모든 측면들을 다루는 데 있다면 이제는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을 측정하려는 시도를 서둘러야 한다.

월터 아이작슨의 신간 '스티브 잡스'를 읽으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개 기업이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결합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여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면 경제학이라는 학문도 측정불가능이라는 이유로 화폐시장경제학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러니까 환경경제학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위험을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수치로 환산하는 프로토콜을 개발해야 하며, 교통경제학은 교통정체로 인해 소모되는 화석연료의 가치와 대기시간의 금전적 비용, 그리고 정체된 차 안에 갇혀 있는 승객들의 짜증까지도 계수화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장경제학에서는 청년실업의 사회적 비용을 계수화하여 국가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방정식에 대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아름다움과 건강, 깨끗함과 질서의 가치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이공계열의 지원을 받으면 불가능할 리가 없다.

이제까지 그런 노력을 안했다는 것은 경제학의 자만이자 게으름이다.

스티브 잡스는 음악산업에까지 역사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대형 음반사인 일본의 소니(Sony)는 밥 딜런 등 인기 아티스트들을 보유한 음악사업 부문과 세련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가전사업 부문을 버젓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양 부문의 통합을 미루다 결국 애플에게 음악시장을 빼앗기고 말았다.

애플은 이윤에 앞서 훌륭한 제품을 만들 것을 모토로 하면서 영어로는 "Insanely great"라는 형용사를 택했다. 우리말 번역서에서는 "혼을 빼 놓을 만큼 뛰어난"이라고 표현했지만 문자 그대로 "미칠 만큼 뛰어난" 또는 "미친 사람들이 만든 뛰어난 작품"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미치다"는 예술의 차원이며 "뛰어나다"는 기술적 차원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경제학에도 과학기술 도입해야

경제학자들, 그리고 경제를 담당하는 정책 당국자들이 상업적 목적에 필적하는 목적의식과 기업인들의 열정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 계속 이자율이나 환율 정도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진정 참을 수 없는 게으름이다.

슈마허는 "시장은 물건의 가격표 이상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주의와 무책임성을 제도화한다"라는 심한 표현까지 했었다. 그러나 시장자본주의를 대체할 제도는 아직 없다. 비난은 시장이 받기 이전에 경제학이 먼저 받아야 할 것 같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기사는 '내일신문'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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