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돈로’서 만난 고상돈 사람들] ‘77원정대’ 김영도 대장

“말이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조용히 자기 갈 길만 갔죠. 그러더니 결국 해내더군요”

6일 제주 한라산 ‘고상돈로(路)’에서 열린 ‘한라산 고상돈로 전국 걷기대회’에서 만난 김영도(87) 대장은 고상돈(당시 29세) 대원을 ‘특별한 청년’으로 기억했다.

당시 대한산악연맹 회장이었던 김 대장은 전 국민의 염원을 안고 ‘77 한국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고 네팔로 갔다. 원정대에는 제주 출신 산악인 고상돈도 포함됐다.

▲ '77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김영도(87) 대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두렵고 설레는 도전에 말이 앞설 만도 했지만 고상돈은 묵묵히 자신에게만 집중했다고 전했다.

“워낙 조용했기에 고상돈이 태권도 3단이었던 걸 몰랐어요.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나가는 동안 그 내공이 하나하나 나타나는 걸 보고 (고상돈이)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이들의 도전은 곧 한국의 도전이었다. 원정대의 열악한 장비와 비용, 기술은 당시 한국의 국력을 상징했다. 하지만 산악인은 ‘최고(最高)’를 꿈꿨다.

“국내에 2000m 되는 산이 없잖습니까. 밤낮 2000m 이내의 산을 오가던 산악인들이 우리도 ‘최고’에 도전하자는 꿈을 꾼 거죠”

1977년 9월 네팔. 박상열 대장이 에베레스트 정상 200m를 남겨놓은 채 1차 공격을 실패. 이어 김영도 대장이 이끈 고상돈 대원이 2차 공격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세계 여덟 번째 세계 정상을 밟는다.

정상 정복 후 고상돈과 원정대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웠다.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 한국인이 ‘최정상’에 섰다는 것은 국민적 자부심이었다.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등정 후 조용히 국내로 복귀하고 싶었어요. 세계 최초도 아니고 여덟 번째였으니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국민들의 환영은 대단했어요. 서울과 고상돈의 고향인 제주에서 카퍼레이드가 펼쳐졌을 정도죠”

청년 고상돈이 퍼레이드 차량에 올라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자료 사진 속 모습은 당시 그의 성격을 엿보게 한다.

‘77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가 세계 정상을 밟은 지도 34년이 지났다.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고상돈은 자취를 감췄고, ‘정상의 사나이’를 기억하는 이도 드물어졌다.

그나마 지난해 2월 제주 한라산 1100도로를 따라 그의 업적을 기리는 ‘고상돈로(路)’가 지정됐다. 제주지역의 산악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고상돈기념사업회가 고상돈의 업적을 기념하는 일들을 꾸준히 이어왔다.

김 대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고상돈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선 도전정신과 정열, 의욕이 필요하다”며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오른 상징성을 우리의 정신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고상돈로’를 지정한 것은 대단한 발상”이라며 “고상돈이 올랐던 에베레스트 높이 8848m를 '고상돈로(어승생 저수지~1100고지·8848m)'에서는 수평으로 걷지만 그의 도전정신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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