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돈로 전국 걷기대회’ 1500여명 참가 성황
“그의 도전정신 어떻게 계승할까 고민 이어져야”

▲ 6일 '한라산 고상돈로 전국 걷기대회'의 참가자 행렬이 한라산 고상돈로 위로 끝없이 이어졌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6일 오전 제주 한라산 1100도로 일부 구간이 색색의 등산복 차림 행렬로 가득 찼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간간이 이어졌다. 빗물에 젖어 무거워진 등산화를 신고도 사람들은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를 밟은 고(故) 고상돈(1948~1979)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대한산악연맹 제주도연맹(회장 박훈규)·㈔고상돈기념사업회(회장 박훈규)가 주최한 ‘한라산 고상돈로 전국 걷기대회’가 이날 ‘고상돈로(路)’에서 개최됐다. ‘고상돈로’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지난해 2월 한라산 1100도로에 조성된 명예도로다.

▲ 어승생 삼거리에서 열린 '한라산 고상돈로 전국 걷기대회' 개막식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행렬은 고상돈로 일부인 어승생 삼거리에서 시작됐다. 1100도로 휴게소에 이르는 직선거리는 8848m다. 1977년 고인이 오른 에베레스트 높이와 같은 거리다.

1100도로 휴게소 인근에 자리한 고상돈 공원에는 고인의 묘역이 조성돼 있다. 고상돈을 만나러 가는 길은 10도 안팎의 오르막과 1차선 도로를 걷는 위험까지 더해져 쉽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는 40여명의 전문 산악인들로 구성된 요원들이 참가자들의 안전을 지켰다.

오르막으로 이어진 고상돈로는 힘들게도 했지만 동시에 치유도 했다.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는 물론 곳곳에 숨어있던 산나무 열매들이 그랬다. 한 참가자는 “걸을 수록 힘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 우산과 비옷, 모자 등으로 비를 가리면서도 꿋꿋이 고상돈로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고상돈로 위 표정ⓒ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한 참가자가 손자의 손을 이끌고 고상돈로를 오르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어리목 휴게소 주차장을 지나면서 붉은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늦은 단풍 구경에 사람들은 넋을 잃기도 했다.

길 위에선 500m 단위로 된 표시가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드디어 안개에 잔뜩 싸인 고상돈 공원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곳엔 정상에 선 기쁨을 공감한다는 듯 동상 고상돈이 깃발을 번쩍 들고 서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완주한 이정임(40) 씨는 “제주에 평생 살면서도 고상돈이란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며 “아이들과 함께 그를 기억하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역시 완주한 김영심 제주도의회 의원(민주노동당)은 “고상돈의 업적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이를 다시 교과서에 실을 수 있도록 교육청에 제안하고 있다”며 “고상돈의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세계적 산악연맹 회의를 유치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고상돈은 한라산에서 꿈을 키우고, 죽어서도 이곳에 묻혔다. 당시 그와 한국에 최고의 도전이었던 에베레스트 8848m는 이제 많은 이들이 함께 걷는 길이 되고 있었다.

▲ 고상돈 공원에 세워진 고상돈 동상이 완주자를 맞았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고상돈 공원에 전시된 산악인 고상돈의 생전 모습.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행사장에 전시된 고상돈기념사업회가 발간한 인물 평전 '정상의 사나이 고상돈'.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박훈규 대한산악연맹 제주도연맹 회장·고상돈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상돈이 높이 8848m를 올랐다면 오늘 우리는 8848m의 거리를 걸으며 좌절하지 않는 도전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격려사에서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은 한라산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상돈 만큼 산악인들에게 사랑받는 이는 없다”며 “산악인 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그의 철학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던 김영도 77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은 “고상돈은 8848m를 수직으로 올랐지만 우리는 오늘 수평으로 이 길이를 걷는다”며 “의지와 정열이 있어야만 오를 수 있는 두 길은 차이가 없다”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 박훈규 대한산악연맹 제주도연맹 회장·고상돈기념사업회 이사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고인과 함께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던 김영도 77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목적지인 고상돈 공원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어리목 주차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붉은 단풍으로 물든 산의 모습.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한 참가자가 조릿대를 꺾어들고 고상돈로를 오르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고상돈로 주변에서 쉽게 맛볼 수 있었던 보리수나무 열매(제주어로 '볼레').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고상돈공원 도착 직전 만날 수 있던 습지.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완주 뒤 1100도로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는 한라산 전경.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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