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결과는 1945년 이후 치열하게 전개된 자유와 평등, 친일과 독립운동, 독재와 민주화, 성장과 복지 등 우리사회 담론 투쟁의 앞날을 예시해 주고 있다. 최근 선풍적 화제를 몰고 온 ‘나는 꼼수다’는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보도한 바와 같이 “정부가 인터넷 여론을 옥죄고 언론자유가 후퇴한 상황에서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방향 소통과 승자독식의 형태로 나타난 토론 문화의 환경과 구조를 바꾸라는 신호인 셈이다. 황폐화된 공론의 장을 복원하라는 메시지다. 

조선시대의 당쟁에서 비롯된 목숨을 건 담론 투쟁은 노론(老論)세력이 최종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평정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나라를 일본에 ‘헌납’하고 일제의 주구로 전락하면서 친일파와 독립운동파로 나누어 갈등과 대결이 이어졌다. 해방 이후 정치ㆍ경제ㆍ담론 권력을 장악한 친일파 후손들은 일제의 근대화론과 친일 행위 미화, 독재 찬양, 토건과 성장 지상주의가 국가의 정체성이라며 국민의식을 바꾸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4.19, 6.10, 민주화 세력의 집권 등 반전의 기회도 있었지만 산업화의 달콤한 열매와 풍요로움의 환상에 빠져 새로운 담론은 이렇다할 힘을 얻지 못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세상의 변화를 품에 안고 서로 소통하고 협동하고 창조하는 지성적 대중이 등장했다. 똑똑한 대중은 자유와 평등의식으로 무장하여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체득하고, 주체적으로 시대를 변화시키려는 구체적인 권력의지를 갖출 정도로 성장했다. 이번 보선에서 20~40대가 주도하여 만든 체제 전환적인 담론 환경은 지성적 대중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정당무용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3의 정치세력에 대한 선호도가 기존 정당에 대한 선호도를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존 담론 시장에서는 권력 지배자와 전통미디어 등 소수 세력이 소통권력을 장악했다. 이제는 개인이 미디어를 소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민 모두가 각기 다양한 정보를 수집ㆍ생산해서 비판하고 전파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앞으로는 일방향 소통 위주의 전통미디어와 쌍방향 소통에 기반한 개인미디어의 경쟁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념의 덫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조․중․동의 프레임에 갇힌 과거 회귀의 불통 세력과 자발적 소통의 광장인 SNS로 무장하고 트렌드와 변화ㆍ혁신을 중시하는 미래 지향의 소통 세력이 대결하는 양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해봐서 안다, 내 임기 중에 경제위기가 온 것이 다행이다,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이다”라며 일방적으로 국민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선거 결과를 두고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우월의식이 가득찬 표현은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모습 때문에 국민이 절망하고 민심이 이반되는 것이다.

성장 지상주의를 상징하는 4대강 사업과 신자유주의의 화룡정점인 한미 FTA도 상호 소통보다는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반대한다. 국민들은 절대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한미 FTA의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 논란에 대해 “국제사회에 대한 모욕이고 우리 품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폄훼했다.

김효재 정무수석은 11월 7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을 걸어 닫은 김일성의 선택과 문을 활짝 연 박정희 전대통령의 선택이 오늘날 남과 북의 차이를 만든 결정적 요인”이라며, 한미 FTA 반대 측을 북한 체제에 찬성하는 세력으로 비유했다. 색깔론까지 동원하며, 긍정적 측면만 이야기하고, 자연 파괴나 양극화 심화 등 어떠한 폐해가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자세다.

미국 UCLA대학 교수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총ㆍ균ㆍ쇠>에서 ‘도둑정치’(클렙토크라시, kleptocracy)라는 말을 하고 있다. 특정한 이념과 종교 등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화하려 하고, 정치적 절차는 형식과 껍데기만 남고 지배자들의 의사가 일사천리로 관철되며, 일체의 반항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공론의 장은 항상 혼란 스러운 법이다. 민주정치에서 혼란은 정상적인 과정이다. 소통의 기본은 경청과 공감이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존중하는 것이다. 귀와 눈에 거슬리는 것, 소소한 것, 어긋나는 것, 다투는 것과 같이 세세한 것들에 대해 경청하고 공감해야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소통은 디테일 속에 있는 것이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점점 더욱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들은 학자금, 일자리, 자녀 교육, 경쟁과 노후의 불안정 등 자기 생활과 밀착된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념적인 유토피아보다는 생활의 행복을 선호한다. 우리 사회의 정치는 대중의 다양한 감성의 변화와 지적 상상력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쌍방향 공론의 장을 정착시켜 담론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일방향 소통은 권위주의 독재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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