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의도 무시 처사” VS “우리에겐 정문일 뿐”

▲ 파란색으로 바뀌기 전 제주제일고등학교 초대형 조각 교문. ⓒ제주의소리

빨간색에 유난히 집착한 작가가 있었다.

설치 당시 국내 고등학교 교문 가운데 가장 크다고 알려진 그의 제주일고 빨간색 초대형 조각 교문이 어느 순간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회화와 조각 등 종횡무진 장르를 넘나들며 제주미술계를 이끌었던 故 한명섭 작가(1939~2004)의 작품 색깔이 바뀌는 사건이 지난 6월 벌어졌다.

이 작품은 처음 세워질 당시부터 국내 고등학교 교문중 가장 크다는 위용을 자랑하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1999년 LH공사(당시 한국토지공사) 제주지사가 이 학교 주변 택지개발을 하며 불편을 감수한 데 따른 감사표시로 학교 측에 기증한 것이다.

두께 22mm의 철판을 이용해 높이 12m, 폭 18m, 총 무게 30t 규모로 지어졌다.

당시 그는 “제주일고의 상징인 ‘一高’라는 한자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며 “제주일고인들의 높은 기상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한 작가는 조각 작품의 색만큼은 명시도가 좋은 붉은색을 고집했었다.

제일고 교문과 비견될 만한 작품으로는 제주민속자연사 박물관 정문에 서 있는 거대 돌하르방 모양의 철제 조각작품 ‘섬하르방’이 있다. 이 작품 역시 붉은색이다.

▲ 지난 6월 파란색으로 바뀐 제주일교 앞 초대형 교문. ⓒ제주의소리

그가 타개한지 6년째에 접어든 어느 날 시련이 시작된다. '빨간 도끼'를 연상시킨다는 등 학생과 동문·학부모들이 색깔을 바꾸자는 요구가 일었던 것.

학교 측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빨간색'이 '파란색'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김광수 제주제일고 교장은 “녹이 슬어 색을 다시 칠 하려던 참에 교색인 파란색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동문과 학부모·학생들 사이에서 나왔다”며 “빨간색 문이 ‘빨간색 도끼’ 등 부정적 이미지로 비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빨간색에 의미가 있을까 해서 나름대로 알아봤지만, 녹을 덜 입는 색일 뿐 특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우리에겐 정문이다. 제주일고 학부모와 동문 다수가 바꾸자는 생각이라서 가만 놔둘 순 없었다”고 밝혔다.

한 작가에게 교문 제작을 의뢰한 당시 제일고 미술교사였던 김승관 도교육청 장학사는 “제일고 관계자들 사이에서 교문 색과 관련한 여러 논의가 있었다”며 “학교 측은 여론 조사를 거쳐 파란색으로 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유정 미술평론가는 “조각 작품에 있어선 색이 매우 중요하다”며 “색이 바뀌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또 “원작의 의도를 살려야 했지만 마음대로 색을 바꾼 것은 작가의 의도를 무시한 처사”라며 "이제라도 원래 색인 빨간색으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했다.
 
제주일고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다. 상징 동물을 청룡으로 삼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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