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제주대 교수

I. 김만덕 재단은 어떤가?

며칠 전 (사)김만덕기념사업회의 학술대회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의인 김만덕이 ‘평범한 여성들의 롤 모델’임을 강조하였다. 평범한 여성이 돈을 벌어 멋지게 쓰고 또 금강산 구경을 통해 인생을 즐기는 풍류여아의 대표로서 의인 김만덕이 독특한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제주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를 통해서도 김만덕 만한 의인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기에 제주도민이 나서서 의인 김만덕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재창출하는 일련의 다양한 학술적-문화적-사회사업적 구상을 찾을 필요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김만덕 재단도 그 하나의 방안이 아닐까. 이건희나 정몽준 같은 특정 기업인의 기부가 아니라 제주도민 모두가 참여하는 십시일반의 재단을 만들어, 그 수익으로 제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쓰는 건 어떤가.

그 누구도 일방적으로 큰 돈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 특정인의 입김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상한과 하한의 기부금을 정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일 수 있다. 2009년에 김만덕기념사업회가 나눔쌀 만 섬 쌓기를 할 때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것은 십시일반의 모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의인 김만덕의 선행을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되살리는 것은 김만덕 같은 특정인의 기부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널리 십시일반의 정성 모음에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차 60만에 달할 제주도민을 포함하여 도합 120만으로 추정되는 제주도 내외 도민의 합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민의 기십을 살리는 데 120만 도민이 한데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나가는 제주 살리기 운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복지-평화를 추구하는 복지재단일 수도 있고,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는 글로벌재단일 수도 있다. 요는 누가 주체가 될 것이냐인데, 그 시작은 도민의 대의기관인 제주도의회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 차제에 제주도의회 의원들부터 십시일반으로 김만덕 재단을 열어나가는 첫걸음을 내디어보는 건 어떤가.

II. 글로벌 시대의 김만덕

유관순은 누나고, 신사임당은 어머니라면, 김만덕은 할머니가 더 어울린다는 것인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는 더욱 어렵다는 돈을, 의인 김만덕은 스스럼 없이 내놓았다. 이명박 처럼 대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으며,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안철수처럼 선의와 정치적 의도가 중첩되는 행위도 아니었다. 의인 김만덕의 배품에서 본질은 이웃사랑이 아닐까.

기근에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인 김만덕은 ‘위대한 김밥 할머니’를 연상케 한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면, 삶의 후반부에 이르러 찬찬히 주위를 돌아본 결과 자연스럽게 나온 자신의 삶의 한 정리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안혜경은 김만덕을 노래 불렀다. ‘곶간 열고 재물내어 이 한 몸을 비우니...아 아 출육금지 뛰어넘은 이...한라는 이 할망을 잊지 않으리...“ 나아가 수다콘서트에서 안혜경은 김만덕의 선행 못지않게 그가 조선조를 살았던 제주여성의 한을 환기시키고 있다. 김만덕 노래를 들으면서, 불현듯 조선조 시대에 제주여성에게 가해졌던 출육금지령에 소름이 끼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한 때 제주를 떠나 더 큰 곳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꿈꾸었을지도 모를 김만덕에게 나이가 들어 마지막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금강산 구경을 빌미 삼아 천하를 유람해 보는 것일 게다.

그렇게 의인 김만덕이 글로벌 시대의 제주도민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출육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하는 것일 게다.

▲ 양길현 교수 ⓒ제주의소리
비행기와 공항이 없어서 제주가 쉽게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도 현대판 출육장애물일 게다. 제주도민이 제주를 떠나 서울과 부산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게 베이징과 도쿄로 갈 수 없다면, 그것도 현대판 출육장애물이다.

제주-서울처럼 제주-상하이도 1시간 항공으로 오갈 수 있는 것이라면, 이에 걸맞게 큰 차이가 없는 가격으로 제주와 상하이를 오가는 것이 쉽게 가능하도록 하지 않는 한, 제주국제자유도시는 번지르한 구호에 불과할 뿐임을, 안혜경의 노래에서 의인 김만덕은 그렇게 설파하고 있는 것일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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