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순두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그의 나이 예순 여섯. 서른·마흔 줄넘긴 아들딸 셋에, 손자만 여섯이다. 제주MBC 아나운서로 시작해 KCTV제주 사장까지 40년 언론인 생활도 거쳤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돌연 월급도 없이 활동비 명목으로 달랑 월 100만원 받는 일을 1년 전부터 시작했다.

그는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는 끝없이 어려운 문제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보람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기 1년을 맞은 김순두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의 이야기다.

▲ 김순두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수억 회장님’도 울고 갈 ‘100만원 회장님’의 열정

29일 제주시 이도1동 상록회관 4층에서 만난 ‘100만원 회장님’은 연신 웃고 있었다.

제주는 기업의 거액 기부가 많지 않은 대신  ‘깨알 같은’ 기부 보람이 있는 지역이라고 했다. 다닐 곳도 많고, 일 할 맛도 난다고 했다. “안덕이든 표선이든 제주도 전역을 오라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고 말했다.

“한 달에 1만원씩 1년 12만원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6400여명에 이른다. 매달 3만원 이상 기부하는 소규모 업체를 ‘착한 가게’라고 부른다. 도내에 350여 곳이 있다. 이런 식으로 11월 현재 벌써 25억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전국이 놀란다”

올해 목표액 28억7천만원의 88%에 달하는 액수가 모인 셈이다. 다른 지역 모금회들이 12월 막바지에 부랴부랴 모금 캠페인을 벌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제주가 지난해 1인당 기부금이 가장 많은 지역 2위를 했다. 1위는 울산이다. 알다시피 대기업들이 많은 곳이다. 반면 기업이 많지 않은 제주에서 2위를 한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도내 1억 이상 기부 기업은 제주도개발공사와 제주농협 정도다. 나머지 금액은 모두 도민과 소기업들이 모아준 소액 기부금들이다.

이들이 기부의 뜻을 밝히면 김 회장은 어디든 간다. “감사한 마음에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연말연시 기부의 상징인 ‘사랑의 열매’가 제주에선 1년 365일 피는 셈이다.

▲ 김순두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착한가게'에 다는 현판을 소개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깨알 같은 기부 손길 365일 이어지는 제주

자발적인 기부자들을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진 않았다. 김 회장은 올해 처음 제주형 기부 방식을 발굴하고 나섰다. ‘문화티켓 기부’와 ‘재일제주인 1세대 고향방문’이 대표적이다.

관광지의 입장권을 기부 받아 소외계층에 나눠주는 ‘문화티켓 기부’는 돈뿐 아닌 문화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 회장은 “관광지는 세금혜택을 받아 좋고, 소외계층은 가보지 못 했던 유료 관광지를 가볼 수 있어 양쪽의 반응이 모두 좋았다”고 말했다.

보다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재일제주인 1세대 고향 방문 캠페인이었다. 도민 기부금을 모아 올해에 12명의 재일제주인 1세대가 고향을 방문했다.

김 회장은 “일본 귀화자들은 월 10만엔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귀화하지 않으면 3만엔을 준다. 대부분 80대 이상인 분들이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고향을 방문한 분들 대부분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고향에 도착하자 눈물을 하염없이 흐르는 모습이 마음 짠했다”고 말했다.

제주출신 재일동포는 2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80세가 넘는 재일동포 제주인 1세대는 1만 명이다.

김 회장은 “과거 감귤과 도로포장, 지붕 수리 등 재일동포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거꾸로 이들에게 도움을 줄 때가 됐다는 생각이었다”며 “기부의 외연을 확장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연속 사업으로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내년엔 20여명의 동포들을 초청하는 한편 생활비도 보조할 예정이다.

◇ “이름 밝히면 되찾아가겠어요” 거액 기부자의 엄포

▲ 김순두 회장이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조직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 각분야 인사들로 구성된 각 위원회가 모금과 배분, 감사를 맡고 있어 투명하게 전달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대기업의 도움 없이도 제주는 해마다 공동모금 목표액을 너끈히 달성해 왔다.

이것이 소외된 이웃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른 곳에선 생각하지 못한 제주형 기부 방식을 개발하는 것도 모금회가 하는 중요한 일이다.

김 회장은 “제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하고 있는 도내 사회복지 기관·단체들은 400여 곳에 달한다. 우리가 돌봐야할 소외계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제주엔 장애인 3만1000여명, 노인 7만여 명, 독거노인 1만2600여명, 한부모가정 3400여명, 다문화 가정과 탈북자 2200여명이 있다”고 소개했다.

때론 눈물 지을 만큼 안타까운 사연도 접하게 된다. 김 회장은 특히 ‘차상위급’에 마음이 쏠린다고 했다. 복지계 전문용어인 차상위급은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있어 사회적으론 드러나지 않는 소외계층을 말한다.

김 회장은 “구좌읍과 한경면, 서귀포시에 방임 아동 지원을 위한 단체가 있다. 이곳은 법적으로는 부모가 있지만 이혼 등의 이유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다. 법적 부모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소개했다.

특별한 기부 사연도 부지기수다. 남모르게 큰돈을 기부한 사람들과 가난하면서도 선뜻 기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용기’였다.

김 회장은 “거액을 기부하면서 ‘이름을 밝히면 다시 찾아가겠다’는 분들이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죠. 또 기부를 받는 이들보다 더 가난한데도 기부를 하는 이들도 있어요. 우리 사회엔 이런 분들 굉장히 많다”고 전했다.

올해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의 온도를 재는 ‘사랑의 온도탑’이 제주도청 1층 로비에 세워진다. 2m 높이의 온도탑은 1531만원이 모아질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올해 목표액은 15억3100만원이다.

김 회장은 기부야 말로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는 “돈만으로는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 1인당 국민 소득이 몇 만 달러에 달하는 중동이 선진국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것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인터뷰 도중에도 기부의 뜻을 밝히는 전화를 받았다. 김 회장은 “내일 당장 가겠다”고 흔쾌히 답했다.

우리 사회의 온정은 아직 뜨거웠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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