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이 만남사람] 퇴임 앞둔 김병립 제주시장 

  김병립(58) 제주시장. 인구 42만의 거대 제주시를 1년6개월 동안 이끌다 이제 채 열흘도 안 돼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1972년 9급 공채로 공직생활에 첫발(제주시)을 디딘 후 제주도청 6급 공무원으로 명예 퇴직했다. 22년 공직생활이었다. 얼마 후 그가 다시 얼굴을 보인 건 선출직 공직자인 지방의원으로. 7대 기초의원선거(1998년)에서 무투표로 제주시의회에 무혈입성한 그는 후반기 시의회 의장을 지내더니 단숨에 제주도의회에 진출 7~8대 재선의원으로 8대 도의회 부의장도 맡았다. 순탄할 것으로 생각했던 3선을 앞둬 일찌감치 불출마를 밝히고, 우근민 후보 진영에 몸을 담으면서, 또 한번 변신을 시도했다. 민주당 복당파문으로 우 후보가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을 때 그와 동반 탈당하고 당내 지지자를 결집시켜 당선 일등공신이 됐다. 정치적 고향인 민주당을 탈당하는 논란과 갈등, 상처도 입었지만 제주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공무원과 지방의원을 두루 경험해 이른바 ‘문무(文武)’를 겸한 정치인으로 불린다. 집행부에 대해 유연하면서도 할 말은 반드시 한다. 공사(公私) 구별과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는 평을 받는다. 제주시장에 임명돼 출근길을 전용승용차를 놔두고 시내버스를 이용할 때 “저거 얼마나 갈까?”라고 비꼬는 이도 있었지만, 그를 아는 이는 “보면 알 것”이라고 했고, 김 시장은 결국 끝까지 시내버스를 이용한 시장으로 남았다.

  그에 대해선 “임명직 한계 속에 별 탈 없이 제주시정을 잘 이끌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새로운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교차한다. 다만 지난해 8월과 이번 12월 그가 사임 의사를 밝혔을 때 우 지사가 두 차례나 유임을 당부했단 사실은 그에게 부정보다는 긍정적 시그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인 스스로도 느끼는 임명직 한계 때문일까, 그는 인터뷰 내내 기초자치단체 폐지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기초자치단체 폐지로 제주시는 (각 분야에서) 10년 이상 후퇴했다. 자기결정권, 즉 예산.인사권이 없어지면서 행정질서가 왜곡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민들이 누려야 될 행정서비스가 침해되고 있다. 지금 상태로는 건전한 행정시 발전은 어렵다.”면서 당시 행정구조개편을 주도한 공무원들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초자치단체를 없애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들었던 행정효율성과 예산절검에 대해서도 김 시장은 “도-시간 업무배분은 제대로 안됐고, 권한은 도로 집중되면서 행정효율은 더 떨어졌다. 그리고 시민들이 요구하는 곳에 예산이 투입되지도 못했고, 공무원 수가 줄어들지도 않았다”면서 지금 있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만이라도 자치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 못지 않은 분명한 의회주의자였던 그는 “의회가 하는 일은 시민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시민만 대변하거나 이익단체를 대변해서는 안된다. 전체 시민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며 일부 빗나간 의정활동에 대해 꼬집었다.

  마지막을 함께 했던 공무원 도리에 대해서도 “정치는 국민 삶을 윤택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행정도 당연히 정치와 다르지 않다. 행정하는 사람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지 않으면 도태된다. 공직자 중 일부분이지만 월급을 받는 노동자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공무원은 국민과 특수한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의무나 책임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병립 제주시장과의 인터뷰는 12월16일 오후 제주시장실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 김병립 제주시장
다음은 김 시장과 인터뷰 내용이다.

“대중교통 이용한 건 시민과 호흡하고 권위 버리기 위해서...”

- 1년 6개월간 시정을 이끌었던 제주시장직 퇴임을 앞두고 있다. 공직생활을 입문한 곳이기도 하고, 기초의회 의정활동을 벌였던 곳이서 소감이 남다를 텐데?
“제가 공무원을 제주시에서 시작했고, 1995년 그만둔 후 한 일이 제주시의회 의원, 제주도의원이었다. 이제 돌고 돌아 제주시청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제주시청과 특별한 연을 가진 것 같다. 시의원과 도의원을 할 때보다 더 치열하고 더 힘들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하면서도 대과없이 마무리할 수 있어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시장 취임 후 대중교통 출근을 변함없이 이어왔다. 일각에선 ‘보여주기식’일 것이란 비판도 있었는데.
“의원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고위공무원이 되거나 사회적 저명인사가 되면 대중교통은 이용하는 예가 거의 없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장으로 부임하면서 시민의 눈높이에서 같이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권위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위공직자들이 목에 힘이 들어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게 버스 출퇴근을 하게 된 이유다. 버스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공무원들이 자가용 출퇴근 비율이 줄어들었다.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

- 시민들과 출퇴근하면서 무얼 느꼈나?
“시민 생활이 ‘참 팍팍 하구나’ 느꼈다. 제가 타고 다니는 시간대는 대부분 학생이거나 일자리를 찾아서 출근하는 어르신들이다. 젊은 사람이나 화이트칼라는 보이지 않는다. 시민생활이 어렵구나 느꼈다. 그런 느낌을 시정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 김병립 제주시장
- 제주시장 재임시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무엇이 힘들었나?
“민원을 해결하거나 개인의 답답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시청이나 시장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막다른 골목에 있는 분들이다. 저를 만나 민원을 제기하지만 현행법이나 지방행정기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 많았다. 속 시원히 해결해 주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컸다.”

- 또 이와는 반대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일을 소개해 달라.
“제가 잘해서라고 보다는 공직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제주시가 대과 없이, 사건사고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시민들로부터 비난받거나 욕먹을 일이 거의 없었다. 1년6개월 동안 시정운영 보람이었다. 이런 공은 직원들이 열심히 하고, 시민 협조가 있어서 가능했다.”

“지방의원, 특정계층.이익단체 이익만 대변하는 건 아닌지...”

- 김 시장은 누구보다 공무원 생리를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민들은 공무원들이 도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공복이라기보다는 군림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시민들은 일상 대부분의 생활에서 행정이 해결해 줘야 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차원에서 공직자 불만 있을 수 있다. 이런 의식은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기초자치단체장이나 도의원, 시의원들의 정치적 목적, 즉 재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정에서 해주는 것으로 진행해 오다보니, 시민들은 시민이 해야 할 일을 행정이 해야 되고, 해주지 않으면 거부감을 갖고, 욕을 하는 것 같다. 시민도 사회구성원으로 권리도 있지만 의무와 책임이 있다.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책무.의무도 같이 짊어지고 가야 사회가 발전한다. 행정에만 의존하면 사회발전 속도가 떨어진다.”

- 집행부를 견제하는 지방의원과 거꾸로 견제를 받으면서 살림살이를 이끌어가는 집행부 다 해 봤다. 견제와 감시, 또 올바른 집행이 제대로 되고 있나? 즉 의회와 집행부의 관계가 어떻다고 보나.
“지방자치 원리를 보면 의회는 주민 권리구제다. 시민을 대신해서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회가 하는 일은 시민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시민만 대변하거나 이익단체를 대변해서는 안된다. 전체 시민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특정지역, 일부계층의 이익만 대변하는 의회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의회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또 시민 훈련이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점차 나아질 것이다.”

- 반대로 과연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지방의회가 집행부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나?
“충분하지는 않다. 지방의회가 정치권력에 예속돼 있다. 또 지방행정 제도 자체가 아직은 완전 하지 않다. 지방자치가 되기 위해서 보완이 필요하다.”

“자치권 없어져 시민권리가 침해되고 행정질서가 왜곡.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 지난해 시장 취임 기자회견서 “더 이상 신제주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말로, 행정시 위상 강화, 즉 인사권과 예산권 강화에 주력할 뜻을 밝힌바 있다. 이제 돌아가는 입장에서 행정시의 위상을 평가해 본다면. 
“제가 특별자치도를 시행하기 전인 2005~2006년 도의원 생활을 하면서 행정시를 만드는 것, 즉 자치권을 없애는 것에 대해 줄기차게 반대했다. 특별자치도 만들어지면서 행정시가 자치권이 없어졌다. 이는 시민 권리 침해다. 또한 권한이 도청에 집중되면서 많은 부작용 발생하고 있다. 행정시를 중심으로 보면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구체적인 연구결과는 없지만 제주시가 10년 이상 후퇴하지 않았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행정시가 되면서 자기결정권. 예산.인사권이 없어지면서 행정질서가 왜곡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될 행정서비스가 침해되고 있기 때문에 불만이 상당히 많다. 어떤 방법이 됐든 행정체제개편 작업과 새로운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건전한 행정시 발전은 어렵다.”

- 특별자치도가 되면 행정의 효율성 높일 수 있고,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주요 논리였다. 실제로 효율성과 예산 절감 효과 있었나.
“안됐다. 그 당시 중복업무를 폐지하고, 인력을 줄여서 행정의 효율성과 지역개발, 복지를 할 수 있다는 게 주요 논리였다. 시의회가 없어지면 시의회 예산 수십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특별자치도가 된 이후 도와 시간의 업무배분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권한은 도로 집중되면서 행정효율은 더 떨어졌다. 그리고 시민들이 요구하는 곳에 예산이 투입되지도 못한다. 시민 밀접하게 생활하는 행정시에 예산권 주어지지 않아서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공무원 수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그 당시 시군폐지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 기초자치단체 부활은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구상은
“마산.창원.진해가 통합했다가 다시 나누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제주도에서 행정구조 연구를 다시 하고 있는데 제가 보는 것은 자치단체를 부활하는 게 최선이다. 물론 행정계층을 4개로 나누자는 것은 아니다. 2개 행정시만이라도 자치권을 부활시켜야 한다.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제주도 도시개발계획이. 광역으로 됐다. 하지만 광역계획이 이뤄지면서 제주시는 관리지역, 서귀포시와 읍면지역은 개발촉진지역이다. 이는 사회주의적 개발방식이다. 이게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서울시가 비대했다고 해서 수도권을 규제했는데 성공한 적 이 없다. 지역실정에 맞는 개발계획이 필요하다. 제주시는 아무것도 개발하지 말고 그대로 놔두고, 서귀포만 개발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지역균형발전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기초자치단체에 자치권 주는 것은 당연하다. 우근민 지사 주장하는 시장 직선제도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자치단체를 자치권을 부활해야 한다.”

▲ 김병립 제주시장
“대선정국, 어떤 형태로든 역할해야 한다는 생각 갖고 있어”

- 퇴임 후, 자연인 김병립으로 돌아갈건가? 총선에 대해선 이미 여러 번 선을 그었는데...
“우선 6개월 정도 푹 쉬고 싶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 때가서 생각해 보겠다.”

- 내년엔 대선도 있다. 김병립 시장은 옛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끄는 한반도재단 제주얼굴을 했었다. 그 이후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와도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대선에 관여할 게 아닌가란 이야기도 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 한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을 이끌 사람들이 정치일선에 나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 한다. 어느 분이냐는 것은 아직 모르지만 아마 대선이 시작되면 어떻든 역할은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이 민주통합당으로 합당했다. 복당 생각은 없나.
“당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고 있다. 내년 대선정국에서 자연인으로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 시장 네트워크가 만만치 않다. 중앙정치권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제주를 위해 도움을 줄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당연히 해야 된다. 도민으로서 역할이다.”

- 한국의 정치, 제주정치가 이제 변환기, 격동기를 맞고 있다. 이른바 안철수 효과로 대표되는 소통의 정치를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 또는 공직자들이 국민과 도민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할지. 
“정치적으로 연관해서 할 건 아니지만 어쨌든 행정 존재 목적은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는 국민 삶을 윤택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행정도 당연히 정치와 다르지 않다. 학문적으로 정치행정 일원론, 이원론 등의 말이 있지만 전 일원론이 맞는 것 같다. 다만 행정이 더 국민과 밀접하다. 시민들이 바라보는 행정은 시민이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줘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괴리는 줄이기 힘들다. 공직자 의식과 행태도 문제다. 지금까지 공무원들이 월급이나 받아먹고 어영부영 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은 안된다. 행정하는 사람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지 않으면 도태된다. 공직자 중 일부분이지만 월급을 받는 노동자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은 국민과 특수한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의무나 책임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을 갖지 않는 공직자는 스스로 물러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 후임시장. 공모과정. 후임시장 전해주고 싶은 말. 인수인계라고 할까.
“시장님으로 오시는 분은 저보다 인격이나 능력이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 부딪치면 조언도 하고 정보도 주고, 뒤에서 적극적으로 돕겠다.”

- 마지막으로 제주시민에게 인사부탁드린다.
“시민 여러분 1년6개월 동안 제주시정을 이끌어오는 동안 적극 참여해 주시고, 협조해 주셔서 고맙다. 앞으로 제주시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뒤에서 힘껏 돕겠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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