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린 시인. ⓒ제주의소리
김규린 시인의 첫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1999, 왼쪽)와 두 번째 시집 열꽃 공희(2011). ⓒ제주의소리
[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김규린의 11년만의 두 번째 詩集  <열꽃공희>  

첫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에 이은 두 번째 시집 <열꽃공희>

▲ 김규린 시인. ⓒ제주의소리

김규린, 그녀는 제주도시인입니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제주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학위도 취득한 오롯한 제주시인입니다.

199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그녀의 첫 시집은 199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나는 식물성이다>입니다.

요즘 “나는 가수다”와 그리고 장안의 화제인 “나는 꼼수다”보다 11년 먼저 “나는 식물성이다.”라고 자기고백을 했던 셈이지요.

첫 시집 이후 11년만에 두 번째 시집이 나왔습니다. <열꽃공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의 시집을 거실에 꽂아두고 눈길만 주다가, 요 며칠 읽기에 열중했습니다. 모처럼의 시 읽기에 몰두하다 무언가 쓰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시의 느낌이던지, 아니면 제가 아는 그녀 얘기 던지요. 어쩌면 서평이 아닌, 사람 평이 될지 모를 우려를 하면서 말입니다.

초등학교 6년 내리 같은 반이었던 그녀의 동시(童詩)적 재능. 나에게 굴욕을 안겨준...

그녀의 시 얘기를 하려니 자연스레 그녀의 어릴 때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아 진즉에 얘길 했어야 옳았네요. 사실 김규린시인은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초등학교 6년을 같은 반, 같은 중학교, 그리고 제주대 국문과에 같이 입학하고 같이 다녔으니, 동성이 아니래도 오랜 친구라 하는 데는 별 이견이 없겠지요.

유별난 제 기억력 때문만이 아니라도 생각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은  바로 시적 재능입니다. 초등학교때는 동시였으니 童詩적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어땠냐고요. 산문이나 동시가 교실 뒤 학급자랑에 이따금씩 걸리는 것으로 만족을 하는 터였습니다.

저는 “비가 나린다.”라고 그녀의 첫 시를 기억합니다.
오학년 국어시간, 담임선생님이 돌아가며 자신이 쓴 시를 발표하게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비가 나린다.”라고 읽었습니다. “비가 내린다.”를 잘 못 읽었나 해서 다시 귀 기울여 들어보니 역시 마지막 연을 “비가 나린다.”로 마무리 하더군요. 묘한 여운이 일었습니다. “내린다.”와 “날린다.”의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초등학교 5학년이 동사변형으로 기막히게 표현한 것입니다. 열 한 살짜리가 말이지요.

그래도 나름 글짓기에는 자신 있었던 저를 결정적으로 절망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5학년 말, 우리 효돈국민학교에서는 몇 명을 뽑아 서귀국민학교로 글짓기대회를 갔습니다. 외솔회주최였습니다. 그땐 서귀국민학교가 서귀읍에서 가장 큰 학교였습니다. 전도글짓기대회 서귀읍 대회장소였던 것이지요. (어감상 그때 명칭 그대로 표현합니다.)
그 때 시제가 <새해맞이>와 <한라산>이었고 전 <한라산>을 택했습니다.

한라산의 품안에 안겨 있어 우리는 든든하다. 라는 내용을 딴에는 은유와 비유를 적절하게 써 가다 생뚱맞게 맨 마지막 연에 /한라산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깨끗한 공기/ 북한동포에게 실어 보내자/ 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어린이들, 철저한 반공교육의 결과물을 몸소 보여줬던 셈이지요.

그런데 그녀의 대상 수상작, 그것도 초등 5학년 아이가 쓴 <새해맞이>의 맨 마지막 부분... 저를 절망하게 했던, 요즘 말로 하면 그녀는 저에게 의도하진 않았지만 굴욕을 안겨주었지요. 그때가 1978년이었고 우린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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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도의 새싹아 웃어주어라
8년도의 낙엽은 웃고 간단다.

<새해맞이> 끝 부분

외로움, 시쓰기, 그리고 거듭나기

김규린은 마음이 참 여립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세상에게 상처를 쉬이 받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외로워하고 누군가와 마음 터놓고 자근자근 얘기 나누는 것을 그립니다. 초등 5,6학년때는 곰곰이 사는 의미에 대해 너무 집착한 후, 내린 결론은 “너무 허무하다.” 였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많이 외롭고 슬펐답니다. 대학2학년때 제게 그 얘길 덤덤히 들려줬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아예 글쓰기를 의도적으로 멀리 했답니다. 어떤 장르로 글을 쓰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글속에 녹아들어 너무 아플까봐, 너무 허무할까봐 두려워서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중학교도 동창인 그녀의 시를 그때는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네요. 어쩌면 중,고등 6년은 그녀의 휴지기이면서, 너무 아파서 오히려 그것이 시적영감으로 더 단단해지는 그런 시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울어서도 안 된다./ 아파해서도 안 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내 운명은/....이라고 기억되는 그녀가 대학1학년때 쓴 <오랑캐꽃>이 그걸 말해준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여
 어

에덴은 무사하다/ 라고 했던 <낙화> 등, 꽃을 주제로 한 대학시절의 연작 작업은, 이제 그녀가 겪었던 상처들이 덧나고, 치유되고, 새살 돋아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녀가 늘상 느꼈던 외로움의 본질을 시 쓰기를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터득했던 게지요. 비로소 그녀는 시로써 세상 밖으로 조심스레 나온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거듭나기>에 잘 표현했다고 제 나름의 해석을 내렸습니다. 그녀의 외롭고 치열한 고단한 시 쓰기의 과정이 확연히 나타나 보였습니다. 비록 그녀가 의도한 바가 다르거나, 저명한 평론가는 다르게 해석할지라도 시란 읽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할 무한한 자유가 있는 것이니까 말이죠. 요즘 말대로 제 멋대로 해석한다고, 본인의 입맛에 맞게 받아들인대도 쇠고랑차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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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알 수 없는 손이 다가와
내 가슴을 찬찬히 더듬고
뜨거운 피 스며들어 마침내 사지가 고요히 풀려 흐를 때
저만치서 조각상이 꽃씨를 던진다
스멀스멀 자라나는 잔뿌리......
오래 뿌리의 전신에 귀기울이면 차츰
잘록해지는 허리께에서 실핏줄만한 햇살이
환하게 새어나오고 있다

<거듭나기> 마지막 부분

시 쓰기, 창작, 그리고 제주의 문화 예술인....

▲ 김규린 시인의 첫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1999, 왼쪽)와 두 번째 시집 열꽃 공희(2011). ⓒ제주의소리

첫 시집이 나온 후 두 번째 시집 <열꽃 공희>가 나오기까지 꼬박 11년이 걸렸습니다. 참 길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시를 놓지 않았습니다. 우린 항상 결과물로서만 보려하고 파악하곤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란 바로 시집출간이 그것이지요. 하지만 그녀는 11년의 기간 동안 아마 두, 세권은 족히 더 내어도 될 분량의 시를 썼고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두 번째 시집출간 때문에 조바심도 냈습니다. 그러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시집 한 권 팔리지 않는 시대에 가끔은 맥이 빠지기도 했고요. 시집 한 권 사보지 않으면서 인터넷으로 시 한 편 후다닥 검색해서 문화인의 소양을 다했노라 하는 풍토에서 가끔 다 놓아버릴까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언제나 그 마음 끝엔 지금껏 지 새끼들을 포기하면 안 되는 어미처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결국엔 시 쓰기란 그녀의 운명같은 것이니까요.

이제 자의든, 타의든 오랜 침묵을 깨고 김규린의 두 번째 시집 <열꽃공희>가 나왔습니다.
올 봄에 나와서 여태껏 제 책장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니 저도 참 무심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친구이며, 그녀의 팬임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제가 죄책감에 이렇게 글을 쓰게된 것인 지도요. 그녀의 두 번째 시에 대해선 뭐라 평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그녀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열꽃 공희>전문을 싣겠습니다. 그 속에 그녀의 모든 여정이 나와 있으니까요.

이 글은 김규린 뿐만이 아니라. 제주의 문화예술인들. 아는대로 열거하자면 변변한 관객 없이도 재정난에 허덕이며 소극장을 운영하는 세이레극장의 정민자대표, 간드락 소극장의 오순희대표. 척박한 환경에서도 제주다운 춤사위를 지키며, 발전시키려는 제주전통예술원의 고춘식대표 등등 제주의 문화계에 계신 분들에게 평소에 관심을 갖지 못한 일종의 반성문인셈입니다.

시를 쓰고, 춤을 추고, 연극을 하는 제주의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처절한 행위에 관심을 갖기 바라며, 덧붙여 제가 사둔 김규린 시인의 시집 일곱 권이 있습니다. 주소 주시면 김규린시인의 친필을 받아 직접 보내드리겠습니다. (som0189@naver.com) 일곱권 이후에는 부디 사보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기회에 제주문화에 기여했다는 뿌듯함 누리시고요.

그런데 이렇게 허접한 글로 친구에게 괜한 짓 했다고 나중에 책망이나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여 이 글에 나온 그녀의 시는 <열꽃공희>를 제외하고  제 기억력에 의존해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제 멋대로의 기억으로 원래 시의 느낌과 의도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여태 들꽃으로 살았어도
들녘의 귀퉁이 한 자락 움켜쥐지 못했으니
그래, 이건 너무한 거다
배로 기어온 길바닥 위에
달팽이진액 흘리듯 끈적한 내장 쏟아낸 시절은
온전히 쓰라렸는가
번들거리는 살의처럼 타들어가는 야생잎들이
주위를 빙 둘러 피었다 서둘러 지고
나는 떨치지 못한 열독에 싸여
간혹 바람개비로 바다를 건지를 꿈을 꾸었다
스스로 짊어진 불더미를 고봉밥으로 떠서
꾸역꾸역 목구멍에 밀어넣을 때
생각했다 가끔 널
살해하고 싶었지만, 나
사랑이었을지 몰라 너 없인
불에 젖을 수가

가장 아름다운 꽃잎만 기르고 싶었던 공중화단에
주르륵 뿌리들이 번져 흘렀다
파지처럼 구겨진 가슴을 찢고
쓰라리게 시 하나가 ―

- 열꽃 공희 전문

김규린 '열꽃 공희(천년의 시작)' 8천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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