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 칼럼> 2012년 민주주의를 깨워야 강정이 산다

  새해를 30여분 앞둔 어젯밤 11시23분 국회가 2012년 새해 예산을 확정지었다. 민주통합당 표결 불참 끝에 325조4000억원이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2012년 정부예산 중 제주도 국고 보조 예산은 1조170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 9577억원보다 593억원이 늘었다. 처음으로 제주도 국고 보조 예산이 1조원을 넘어섰다.

Ⅰ. 여야 합의 국회 예산 삭감의 참 뜻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막바지까지 진통을 겪었던 예산은 제주해군기지 사업비였다. 하지만 여야는 정부 제출 1327억원 중 1278억원을 삭감하는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전체 예산안 중 96.3%를 삭감했다. 그나마 반영된 49억원엔 공사비가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전액 삭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회는 또 제주도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보상차원에서 건의한 지역발전예산 422억원도 대부분 삭감하고 23억원만 반영했다. 이 돈은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해군기지 갈등을 풀 ‘윈윈해법’으로 요구했던 예산이다. 즉,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수용하는 대신, 마을 주민들을 달랠 수 있는 당근 사업비였다.

  정부(국방부, 해군)와 제주도는 여야 합의로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사실상 전액 삭감한 뜻이 어디 있는지를 심각히 받아 들어야 한다. 여기엔 적게는 강정마을 주민을, 더 나아가서는 제주도민과 국민을 무시하는 듯 한 해군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공사강행을 더 이상 눈 감아 줄 수 없다는 국회의 뜻이 담겨있다.

Ⅱ. 해군의 안하무인격 사업 강행이 원인 

  여야가 인정하듯 해군기지를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하려는 해군 태도는 시종일관 안하무인이었다. 하다못해 남의 땅에 말뚝 하나 박으려 해도 땅 주인 동의를 받는 게 당연하건만, 해군은 주민들의 생존권을 뒤흔들 수 있는 해군기지를 지으려 하면서 주민동의 절차도 없이 막무가내로 밀쳐 들어갔다.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각종 인허가는 변칙과 편법이 난무했다. 국민들의 권리는 ‘안보’라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묵살됐다.

  강정마을 주민과 제주도민들만 무시당한 게 아니었다. 해군은 민군복합항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국회 부대조건도 우습게 여겼다. 해군이 설계한 항만구역이 크루즈선이 입출입하기가 힘들다는 설계오류가 제기되자 국회가 검증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듣지 않고 있다. 해군기지 부지에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것으로 추정되는 유구 등이 발견되도 해군과 문화재청은 짬짜미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해군과 국방부, 정부는 한 통 속 초헌법적이었다. 31일 여야 합의로 해군기지 예산을 삭감한 것은 국민을 무시한 국책사업은 있을 수 없다는 평범한 원칙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Ⅲ.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강동균 마을회장을 비롯해 지도부 대부분은 한 번씩 구속됐다. 마을주민 200여명은 공무집행방해 등의 이유로 사법처리 됐다. 평온했던 설촌 400년 강정마을은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온 불청객 해군기지 때문에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됐다. 그들은 애당초 해군기지를 거부하지 않았다. 주민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을 뿐이고, 주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을 뿐이다. 

  군사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말하는 대한민국 이 땅에서 강정마을처럼 국민의 권리와 인권이 대낮에 송두리째 짓밟히고 민주주의가 처참히 무너진 곳이 또 어디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2년 새해 첫날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정의 시계는 2007년에 멈춘 채 그대로다. 그동안 수 십장 달력을 넘기고 해가 다섯 번 바뀌었지만, 강정마을은 2007년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강정을 바라보는 제주도민들의 시계도 마찬가지다. 강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제주에서, 강정마을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 어느 누가 평화를 말하고, 세계자연유산을 외치고, 세계 7대자연경관을 자랑한다 해도 그저 공허할 뿐이다.   그래서 이제 멈춰버린 강정의 시계를 돌려야 한다  

Ⅳ. 민주주의 아이콘 강정, 2007년 시계를 돌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 4년이 흘렀다. 이명박 정부가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한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  “해군기지 문제는 전임 정부에서 결정된 국책사업”이라며 뒤로 빠지는 모습은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대통령 말처럼 해군기지가 ‘국책사업’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명박 정부들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계속 역주행이었다. 지난 세월 국민들의 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 금자탑이 MB정부 4년에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대통령의 소통부재와 일방독주는 지난 20년 동안 이어져 온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무너뜨렸다. 강정마을 평화가 사라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방부와 해군, 정부 관련 부처가 강정마을에서 보여준 불통과 일방통행은 MB정부의 권력 속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MB정부 내에 해군기지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하는 게 난센스일지 모른다.

▲ 이재홍 대표기자/편집국장
   MB정부가 강정 문제를 국민과 대화없이 공권력에만 계속 의존하려 한다면 이 문제는 차기 정권에 넘기는 게 차라리 낫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지금껏 5년 동안 고통을 겪어 왔는데, 앞으로 1년 더 참을 인내는 서로 있을 것이다. 여야가 합의로 2012년 해군기지 예산을 사실상 전액 삭감한 배경에는 차기 정권, 적어도 4.11총선 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 몫으로 넘기자는 암묵적 동의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MB정부는 국회의 예산 합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 특히 해군은 지난해 이월된 1000억원 가량의 예산으로 이번 국회 합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될 일이다. 여야합의 예산 처리 취지를 무시하고 또 다시 일방통행 할 경우 지금보다 더한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강정은 이제 이 시대 민주주의 아이콘이다. 민주주의는 어느 순간 잠시 죽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 일어선다. 선거는 민주주의가 일어서고 춤을 추는 춤판이다. 흥겨운 축제판이 2012년에 벌어진다. 강정은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선다. 그리고 2007년에 멈춰선 역사의 시계를 다시 돌리다. 그게 민주주의고 그게 강정이다. 그래서 2012년은 중요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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