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흘당의 신과세제(강정효 사진). 제주섬 최고의 신당으로 꼽히는 와흘 <노늘한거리 본향당>의 정월 신과세제(새해가 되면 우리가 조상과 부모님 이웃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처럼, 신에게도 과세를 드리는 제) 때 제물을 진설한 모습. 아직까지도 본향당은 마을의 중심이다.
제주섬의 마을본향당(신당)분포 점묘도. 2008년 조사된 제주섬의 400여 개의 신당 분포상황.과학의 시대라 불리는 현재에도 신당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장소다.
신화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확대재생산된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시공을 넘어 복제되고, 재해석되고, 재생산된다. 시대를 달리하며 표현되어 온 미술작품들. (왼쪽은 기원전 130~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 오른쪽 위 그림은 르네상스기인 1485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오른쪽 아래 그림은 20세기 미국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이 보티첼리의 그림을 소재로 만든 실크스크린 판화작품.)
신화와 영화. 20세기 후반 들어 판타지는 영화의 주요한 장르가 되었으며, 판타지영화의 주메뉴는 신화가 차지했다. 특히 CG, 3D기법 등 영상표현영역의 확대는 상상력의 세계 또는 이야기의 세계를 현현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는 신화와 영화의 근친상간을 낳았다. 또한 이러한 영화표현영역의 확대로 신화는 더욱 매력적인 문화콘텐츠로 각광받게 되었다.
추자섬에서 바라 본 제주섬.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은, 제주만의 고유한 세계관과  그에 따른 신화의 세계를 직조하게 했다.

<김정숙의 제주신화 ②> 신화적 시선의 회복을 바라며

▲ 와흘당의 신과세제(강정효 사진). 제주섬 최고의 신당으로 꼽히는 와흘 <노늘한거리 본향당>의 정월 신과세제(새해가 되면 우리가 조상과 부모님 이웃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처럼, 신에게도 과세를 드리는 제) 때 제물을 진설한 모습. 아직까지도 본향당은 마을의 중심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을 하고 임신을 하는 사실을 안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태초의 사람들은 남녀가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서 또는 해모수 신화에서 보듯 유화의 배에 해 그림자가 살짝 스쳐 지나가거나, 기둥을 세 바퀴 돌아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태초의 사람들에게, 제멋대로 피고 지는 산천과 하늘과 땅의 울부짖음은 엄청난 충격과 혼란으로 다가오는 의미심장한 타자였을 것이다. 그 어떤 규정도 허락하지 않고 다가오는 이 타자들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밀한 관심을 집중했을 그들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화란 바로 그 타자들에게 저항하면서 또 이해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에서의 노력들, 새롭게 발견하고 구성해낸 합리적인 예측들, 그 속에서 얻어진 희망과 절망, 조화와 배반의 이야기들일 것이다.

봄이 오면 싹이 돋고 이어 열매가 맺히고 곧 앙상해지는 것을 우리들은 새삼 곱씹을 필요도 없이 안다. 그렇게, 한겨울에 다음 여름의 여행 계획을 짠다. 우리들은 이 타자에 대해 이미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 안에 규정되어진 모습대로, 내 욕구와 의도대로 타자와 관계한다.

내 안에 이미 규정된 타자들은 ‘나’이지 더 이상 내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타자가 아니다. 조심스럽게 그들을 바라보고 느끼지 않는다. 무관심하다.

세상이 이렇게 불운하게 된 것은 이 무관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우리가 아닌 타자들에게, 다른 지역에,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관심하다. 지배권력은 시민들의 삶에,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기성세대는 신세대들에게,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무관심하다.

이제 우리들은 태초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환경과 우주, 타자들에 대해 가졌던 끊임없는 관심들, 이해하고 극복하며 절망하고 희망해 나갔던 신화적 시선을 빌려와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신화적 시선이란 타자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는 것

 

신화적 시선이란 타자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소외되어 왔던 타자들에게 눈을 준다는 것이다.

수십 권 이상 쏟아져 나오는 그리스신화에 비추어 하찮기만 했던 제주신화를 가지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 이후로 이성과 합리, 실증과 삼단논법, 인과와 객관성이란 이름들에 의해 끊임없이 폄하되어 온 감성과 우연의 고리들도 함께 중시하면서,

남성중심의 역사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당했던 여성들을 통해,

늘 중심에서 소외되어 왔던 변방의 가치들을 통해, 모든 지배적인 것들에 의해 소외되어온 것들을 통해,

다른 모습 다른 관계를 찾고 다른 얘기들을 해본다는 것이다. 실제 신화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풍부하고 다양하게…

제주도 신화, 제주신화 속의 여신들 그리고 그 여신들과 상호교감을 나누었던 제주의 여성들은 그 ‘다른 관계’의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제학자인 쟈크 아탈리는 문화를 “부의 창출을 위한 최대의 초석이자 상품의 보편적인 등가를 방해하는 마지막 장애물” 이라고 정의했다.

한반도는 전 국토가 만신전萬神殿이라 할 만큼 신으로 가득 찬 나라이다. 그 중 제주도는 1만 8천 신이 있다고 하여 ‘신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섬이다.

▲ 제주섬의 마을본향당(신당)분포 점묘도. 2008년 조사된 제주섬의 400여 개의 신당 분포상황.과학의 시대라 불리는 현재에도 신당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장소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신화’하면 대뜸 그리스로마 신화를 떠올린다. 그리스로마 신들은 일상적이고 비일상적인 모든 분야에,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모든 부분에, 학문과 예술의 영역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모든 상품시장에, 이미지로 또 실재로 다양한 모습을 구현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여신 아테나나 비너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자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비너스라는 이름의 브래지어를 차고, 처녀가 되어 밤새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할 때면 동료에게 박카스를 권한다. 그리스의 신들은 화장품, 의약품, 옷, 신발이나 가게의 상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호명되고 있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조각상을 세우고 시인은 시로써 찬미하며 소설과 영화의 주요한 모티프로 사용한다. 학자들은 그리스신화를 가지고 자기 학문의 공감과 심화를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화와의 카타르시스를 통하여 삶에의 위안과 예지를 얻는다.

▲ 신화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확대재생산된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시공을 넘어 복제되고, 재해석되고, 재생산된다. 시대를 달리하며 표현되어 온 미술작품들. (왼쪽은 기원전 130~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 오른쪽 위 그림은 르네상스기인 1485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오른쪽 아래 그림은 20세기 미국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이 보티첼리의 그림을 소재로 만든 실크스크린 판화작품.)

사실 그리스신화는 집단적 무의식이 추구한 공리나 보편적 근거로서의 사회의 지표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욕구라는 개인적 이미지들을 더욱 확장시켜 왔다. 이런 그리스신화의 이미지들은 최근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개인의 본능과 감성이 중요시되면서 마치 TV 드라마나 광고와 같이 우리를 유혹하고 장악하면서 가는 곳마다 더욱 회자되고 있다.

규제와 억압의 기제들만이 만연한 가운데 별다른 출구가 없는,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만지는 것마다 보석이 되게 하는 미다스의 손은, 아프로디테의 자유롭고 분방한 성적 표현과 아름다움은, 푸쉬케의 순결한 사랑은 우리를 들뜨게 한다. 답답한 현실에 대한 도피나 유희, 위안과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로 TV 드라마에 빠지듯 그리스신화를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화는 사회현상의 분석과 이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생각되기보다는, 문학적 의미, 민속학적 의미에만 국한되어 옛날이야기로만 오르내리거나 박제된 유물처럼 보관만 되어왔다.

그러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 트로이의 목마에서처럼 ‘객관적인 사료’를 뒤엎으며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던 경험들을 꼭 논하지 않더라도, 시대를 반영하는 신화와 그 원형들이야말로 역사 이상의 역사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 신화와 영화. 20세기 후반 들어 판타지는 영화의 주요한 장르가 되었으며, 판타지영화의 주메뉴는 신화가 차지했다. 특히 CG, 3D기법 등 영상표현영역의 확대는 상상력의 세계 또는 이야기의 세계를 현현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는 신화와 영화의 근친상간을 낳았다. 또한 이러한 영화표현영역의 확대로 신화는 더욱 매력적인 문화콘텐츠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와 다른 제주신화의 의미와 가치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 메타데이터다. 신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해당 지역사회의 원류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해당 지역이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지를 보게 하는 중요한 정보가 되며, 맥락 속에서 지역성에 대한 더 높은 논리를 제공한다.

재구성의 과정, 해석과 가치창조의 과정과 성과가 일천한 제주신화에서 헬레니즘의 오랜 예술문화사 속에 탄생된, 비너스나 아테나의 세련되고 재미난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신화가 문학적 원전으로, 사랑과 전쟁의 로망스로 귀결되어 버렸다면 제주신화는 사회맥락적, 현실개혁적인 시대정신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신화와는 다른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제주도처럼 공간적으로 고립된 섬 지역인 경우, 그런 자연환경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독특한 문화, 신화를 형성하게 되면서 형상적 표현이나 이미지의 성취에서는 빈약하지만 삶의 제반조건에서 만들어낸 구조의 일관성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욱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

특히 여성성의 회복이라는 면에서 볼 때 제주신화에는, 대부분의 신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남성지배-여성순종이라는 익숙한 질서에 대한 위반과 전복의 행위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남녀, 더 나아가 인간평등의 모습들이 신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어, 인간존중이나 자유와 공정함에 대한 추구와 실천이 제주라는 사회 집단 내에 오래도록 내재되어온 역사적인 정신성임을 확인받을 수 있기도 하다. 

▲ 추자섬에서 바라 본 제주섬.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은, 제주만의 고유한 세계관과  그에 따른 신화의 세계를 직조하게 했다.

현 사회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여러 덕목들을 제주신화는 많이 갖추고 있다. 밭농사를 하게 한 척박한 뜬땅,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가야 했던 빈약한 생산성, 분산된 소유와 평등하고 개체적인 삶을 만들어 준 조각난 토지들, 내가 서기 위해서는 협업을 꼭 요구했던 농사일들이 부지런하고 용감한 사람들, 개체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생산과 분배체계, 그리고  여성의 권리 또한 상대적으로 평등할 수 밖에 없는 제주의 고유성을 만들어냈다. 

제주의 신화는 현재 제주지역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제반 가치, 정서, 생활태도 및 생활양식 등의 원류이다. 또한 그것은 제주라는 사회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제주의 문화에 대한 메타언어이기도 하다. 기존의 환경들에 대한 해석과 창조로 신화는 발생하며 그 신화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환경으로서의 문화가 창조되어 간다.

척박한 조건에 대한 절실한 대응으로 제주사람들은 개화와 문명이란 개념 내에 자라날 수 있는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성향들을 제어하면서 평등하면서도 자유롭고, 개체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성숙한 사회의 담론들을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불리한 자연환경은 오히려 '미개발의 발전', 즉 에코 데모크라시, 에코 페미니즘이라 할 만한, 근대를 뛰어넘는 물적, 정신적 가치들을 오래 전부터 품어오게 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신화-역사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이 현재에 대한 의미심장한 접목에 있다. 의미심장한 접목이란 건강한 문화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하는 담론으로서의 기능에 있을 것이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제주섬의 신화에 건강한 담론들, 인간존중, 자유와 공정함,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 개체적으로 자유롭고 공동체적으로 조화로운 인간을 지향하는 모습들이 가득 숨어 있다. ‘나’를 중심에 놓고 ‘나’에 의해 규정되는 타자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타자, 의미심장한 존재로서의 시간과 공간, 사회와 자연, 여성들의 모습이 있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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