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위기 순간에 발휘되는 '동물본능'  

매를 먼저 맞은 미국이 먼저 깨어나고 있다. OECD 국가들 대부분의 주식시장이 두자릿수의 지수하락률을 기록했는데 미국의 다우(Dow)는 연초 대비 5.5%의 상승으로 2011년을 마감했다.

미국의 '케이스-쉴러 주택가격지수'는 작년에도 하락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그러나 거래량에 있어서는 전년보다 12.9%의 증가를 보였고 매물 재고는 16.1%나 감소했다.

또한 신규주택 착공이 일년 사이에 24.3%나 증가했고 매매도 9.8% 늘었다. 속칭 '서브프라임'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던 미국 주택시장이 이처럼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부동산시장의 기지개에 발 맞추어 민간 리서치기관인 '컨퍼런스보드'가 발표하는 소비자 신뢰지수도 12월에 64.5로 전월의 56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대개 5% 이상의 변동을 유의미한 변화로 본다는데 이번 상승폭은 15%에 달했다.

미국에 비하면 유럽의 불황은 한밤중이다. 유럽의 대표 지수(STOXX)는 작년 한해 11% 하락했는데 산업별로는 은행 부문의 하락폭이 32%로 가장 컸다. 금년에는 연초에 집중적으로 만기가 되는 국채의 대환(代換)발행과 태반의 은행들의 거액 유상증자 부담이 있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 날의 잘못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그 잘못의 성격에 차이점이 있다. 유럽은 '유로 존'의 환상이 가져온 신기루가 있었다.

스페인의 예로서 카탈로니아의 수감자 없는 최신형 형무소 건물, 라만차의 항공기 이착륙 없는 점보 비행장, 알코콘의 주민 무료생일 잔치를 위한 문화회관 건설 등이 예산 낭비의 전형으로 지목된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유로 단일통화 사용국으로의 편입조건인 연간 재정적자 (GDP의) 3% 이내, 국가부채 60% 이내라는 원칙이 전혀 준수되지 않았다.

미국 주택시장이 먼저 깨어나

미국의 경우는 시장의 흥망 뒤에 엔론(Enron) 회계부정과 메이도프(Madoff) 자산운용사의 금융사기 사건, 그리고 서브프라임 주택대출을 가지고 벌인 금융공학의 장난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최소한 이런 종류의 농간은 없었다.

유럽의 주택가격은 2007년 이후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하락폭은 그 동안 27.6%에 달했는데 영국은 10% 미만의 하락에 그쳤으며 호주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등은 2007년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약간 상승하고 있다.

케인즈는 일찍이 그의 일반이론에서 무언가 적극적인 행위를 하는 결정의 대부분은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 즉 가만히 있기보다 행동에 나서려는 충동에 기인한다고 했다. 투자결정이 장래의 이익을 산술적으로 따지기보다 이런 애니멀 스피릿 덕으로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동물본능(애니멀 스피릿의 번역 중에 가장 적합해 보임)에는 이런 적극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이성보다는 감성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경기상승 국면에서는 묻지마 투자, 경기하강 국면에서는 투매 등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폐단이 있다.

행동경제학의 이론에 따르면 동물본능은 부조리와 불공정, 불성실과 기만이 숨어있는 사회환경에서 더 강하게 작동한다. 허술한 극장에서의 화재일수록 동물본능이 신사도정신을 더 압도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어차피 거품과 붕괴 현상을 반복하는 속성을 지니는데 유독 미국의 경우에 그 진폭이 엄청나게 큰 것은 미국 시장에서의 동물본능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는 3월까지 대환해야 할 유럽국채의 합계액이 무려 4500억유로에 달한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 규모는 지난 12월 한달 동안 유럽중앙은행의 마리오 드라기 신임총재가 유럽 은행들에게 공급한 3년 만기의 안정적인 대출금 4900억유로에 비하면 아주 큰 금액은 아닌 듯하다.

부동산 변동성 키우는 애니멀 스피릿

새해 최대의 화두는 리폼(reform)이다. 이는 균형재정을 책임지는 정부, 규칙과 규율을 투명하게 지키는 시장, 정직과 공평이 준수되는 사회를 향한 분명하고 구체적인 변화를 말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미국은 확실하게 회복을 견인하고 있다. 유럽의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사투는 장기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을 뒷전으로 미루게 됨을 의미한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새해에도 지난 해와 같이 동물본능은 시시각각 발휘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인데 그 강도는 원칙과 상식이 얼마나 그 사회를 지배하는가에 따라 나라마다 상이할 것이다.

우리를 포함하여 여러 나라가 금년 중에 치르는 선거가 이 여러 요소들에 변화를 줄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기사는 '내일신문'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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