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지방언론이 '정도' 가야 민주주의가 산다

 지난해 제주도는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을 둘러싸고 심한 몸살을 앓았다. 결국은 성공을 거뒀지만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제주도는 이 캠페인에 전통적인 홍보기법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지역내 각종 조직ㆍ단체ㆍ공무원의 총동원, 다양한 메시지 활용, 상징 조작, 지역 언론의 일방적 여론몰이, 찬성측에는 예산지원과 반대측에는 낙인찍기·불이익 같은 당근과 채찍 수법이 원용되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쌍방향 소통시대를 역주행하는 여론몰이식 홍보가 아직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사업이 지역 기관장의 업적 과시용으로 변질되고, 설득과 소통 과정이 생략된 채 공무원과 관변단체가 결집하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여기에 지역 언론이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방식 말이다. 권위주의 시절 대표적 관제 캠페인인 ‘평화의 댐 성금 모금운동’을 보는 것 같았다.

 이번 7대 경관 선정 과정을 보면서 지방의 공론장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지방민주주의 위기다. 지역 주민에 의해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방 권력의 독점 현상은 중앙보다 더 심하다. 최근 경기도지사의 ‘나 도지사야’ 해프닝이나 끊임없이 터지는 지자체의 인사비리는 ‘지역 소통령’으로 군림하는 자치단체장의 강력한 권한에서 비롯한다. 더구나 권한 남용을 견제하고 감시할 제도적 장치도 유명무실하다.

 이러한 결과는 시민과 언론이 참여하는 민주적 공론장을 왜곡시켜 지방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공론장이 활력을 잃으면 권력은 독점화되고 여론 수렴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을 구실로 삼아 자신의 의견대로 시민을 몰아가려 한다. 결국 공론장이 소수가 지배하는 1 대 99 구조로 전락해 버린다.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공론장은 여론에 의해 움직인다. 여론은 사회 구성원의 서로 다른 의견들이 상호 조율되고 소수자의 의견도 존중받는 가운데 형성된다. 건강한 여론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막중하다. 언론이 권력화되고 이윤 창출에만 관심이 있다면 여론 형성 기능은 뒷전에 처지고 여론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SNS가 주도하는 개인미디어 시대에 지방언론이 지역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큰 편이다. 그러나 지방언론은 그릇된 애향심으로 인한 폐쇄성, 빈약한 광고수입과 경영악화 등으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언론은 메시지의 중요도에 관계 없이 지자체장을 빈번히 노출시키거나 관변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처널리즘(churnalism)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지자체장의 역점 사업을 성역화하는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기도 한다.
 
 지방언론의 일방적 편향성은 지역의 민주적 공론장 형성에 장애요인이 된다. 여기에 전통적인 관변단체와 지역 유지 등이 적극 가세하면, 반대 세력은 ‘침묵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지역내 갈등이 증폭되고, 불투명한 행정으로 부정부패가 잉태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문제에 대한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해 지역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지역 공론장이 왜곡되면 지자체장의 업적 과시용 사업에 대해 과학으로 포장한 경제효과 부풀리기가 기승을 부린다. 이러한 사업들은 고용효과 수만명, 생산유발효과 수조원 등으로 요란하게 떠들면서 시작된다. 사실과 다른 헛구호가 등장하여 지역민을 호도하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용인경전철, 영암 F1, 인천시의 송도개발과 아시안게임이다. 제주도가 세계7대 경관 선정의 경제효과로 제시한 관광객 증가는 부가가치가 별로 없고, 환경 생태관광의 수용능력을 벗어나 오히려 자연을 파괴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지자체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중앙정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자체장이 권위를 버리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방언론은 비판과 감시 기능을 활성화하고 지자체의 투명행정을 견인해야 한다. 아무리 언론환경이 어렵더라도 지방언론은 정도를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SNS가 주도하는 공론장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다. 경제민주주의도 시급하지만 위기에 빠진 지방의 공론장을 살려 강고한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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