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덕을 끼고 할망당에 가는 단골(신앙민). 
차롱 바구니 속의 제물은 고이 장만해온  한 집안의 정성이다. 이 정성이 다 모이면 마을의 장관이 연출된다. ⓒ제주의소리
마라도 할망당(애기업개당). ⓒ제주의소리
제주돌문화공원의 하늘연못. 설문대할망이 빠져죽었다는 물장오리.
많은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죽을 끓였다는 죽솥을 형상화했다. (출처 돌문화공원). ⓒ제주의소리
설문대 할망, 박재동 그림. 설문대할망은 제주10경의 하나로 꼽히는, 오백장군이라는 백록담 서남쪽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그녀의 자손들이라거나, 흙들을 쌓아 한라산을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꺾어 훅 던진 게 산방산이라거나, 조천리와 신촌리 바닷가에 있는 바위섬들이 할망이 다리를 놓던 흔적이라는 등의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로운 문화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숙의 제주신화> ⑤ 할망, 제주여성들의 원형

제주신화를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신화, 그 중에서도 제주도의 신화는, 삶과 사회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던 여성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어 왔고, 다른 어느 신화보다도 인간평등한 구조와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신은, 성별로 볼 때 여신의 비중이 특별히 높고(보통 70% 정도가 여신이라 추정한다) 또한 그 내용이 무척 여신 중심적이다.

제주사람들은 당에 갈 때 “할망당에 간다”며 큰 구덕(바구니)에 제물을 담아 당으로 향한다. ‘당’은 신의 집, 신전이다. 모시는 신이 여성신이면 여자 아이이든 처녀든 아줌마든 나이와는 상관없이 할망당이라 불린다.

▲ 구덕을 끼고 할망당에 가는 단골(신앙민). 차롱 바구니 속의 제물은 고이 장만해온  한 집안의 정성이다. 이 정성이 다 모이면 마을의 장관이 연출된다. ⓒ제주의소리

‘할망’은 사실 가장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일 수 있지만, 제주에서는 연륜이 가지는 힘과 지혜로움, 포용력이라는 기의(記意,시니피에)를 담고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제주신화 속에 보이는 할망당의 할망은 나이 든 여자라는, 세속의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높은 어른’의 의미로 신격화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할망손이 약손’이라거나 ‘할망한테 물어보라’ 등에서 알 수 있듯, 현실 삶에서도 지혜롭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라는 묵의를 포함하고 있다.
  
제주의 최남단 마라도에도 할망당이 있다. 당의 주인은 열 살배기 여자 아이다. 어릴 때 고아가 되어 남의 집에서 애기를 돌보는 애기업개로 살았다. 하루는 물질을 나가는 주인을 따라 마라도에 갔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돌아갈 일로 골치가 아파진 주인 상군(물질을 제일 잘 하는 해녀)은 그날 밤 애기업개를 놔두고 와야 섬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
  
결국 주인은 아무도 없는 곳에 애기업개를 제물로 남겨놓고서 거친 물살을 빠져나왔다. 애기업개는 동산에 올라 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발버둥 치다가 굶어 죽었다. 해가 바뀌고 다시 마라도로 물질을 가보니 뼈만 잘그랑하니 남아 있었다.

▲ 마라도 할망당(애기업개당). ⓒ제주의소리

그때부터 마라도를 찾는 해녀들은 불쌍한 애기업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당을 짓고 제를 지냈다. 마라도 할망당은 지금도 마라도의 본향당(마을당)으로 어업과 해녀들을 수호하며, 마라도의 북쪽 바닷가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를 창조한 설문대할망

설문대할망이 천지를 창조한 무소불위의 영웅신이 여신이라는 것도 다른 신화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이지만, 소소한 일상 속으로 들어와 삶의 한계와 해학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이웃, 어머니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세계의  많은 거대영웅신들과 다른 점이다.

설문대할망 보여주는 행동들은 척박한 땅에서 자손들을 먹이고 입히려, 긴긴 하루 머리 수건 한번 벗지 못한 채 살아 온 제주여성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물허벅을 마련하고, 애기구덕을 만들어내고, 갈중이를 만들어 입고, 웡이자랑 노래를 부르며, 조냥의 쌀독을 마련하는 일….
그래서 사실 설문대할망이 가지는 대사회적인 능력과, 창조성은 사실 모든 제주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를 창조한 위대한 여신(女神)이다. 제주를 창조할 때 치맛자락에서 흘러내린 흙이 360여 개의 오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500명이나 되는 자손들을 먹여 살리려 죽음을 무릅쓰고 가마솥에 죽을 끓이는 것이나 육지까지 다리를 놓게 해주려는 그녀의 희구에서 볼 수 있듯 설문대할망은 창조의 여신이며, 모든 것들을 향한 박애의 여신이다. 

▲ 제주돌문화공원의 하늘연못. 설문대할망이 빠져죽었다는 물장오리.많은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죽을 끓였다는 죽솥을 형상화했다. (출처 돌문화공원). ⓒ제주의소리

설문대할망이 천지를 창조한 무소불위의 영웅신이 여신이라는 것도 다른 신화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이지만, 소소한 일상 속으로 들어와 삶의 한계와 해학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이웃, 어머니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세계의  많은 거대영웅신들과 다른 점이다.

설문대할망 보여주는 행동들은 척박한 땅에서 자손들을 먹이고 입히려, 긴긴 하루 머리 수건 한번 벗지 못한 채 살아 온 제주여성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물허벅을 마련하고, 애기구덕을 만들어내고, 갈중이를 만들어 입고, 웡이자랑 노래를 부르며, 조냥의 쌀독을 마련하는 일….
그래서 사실 설문대할망이 가지는 대사회적인 능력과, 창조성은 사실 모든 제주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설문대 할망, 박재동 그림. 설문대할망은 제주10경의 하나로 꼽히는, 오백장군이라는 백록담 서남쪽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그녀의 자손들이라거나, 흙들을 쌓아 한라산을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꺾어 훅 던진 게 산방산이라거나, 조천리와 신촌리 바닷가에 있는 바위섬들이 할망이 다리를 놓던 흔적이라는 등의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로운 문화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척박한 토양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앞에, 머릿수건을 동여 메고 창조적으로 행동했던 설문대할망의 표상은, 작고 보잘 것 없어 늘 소외받기 일쑤였지만 감탄해 마지않을 창조성과 실천적인 힘을 보여줘 왔던 제주의 어머니, 제주의 여성들을 대표한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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