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그 다음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은 누구였나? 재정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데다 개인적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그가 이끄는 피플오브리버티 당은 작년 5월의 밀라노 시장선거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어 당 내외에서 사임 압박이 일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탈당의원이 속출하여 그의 정당은 의회 다수당의 지위도 상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에 연연하던 그를 결정적으로 압박한 것은 국제금융시장이었다. 6월까지만 해도 5%를 밑돌던 10년 만기 이탈리아 국채의 시장 할인율이 11월 들어, 한번 건너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7% 선을 넘은 것이다.

이탈리아의 정부 구성은 약간 특이하다. 7년 단임의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출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실권이 없다. 수상을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므로 대개 의회 다수당의 리더를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86세의 노 정치인 지오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조기총선 없이 마리오 몬티를 수상으로 하는 테크노크라트 정부를 탄생시켰다. 12개 장관과 6개 무임소 장관 전원이 비정당인이다.

전후 이탈리아 최 장수 수상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원성이 그토록 높지 않았다면 마리오 몬티의 테크노크라트 정부는 출범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리오 몬티 수상은 취임한지 한 달도 안되어 "이탈리아를 구하라(Salva Italia)"라는 부제를 붙여 정부재정 건전화를 위한 시행령을 공포했다. 너무나 상식적인, 그러나 그렇게도 힘들었던 '세수는 늘이고 지출은 줄인다'는 공식을 담은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시행령은 공포되는 즉시 발효되지만 60일 이내에 의회의 추인을 받지 못하면 철회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의회는 18일 만에 이를 승인했다. 순한 양이 된 것이다.

테크노크라트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은

마리오 몬티 정부가 내놓은 두번째 구조조정의 타깃은 경쟁력이다. 성장 없이는 이탈리아를 구할 수 없고 지금의 형편없는 경쟁력으로는 성장을 할 수 없으므로 그는 여기에 "성장하라 이탈리아(Grow Italia)"라는 이름을 붙인다. 지난 주말 공개된 그 내용에는 첫째 노동의 경쟁력, 둘째 공공부문의 경쟁력, 셋째 행정의 경쟁력이 포함된다. 노동시장에서는 택시 조합, 화물운송 조합, 변호사 조합 등 산업별 조합으로 똘똘 뭉쳐있는 노동시장을 손보겠다는 것이며 공공부문과 행정에서는 각종 이권을 둘러싼 부조리와 비효율, 예산 낭비와 탈세 등을 바로잡겠다고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이 두 번째 시행령은 노동조합의 반대가 크기도 하거니와 국회의원들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의회 통과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평생 철 밥통을 보장받는 사람과 불안정한 계약직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을 경쟁력 강화의 첫 단추로 삼겠다는 몬티 정부의 설명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탈리아의 차기 총선은 2013년 봄에 있다. 그 때까지는 각 정당은 몸을 낮추며 민심의 향방을 주시할 것이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정당이 의외로 몬티 정부에 협조적인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이탈리아와 너무 대조적인 것은 그리스다. 그리스 정부가 발행한 채권 잔액 2600억유로 중 1000억유로를 꿀꺽 떼어먹겠다는 것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그리스 재정위기 해법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새로 교환해주는 채권의 금리도 시장 가격을 무시한 4% 선으로 낮춰달라는 요구를 하는 바람에 민간 채권자들과의 최종합의가 늦어지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구실이다. 빚만 깎는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닐 터인데 성장을 위한 각본은 전혀 모색되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금년 총선을 앞두고 그리스의 각 정당은 쌈질을 그치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의 정당들에 비하면 기(?)가 많이 살아있는 편이다.

막판에 가서야 일어나는 변화

막판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변화라는 뜻이 담긴 '렌칭 체인지(wrenching change)'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가 이 경우다. 바닥까지 가기 전에 정신을 차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그런데 그리스는 아직 바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얼마나 더 잃어버려야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

10년 만기 이탈리아 국채의 시장 할인율은 최근 6.1%까지 낮아졌다. 이탈리아가 완전 비정치인 정부의 주도 하에 변모하는 모습에서 직업 정치인들의 반성과 분발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금년에 두번의 큰 선거를 치르는 우리나라의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기사는 '내일신문'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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