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범 칼럼] 더 이상 숨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난 25일 KBS의 <추적 60분>은 해외 취재를 통해 뉴세븐원더스재단의 실체를 폭로하고, 제주도의 이해할 수 없는 비밀주의 처사를 비판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추적 60분>에 따르면 제주도는 7대 경관 선정 투표가 상업적 목적의 이벤트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또 방송은 외국 정부 관계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제주도가 재단쪽과 맺은 계약이 공개되면 비난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암시했다.

 방송이 나간 다음 날, 마치 방송 시기를 맞춘 듯 방한한 재단의 버나드 웨버 이사장과 도 관계자가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방송에서 제기된 의문이나 이전에 몇몇 언론과 네티즌들이 의아해 했던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주도가 세계 유수의 관광지들과 벌이는 경쟁에서 7대 경관으로 선정되면 좋은 일 아니냐는 판단이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선정이 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제주를 더 많이 찾게 되고 그래서 경제적 효과가 크다면 그게 큰 문제가 되겠느냐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껏 드러난 것은 이 캠페인을 주도한 제주도는 물론, 순수한 애향심으로 투표에 참여한 내외도민과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선의로 전화투표를 했던 외지의 많은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아니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는 것뿐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제주도가 재단의 상업적 목적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민의 희생과 재정의 낭비를 무릅쓰고 투표를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도의회와 법질서를 무시하고 2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은 채, 행정전화를 이용한 투표와 자동전화투표기 운용으로 재정을 낭비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행정전화요금이 400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도정은 재단과의 계약 운운하며 정확한 전화요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도민들이 세금의 사용처를 알 권리보다 민간영리기관과의 계약의무를 지키는 것이 더 우선한다는 판단이라면 도민을 무시하는 행태가 지나치다. 

  재단이 상당액을 챙기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민을 현혹해 50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금한 것 역시 도민을 우롱한 처사였다. 기업들은 규모에 관계없이, 도내 관급공사를 하는 외지의 기업들까지 ‘성금’을 내야 했다. 어린 아이들까지 저금통을 뜯었다. 지난 1986년 전두환 정권이 국민을 속이면서 북풍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벌인 ‘평화의 댐’ 모금 캠페인을 연상시킨다.

  공무원들은 업무 보다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전화기에 매달렸다. 심지어는 근무시간이 끝난 뒤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전화를 돌려야 했다. 그런데도 김부일 부지사는 “어느 정도 관심은 가졌지만”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추적 60분>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도민들만 모를 것으로 생각한 것인가. 
 
  도내 한 신문사는 7대 경관 선정 투표에 부정적인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제주도가 예약했던 광고를 취소하는 방법으로 보복을 하기도 했다. 다른 언론사들에게는 위협으로 보일 처사였다. 도내 언론사들을 광고비와 행사비로 회유하고 협박하면서 합리적인 비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언론환경을 만든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해외 여러 나라들이 “선정방법이 온당치 못하다”거나, 근거 없이 거액을 요구한다”거나, “재단의 상업적 목적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캠페인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왜 애써 무시된 것일까? 심지어 몰디브의 관계자는 “이것은 사기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는데 말이다. 7대 경관 선정의 필요성과 비용조달, 추진 방법 등에 대해 도민사회의 공감대를 먼저 얻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단은 왜 하지 않았을까? 제주도는 도대체 왜 이런 무리한 일을,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한 것일까?

  어떤 방법을 쓰든 7대 경관으로 선정되면 관광객이 구름떼처럼 밀려오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정말 순진하게 믿었기 때문일까? 전임 지사 시절 제주도가 차지한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유네스코 환경관련 트리플 크라운을 넘어서는 치적을 세우고 싶었던 것일까? 제주도 최대 현안인 해군기지 문제에 쏠려 있는 도민들의 관심을 7대 경관 선정 투표로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까지 우근민 지사는 “문제가 생길 경우 전적으로 내가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해 왔다. 지사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7대 경관 선정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낱낱이 밝혀야 한다. 재단이든 재단 이사장이 세운 민간영리기업이든 제주도가 맺은 계약 내용,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경위, 전화요금의 실제 총액 등을 제주의 주인인 도민에게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KT를 통해 이루어진 전화투표가 국제전화인지 국내선인지도 밝혀야 한다. 처음 이 투표를 시작할 때 한 통화에 1800원이던 요금이 190원으로 깎인 것이 KT와 협상을 벌인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항간에는 국제전화로 재단에 전화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KT가 국내선으로 통화수를 집계한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이와 관련해 KT가 재단쪽과 맺은 계약내용도 공개해야 한다.
 
  또 우 지사는 그동안 제주도민과 공무원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면서 도민을 속인 데 대해, 막대한 재정을 낭비한 업무상 배임행위에 대해 도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오늘도 인터넷에서는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비웃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이 사태를 우리 모두 함께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의 미래를 위해 큰 교훈이 될 것이다.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유례없이 제주도에 환경관련 트리플 크라운을 안겨주었다. 세계가 인정하는 자연환경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자부심은 아무리 내세워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설혹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선정되면 좋은 것 아니냐”는 안이한 생각이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상이나 칭찬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 고희범(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또한 도내 최대 광고주인 도정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언론구조에 대해서도 언론사와 도민사회가 함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위해 존재하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 것이다.

  지난 잘못을 되짚어 바로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흑룡의 기운이 넘친다는 임진년 새해를 시작하게 되기를 바란다.  /고희범(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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