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칼럼](2) 독단적 도정운영-도민공감대 실패   

제주의 빈곤화와 저성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구조화된 빈곤화와 저성장은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노출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제주본부장이 ‘빈곤화 성정과 가난의 땅, 제주의 생존존략’이란 제목으로 장문의 칼럼을 보내오셨습니다. 빈곤화의 원인에서부터 한국과 제주의 문제점, 이를 탈출하기 위한 제주사회의 해법, 특히 리더십과 공직사회의 자세에 대한 조언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5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Ⅲ. 가난한 땅, 제주경제의 현실 진단

  제주경제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가 수출주도의 국가발전 전략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1차산업 및 관광산업 비중이 큰 제주도가 당연히 상대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발전 전략상 농산물 수입규제 완화와 해외여행 자유화 등 개방화가 불가피했고 이러한 개방화 정책은 제주 중추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주경제의 성장세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제주지역 실질경제성장률은 2002~10년 동안 8개년에 전국평균을 밑돌았는데, 특히 2005년(전국 4.1%, 제주 0.5%), 2006년(전국 5.1%, 제주 2.1%), 2008년(전국 2.7%, 제주 -3.7%), 2010년(전국 6.6%, 제주 2.1%)에는 전국평균을 크게 밑돌아,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에서 가장 낮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 평균의 89%대(1995년)로 좁혀졌던 제주도민 1인당소득도 2008년에는 76.5%까지 하락하였다. 특히 2002년 이후에는 1인당소득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전국평균을 밑돌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제주사회가 빈곤화 성장의 문제에 더해 ‘다 같이 못 사는’ 포괄적 하향화(race to the bottom)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주도민 1인당 소득 전국 평균 76% 수준...‘다같이 못사는’ 섬으로 추락  

  제주 중추산업의 소득창출능력이 약화된 데다가 2000년대 이후 우리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의 도내 창업 및 육성도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최근에는 농업부문을 중심으로 고용이 감소하고 서비스업부문의 고용흡수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실업률(무급종사자 제외기준)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제주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국내외 환경도 FTA체결 확대, 제주도에 대한 차별적 혜택 축소, 경쟁도시들의 관광산업 육성정책 강화 및 해외여행 보편화 등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위와 같은 제반사항들을 감안할 때 특별자치도 체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선진 제주를 건설해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제주사회는 제주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 건설에 필요한 많은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오는 등 미래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많은 성과를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주경제가 선진화로 나아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고 험준하다.

  한때 세계 최강을 넘보던 일본경제가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장기침체를 겪으면서 2010년에는 세계 2위의 자리마저 중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본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저출산 고령화’,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 ‘양극화의 심화’, ‘잠재 성장률 저하’, ‘관료 중심의 사회’, ‘청년들의 좌절’,  ‘혁신형 창업 부족’ 등 일곱 가지를 들고 있다.

  그런데 심히 우려되는 것은 ‘일본경제 위기의 핵심 키워드 7가지’가 현재 제주경제의 부진 원인을 설명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가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잃어버린 20년’ 침체 늪에 빠진 일본 경제, 제주가 일본을 쫓아가는 건 아닌지...

   첫째, 제주지역은 인구의 고령화가 전국평균(2018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둘째, 제주지역은 소규모 영세 사업체와 일용근로자 비중이 높아 전국에 비해 비정규직 비중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빈부격차의 체감 정도와 양극화의 부작용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셋째, 제주지역은 경제성장과 주민소득 증가의 상대적 부진이 지속되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수 및 개인파산제도 이용자수가 2002년 이후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그 비율이 전국평균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넷째, 그동안 제주경제의 성장을 주도해 온 1차산업과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점점 약화된 반면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의 육성은 부진함에 따라 잠재성장률의 전국대비 격차가 더욱 확대되어 왔다. 특히 제주지역의 잠재성장률은 고령인구가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2016년 이후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섯째, 일본과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공통점과 함께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폐쇄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회 곳곳에 관료중심 문화가 지배하면서 지역사회의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섯째,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젊은이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제주와 일본의 공통점이다. 제주지역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연체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전국 평균의 2배를 웃돌고 있다. 또한 제주지역의 7등급이하 저신용등급 금융소외자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특히 이들 중 청년층의 비중이 57.0%를 차지함으로써 향후 청년 실업문제와 더불어 심각한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젊은 세대의 의욕상실은 제주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림은 물론 장기 침체의 악순환을 낳게 된다.

   일곱째, 제주지역은 혁신형 창업이 드물고 소규모 음식점과 같은 생계형 창업이 과다하다. 전남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의 자영업자 비중은 제주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자영업자 대부분이 수익성과 장래성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사업을 시작하여 부실화 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제주지역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제주가 안고 있는 제반 요소들, 즉 도서지역의 폐쇄적 특성에서 형성된 강한 배타적 자주문화, 심각한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청년들의 좌절, 제주산업구조의 특성에 기인한 비정규직의 가파른 증가, 빠른 고령화 진전 등은 제주경제의 전도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마음씨 곱고 인정 많은 제주인들이 사는 이 제주사회는 전국에서 가장 살기 힘든 빈곤, 고통, 절망의 땅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독단적 도정운영, 다양한 정책반영.공감대 형성 실패...한건주의 개발사업 ‘혼란’ 자초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우리 선조들이 척박한 땅을 일구며 미래를 꿈꾸었던 것처럼 새로운 희망의 꿈을 꾸면서 꿋꿋이 어떠한 어려움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 도민과 도정이 새로운 각오로 힘을 합쳐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역량과 지혜를 집결해야 할 제주사회가 균형점을 잃고 흔들거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도정이 혼미 속을 헤매고 있기에, 경제와 민생까지 온통 엉망이 되고 있다. 이 절박한 고난의 시기에 우리에게는 지도자도 없고 어른도 안 보인다. 그래서 제주사회는 더욱 더 갈갈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권 논란이 도정의 총체적 행정난맥상의 일면목을 낱낱이 드러낸 데 이어 판타스틱 아트시티 프로젝트의 무산은 완전히 나사를 꿰지도 않은 시스템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행착오로 인해 제주사회는 모든 것이 헛돌며 제자리를 못 잡고 있다. 이런데도 당면한 위기극복과 새로운 성장전략의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다. 강정사태 등 현안 앞에서는 명쾌한 혜안없이 주춤거리고 오히려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단적 도정운영으로 도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내지 못함으로써 정책목표와 비전에 대한 공감대의 형성에 실패하였고 정책추진의 구심점마저 상실하였다. 여기에 한건주의식 프로젝트 개발사업의 좌초는 정체성 혼란을 자초하고 신뢰성 상실을 초래함으로써 총체적 민심이반을 부추기고 있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이제부터라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겸허히 성찰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왜 제주사회가 가장 가난한 땅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냉소와 환멸과 갈등 속에 쳐박혀 민심이 요동치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으로 도민과 소통하고 화합하는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 새로운 리더십으로 선진제주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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