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입춘 굿놀이 재현 장면. ⓒ제주의소리DB
지난해 입춘 굿놀이에서 선보인 낭쉐.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듯한 힘찬 기세가 돋보인다. ⓒ제주의소리DB

 ‘탐라국 입춘 굿놀이' 제대로 즐기기 ① 유래 알면 더 재밌다

▲ 일제시대 입춘 굿놀이 재현 장면. ⓒ제주의소리DB

제주는 1만8천 신들이 고장이다. 묵은해의 마지막 절기 대한과 새해 첫 절기인 입춘 사이에 구년세관(舊年歲官)의 신들이 신년세관(新年歲官)의 신들과 임무를 교대한다. 이것을 일컬어 ‘신구간’이라고 한다.

신구간에는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자리를 비우게 돼 동티가 나지 않는다 해서 옛 제주 사람들은 이때에만 집을 옮기거나 수리할 수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제주의 이사 풍경은 거의 이때에만 집중된다.

신구간이 끝날 무렵 무당이 입춘굿을 통해 신들을 불러들이는 제를 지낸다. 이것이 ‘입춘굿’이다.

입춘 굿놀이는 진정한 ‘대동제’였다. 탐라국 시절에는 왕부터 백성들까지, 조선시대에는 제주목 최고 관리인 목사에서 서민들이 한자리에 어울려 흐드러지게 놀았다.

심지어 벌을 받거나 아주 큰 상을 받을 때나 드나들 수 있던 목관아가 ‘입춘 굿놀이’시기에는 문을 열어 서민들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도록 할 정도였다.

무당들이 전하는 설화에 악마로 치부되는 조선시대 이형상 목사 시절에도 ‘입춘굿’만은 행해졌다니 굿판은 종교를 떠나 제주의 백성들을 한데로 묶는 정신적 씨줄이었다.

▲ 지난해 입춘 굿놀이에서 선보인 낭쉐.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듯한 힘찬 기세가 돋보인다. ⓒ제주의소리DB

농경이 주를 이루던 과거에 통치자들은  봄이 되면 늘 그 해의 농사일이 잘 되기를 하늘에 빌었다. 농사의 성패가 나라 살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뤄지던 선농제는 왕이 직접 동대문 바깥에서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선농단과 적전에서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이며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고 농사일을 장려했다.

‘입춘 굿놀이’는 제주도판 선농제다. 탐라국 때부터 제주섬의 지도자는 새 봄이 들면 나무로 소를 만들어 밭을 가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풍년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기껏해야 좁쌀이나 보리쌀이 나던 척박한 제주 땅에 왕이 직접 낭쉐(木牛)를 끌고 밭 가는 시늉을 했으니 얼마나 간절하게 풍농을 기원했는지 짐작된다.

그 왕이 현대로 와 시장과 기관장이 돼 제를 지낸다. 올 한해 제주의 경제, 정치, 문화의 밭이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하며 낭쉐를 몬다.

오늘날 즐겨먹는 설렁탕의 유래가 선농제에서 고기를 나눠먹던 풍습에서 나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제주에서도 입춘굿이 끝나고 나면 소 한 마리를 잡아 온 백성이 나눠먹었다고 한다. 요즘 행해지는 입춘굿에서 백미로 꼽히는 ‘입춘국수’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고기국물 대신에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찾다보니 국수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고기국물’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입춘 굿놀이를 맡아 진행하는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가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고기국수를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올해엔 농경의 신 ‘자청비’가 낭쉐를 몰고 거리행렬을 나서 색다른 볼거리를 자아낸다.

제주굿에 등장하는 풍농신은 여럿 있지만 그 중 자청비는 씨앗을 가지고 오는 신이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하늘에서 씨앗을 얻어 온 자청비는 특히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여신이다.

이번 축제에서 ‘자청비’를 뒤따라 걸궁패를 한데 엉켜 놀며 과거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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