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밀회를 목격한 헤파이스토스를 그린 그림. Paris Bordone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영국 대영박물관).
이집트의 피라미드 (출처. blog.naver.com/zooz0204)
<자청비>, 강요배 그림. 세경(농경)본풀이에 등장하는 자청비는 농경신으로서 제주신화 속에서 농사에 관한 모    든 것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맑고 고운 미곡만을 제물로 받는다.
인도의 혹소(출처. blog.naver.com/parangus).

<김정숙의 제주신화> ⑦ 신화는, 역사 이상의 역사다

신화는, 마치 헤파이스토스가 바람난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를 현장에서 잡아내기 위해 쳐둔 보이지 않는 청동그물처럼, 사회를 훨씬 더 본질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의미망이다.
신화와 신화적 사유들은 브로델이 말한 ‘장기지속의 지리적 시간이라는 기후, 지리 등의 자연적 조건과 그것에 의해 형성된 관습, 의식구조’이며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인간들에 대한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제대로 된 종합, 의미심장한 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밀회를 목격한 헤파이스토스를 그린 그림. Paris Bordone
자연환경은 삶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인류는 그들이 처한 자연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문화를 창조한다.
각각의 신화는 인류가 서로 다른 자연환경으로부터 획득한 경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일반적으로 신화는 해당사회의 조건과 맞물리면서 어떤 의도를 가진 금기나 찬양의 모티브를 가지게 되며, 지역마다의 고유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집트의 고양이 숭배
 
이집트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라는 어휘 하나는, 신화 속의 소재의 하나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사회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새로운 인식의 장을 열어갈 수 있는 무한한 열림의 어휘가 된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꿈의 해몽에 관한 파피루스를 보면 ‘커다란 고양이’를 꿈에서 보는 것은 ‘대풍작’을 의미하며, 이 두 어구는 매우 유사한 음소와 음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곡물들을 없애 버리는, 농사의 천적인 쥐를 없애 주는 고양이에 대한 이집트인의 숭배가 그대로 들어난다. 생산되는 모든 곡물들을 지켜주었던 고양이는 왕들 옆에 그들과 함께 미이라로 보존되기도 했다. 

▲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영국 대영박물관).
이집트는 사막과 홍해, 지중해로 둘러싸여 외부의 침입을 거의 받지 않았다. 게다가 나일 강의 주기적인 범람이 만들어내는 풍요 속에,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을 거치며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희망이요, 절대 과제는 현실의 풍요로운 삶이 죽음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 죽어서도 사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자연환경은 그들의 염원을 상당부분 이루어주었다. 고온건조한 사막의 바람은 죽은 사체를 ‘썩기 전에 말라붙게’ 하여 영원히 존재하게 해주었다. 왕들은 죽어서도 자신의 육신만 보존하고 있으면 다시 영혼이 들어와 현실의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자신의 사체를 미이라로 영구보존하게 했다.
무덤 속에는 영혼이 다시 깃들었을 때 필요할 음식, 의복, 화장품, 필기도구, 가구, 운송수단인 배, 심지어 액세서리까지, 현세 삶의 모든 것들을 함께 부장했다. 죽음 속에도 그들은 풍요로운 도시를 세웠고 이 도시들을 지배하는 권력과 영광이 계속될 것을 염원했던 것이다.

▲ 이집트의 피라미드 (출처. blog.naver.com/zooz0204)
반면 메소포타미아는 탁 트인 개방된 지형 때문에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의 패권시대, 아시리아, 페르시아의 침략, 헬레니즘, 아랍화를 거치며 수많은 국가들이 세워지고 사라지는 시련을 겪었다.
 
빈번한 전쟁을 겪어야 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 죽음은 도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것이었다. 현실은 늘 두려운 것이었고, 제발 현실의 삶에서만이라도 편안히 쉴 수 있기만을 바랬다.
이런 상황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신들 역시, 매일 전쟁에 나가고 도시를 수호하고 수로를 정비하는 일로 피곤에 찌든다. 메소포타미아 신들은 편히 쉬는 것, 조용해지는 것이 소원인 신들이다. 죽은 이후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그래서, 매장도시와 매장의 문화들이 거대하게 들어선 이집트와는 달리, 죽음과 관련된 문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인도의 소 숭배
  
힌두교에서의 소 숭배도, 인도라는 사회의 맥락을 읽게 해준다.
인도의 암소는 ‘어머니 암소’로 숭앙된다. 소의 이름도 지어주고 소와 이야기도 나눈다. 꽃과 구슬로 소를 장식하기도 한다.

   
인도의 북부는 건조한 기후다. 데칸고원은 사바나 기후고, 남부는 열대몬순 기후다. 인도의 혹소들은 이런 인도의 이질적인 기후들에 가장 잘 적응된 토종소이다. 이 소들은 낙타처럼 혹에 에너지를 저장해두면서, 조금 먹고, 사료나 물이 없이도 오래 견딘다.
 
인도의 토종 혹소는 농경에 다른 어느 동물보다 적합했다. 당나귀나 노새, 낙타는 높은 온도를 견뎌낼 수 없고 물소는 딱딱한 밭에서 발이 꺾여 맥을 못 춘다. 하지만 이 토종 소는 딱딱한 밭은 물론 물이 흐느적거리는 수전에서도 강한 운반력을 가졌다. 그 뿐인가! 고기와 가죽을 제공했고 똥까지도 비료나 건축 재료, 또 훌륭한 연료가 되었다. 슬슬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네의 지저분함도 쓸어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불규칙한 인도의 몬순의 주기가 정상화되었을 때 농경을 하려면 아무리 급해도 절대로 소를 잡아먹지 않고 남겨두어야 더 많은 사람을 아사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삶의 절실한 필요들이 소를 숭배하도록 한 것이다.

▲ 인도의 혹소(출처. blog.naver.com/parangus).
사막의 돼지 혐오
 
사막의 종교들은 돼지를 먹지 말라 한다.
스텝이라는 덥고 건조한 사막지역에서 돼지의 사육은 위협적인 투자가 된다. 비활동적인 돼지는, 초원의 풀을 무리지어 차근차근 뜯어먹지도 않고 다섬유질을 소화할 능력이 있는 초식동물도 아니다. 물이 없으면 고온과 직사광에 열사하기 쉽다.
 
서열건조한 기후에서 그늘이 있는 집을 짓고, 기온을 조절해 주고, 사람이 마시기에도 부족한 물과 사료를 주면서 돼지를 사육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투자가 아니다. 또한 이렇게 고가로 키운 돼지는 강한 결속력을 요구하는 사막이라는 환경에, 집단 간 위화감과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사막의 조건이 돼지 혐오나 거부의 문화를 형성시킨 것이다. 
 
제주신화의 돈육 금기
 
제주도의 돈육 금기도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맥락이 된다. 
제주신화에서 농경신은 여신이며 본향당신인 경우가 많다. 보통 이 여신은 돈육 금기를 지키는 맑고 고운 정결한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 <자청비>, 강요배 그림. 세경(농경)본풀이에 등장하는 자청비는 농경신으로서 제주신화 속에서 농사에 관한 모 든 것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맑고 고운 미곡만을 제물로 받는다.
제주신화를 보면, 주로 해안마을의 여신들이 돈육 금기를 어기는 것이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 분산을 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이 육식 금기라는 제주신화의 화소는 제주의 자연환경, 생산형태, 마을의 형성과 분리, 문화의 차이,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복합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농경사회로 가는 제주에서 돼지는 소와 마찬가지로 잡아먹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동물이었다. 사람들의 배설물과 음식물 쓰레기, 잡초는 ‘통시’ 속 돼지들의 활발한 움직임에 의해 훌륭한 거름이 되어 제주의 척박한 땅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안마을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다양한 생필품의 구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넓은 바다와 해산물이 중요했다. 밭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고, 맛 좋고 질 좋은 돼지를 포기할 이유도 없었다.

해안마을의 여신들이 거름을 공급하는 돼지를 먹어버리는 것은 농경문화의 본질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식성, 본성이 다르니, 그들은 싸우며 살림을 가른다. 마을이 분리되는 것이다.  

한편 육식의 남신은 수렵문화를, 미식의 여신은 농경문화를 상징한다. 이들의 살림 분산 역시 동물들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수렵문화와, 농사를 위해 먹지 말고 남겨두어야 하는 농경문화 간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산간과 해안마을 사이에는, 돼지는 ‘먹지 말아야 할 것’과 ‘먹어도 되는 것’ 이라는 구분이 생겼고, 이를 통해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내적 결속력을 강화시키면서 서로 대립하게 된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해발고도 200~600m 내에 분포하는 중산간마을의 반농반목민들은 유교를 받아들여 양반임을 내세우며 해발고도 200m 이하의 해촌(갯마을)을 ‘포촌(浦村=民村)이라 불렀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알뜨르(아랫마을)보재기(鮑作人포작인=어부)’라며 천시하였다.
반농반어민인 포촌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문화변동에 둔감한 유교문화지대인 중산간마을 사람들을 ‘웃뜨르(윗마을) 촌놈’이라며 비아냥거렸다.

결국 신화 속의 이런 화소들은 중산간마을과/해안마을, 농경문화와/해양문화․수렵문화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는 유교중심의 문화와/무속중심 문화, 권위주의와/개혁주의, 양반과/상민, 남성중심적인 문화와/여성중심적인 문화와 엮이면서 나타나는, 현실 삶의 다양한 갈등의 고리들을 읽게 하는 것이다.

마냥 지켜져 온 습속을 과감히 깨는 여신들
 
재미있는 것은 주로 임신을 한 해안마을의 여신들이 돼지고기 냄새를 풍긴다거나, 돼지고기를 먹고 온 것이 화가 되어 ‘땅 가르고 물 갈라’ 이혼하게 되는 것으로, 제주신화에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는 굳어진 습속을 깨고,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고 마을을 분리, 확산하고 있는 중요한 기능들이 여신들에게 맡겨지고 있는 제주신화의 고유함을 보게 한다. 

어업이 삶에서 중요해지면서 돼지고기는 이제 먹어도 괜찮은 것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이 기존사회의 질서였다. 
그녀는 그 관습을 깬다. 임신을 한 여자의 몸이 철분과 질 좋은 단백질, 엉뚱한 음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들은 임신하고서 갑자기 먹고 싶어진 돼지고기를 찾아 나섰고, 임신한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섭취한다.
너무도 확고부동하게 지켜지는 관례라서 아무도 감히 저항하지 못하는 것에 그녀는 저항한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이제는 따르지 않아도 되거나 오히려 거부해야 하는데도 무섭게 지켜지고 있는 관례, 불합리한 습속들을 이 여신들은 과감히 깨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제주신화는 시대적, 공간적으로 또 개별적, 집단적으로 사회의 맥락과 조응하면서 로고스와 접합되고 파토스로서 개성화된 체험이다. 그렇게 신화와 현실은 서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제주의 삶과 사회를 엮어냈던 것이다.

노엄 촘스키가 말했듯 모든 형태적 구조의 총체들 뒤꼍에는 서로 상이하고 도저히 알 수 없게 보일지라도 번역을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토대, 맥락이 존재한다면, 신화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래서 신화는 역사 이상의 역사다. 필요에 따라, 지배논리에 따라, 패권을 위해, 입맛에 맞게 쓰여 지곤 했던 역사, 그 이상의 역사일 수 있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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