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머리해안으로 기행을 떠났다. 용머리는 제주섬에 최초로 만들어진 오름이다. 우리 가족이 서있는 곳에서 오른쪽 바닷가가 용머리 화산활동 과정의 세번째 폭발을 일으킨 화도의 위치다.
산방산 정상에서 바라본 용머리의 모습이다. 마치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재미있는 전설을 품고 있는 곳이다.
용머리응회환에 남은 사층리에서 화산재, 자갈, 화산암괴 등 크기가 다른 입자들이 골고루 발견된다. 이들은 화산쇄설류가 흘러내릴 때 퇴적되었다.
화산쇄설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다량의 화산쇄설물이 수증기와 뒤섞여 끈적끈적한 상태에서 화산체의 경사면을 타고 빠르게 흘러내린다.(학원세계대백과사전에서 발췌)
길의 왼쪽에 산방산 지반에서 용머리 응회암이 분포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사실로부터 용머리 응회환이 먼저 형성된 이후, 그 속을 산방산 조면암이 관입했음을 알수 있다. 사진은 몇 해 전 필자가 강정마을 주민들과 도보순례에 참가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용머리응회환에서 세차례 폭발이 일어났던 화도의 위치를 표시한 지형도다. 폭발이 일어났던 화도 부분은 대부분 파도에 의해 침식되었다. (손영관 교수의 논문에서 발췌)
용머리응회환 외벽에서 사층리의 방향이 변하는 부분이 쉽게 발견된다. 이는 폭발할 때 화도의 위치가 변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태욱의 지질기행 5> 용머리응회환, 이동하는 화구가 남긴 진기한 예술품

▲ 용머리해안으로 기행을 떠났다. 용머리는 제주섬에 최초로 만들어진 오름이다. 우리 가족이 서있는 곳에서 오른쪽 바닷가가 용머리 화산활동 과정의 세번째 폭발을 일으킨 화도의 위치다.

눈발이 날리는 날 사계리로 기행을 떠났다. 제주도 초기 오름이 만들어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둘러보기 위함이다.

서귀포 시내를 벗어나 안덕면에 경내에 이르면 수문장처럼 제주도서남부를 지키고 있는 산방산이 눈에 들어온다. 산방산은 점성이 높은 조면암이 분출되어 형성된 화산으로, 산 전체가 한 덩어리로다. 가운데가 우뚝 솟은 모습이 마치 종(鐘)과 같아서 종상화산(鐘狀火山)으로 분류되는데, 최근 연구로 이 산은 약 80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종달 설화,  용을 닮아 생긴 전설

산방산에서 바로 남쪽 해안을 바라보면 바다로 돌출된 능선이 보인다. 그 모양이 마치 용의 머리가 바다로 나아가려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용머리라고 부른다. 용머리는 화산재를 비롯하여 화산쇄설물들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도넛 모양의 응회환이 파도에 그 동쪽 대부분이 유실되고 그 일부만 남은 것이다. 용을 닮은 그 기이한 형상 때문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 산방산 정상에서 바라본 용머리의 모습이다. 마치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재미있는 전설을 품고 있는 곳이다.
 

천하를 얻은 진시황이 제주도에 왕후지지(王侯之地)가 있어 제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진시황은 풍수에 능한 고종달을 보내 그 맥을 끊어버리라고 명하자, 고종달은 왕후지지가 산방산에 있다고 판단하여 용의 머리 부분과 잔등이 부분을 끊어 그 맥을 끊었다. 그러자 바위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산방산은 신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리하여 제주도에는 왕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용머리는 실제로도 꼬리부분, 잔등이 부분의 바위가 가로로 끊겨져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용머리 둘레를 따라 들어가면 오랜 시간동안 자연이 흙을 빚고 파도와 바람을 사용해 다듬어 만들어놓은 다채로운 문양을 감상할 수 있다. 화산암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뒤로 하더라고 선과 면을 자르고 붙인 듯 구석구석에 요철을 새겨 놓은 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푸른 바다와 형제섬, 산방산을 배경으로 진기한 작품 속에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방문객들은 행복하다. 2년 전에는 드라마 '추노'가 이 일대에서 찰영되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도 자연이 남긴 절경 때문이다..

경상대학교 손영관 교수는 지난 1995년에 용머리해안을 조사하여 <제주도 용머리응회환의 구조와 층연속체 : 이동하는 화구로부터의 순차 퇴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내가 가진 논문이 영문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은 용머리해안이 생성될 당시 응회환의 퇴적 및 침식이 진행된 방향을 분석하고, 화산활동이 일어날 당시에 폭발이 자리를 옮기면서 일어났다는 것을 밝혔다. 용머리응회환의 형성과 관련하여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텍스트라 이를 만하다.

 

▲ 용머리응회환에 남은 사층리에서 화산재, 자갈, 화산암괴 등 크기가 다른 입자들이 골고루 발견된다. 이들은 화산쇄설류가 흘러내릴 때 퇴적되었다.

 

용머리응회환이 형성되기 전 이 일대는 얕은 물가였다. 주변의 상방산과 형제섬도 만들어지기 전이다. 그런 어느 날, 해저 지하에서 마그마가 솟아오르며 바닷물을 뜨겁게 가열했다. 마그마와 접촉한 물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며 화산재(입자의 지름 2mm 이하)와 자갈(입자의 지름 2~32mm)과 화산암괴(입자의 지름 32mm 이상) 등을 쏟아냈다. 폭발이 일어날 때, 입자가 작은 화산재는 비교적 멀리까지 날아가지만, 입자가 큰 화산암괴는 화도와 가까운 곳에 퇴적된다.

 

▲ 화산쇄설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다량의 화산쇄설물이 수증기와 뒤섞여 끈적끈적한 상태에서 화산체의 경사면을 타고 빠르게 흘러내린다.(학원세계대백과사전에서 발췌)
화도를 뚫고나온 화산 쇄설물은 수증기를 흠뻑 포함하고 있었다. 화산쇄설물은 수증기가 응결된 물방울, 하늘에서 내린 비 등과 뒤범벅이 되어 분화구 주변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렸는데, 이 같은 분출을 화산쇄설류라고 한다. 이때 흘러내린 화산쇄설류가 쌓인 퇴적층 위에 비스듬한 줄무늬를 만들었는데, 이를 사층리라 한다. 화산쇄설류가 화도 중심에서 경사면을 따라 흘러갔기 때문에 용머리 응회환에 세겨진 줄무늬는 화산쇄설류가 흘러간 방향을 지시해준다.  

그런데 당시는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었는지, 큰 비가 내려 응회환 위에 개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개울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퇴적물질들을 깎아내면서 하도(개울)를 형성했다. 그러다가 화도의 위치가 바뀌면서 다음 폭발이 일어났다. 처음 폭발에서와 비슷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화산쇄설류가 이미 쌓여있는 사면에 새로운 흔적을 더했다. 화구의 위치가 변했기 때문에 화산쇄설류가 남긴 사층리의 방향도 변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화구에서 세 차례의 폭발이 있었다.  

▲ 용머리응회환에서 세차례 폭발이 일어났던 화도의 위치를 표시한 지형도다. 폭발이 일어났던 화도 부분은 대부분 파도에 의해 침식되었다. (손영관 교수의 논문에서 발췌)
현재 용머리응회환은 산방산 앞으로 돌출된 작은 곶에 불과하지만, 처음 생성될 당시에는 지금의 산방산 바닥은 물론이고 이 일대 전역을 뒤 덮을 만큼 큰 규모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응회환이 파도에 침식되어 일부만이 남아 있다. 침식작용은 지층의 내부를 노출시켰기 때문에 응회환의 내부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용머리응회환이 마치 의학에서 해부학 실습실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 상방산과 용머리의 선후관계

산방산과 용머리 사이에는 사계리에서 화순으로 향하는 해안도로가 놓여있다. 도로를 만들며 절개된 부분을 통해 산방산과 용머리 응회환의 선후 관계를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산방산 용암돔의 맨 아랫부분에서 용머리 응회환에서와 같은 화산쇄설암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용머리응회환이 먼저 형성되고 그 위를 산방산 조면암이 관입했다는 증거가 된다.

제주도 최초의 화산활동에 의해 서귀포층이 형성된 시기기 약 100만 년 전이고, 산방산 용암돔이 형성된 것이 약 80만 년 전의 일이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용머리응회환은 80만 년 전에서 100만 년 사이에 만들어진 화산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에서 만들어진 오름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여겨진다.

 

▲ 길의 왼쪽에 산방산 지반에서 용머리 응회암이 분포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사실로부터 용머리 응회환이 먼저 형성된 이후, 그 속을 산방산 조면암이 관입했음을 알수 있다. 사진은 몇 해 전 필자가 강정마을 주민들과 도보순례에 참가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2. 화도이동의 증거들

 응회환에서 관찰되는 사층리는 환산쇄설류가 대체로 동에서 서로 흘렀음을 지시한다. 따라사 화산활동을 일으킨 화구의 위치는 현재 용머리응회환의 동쪽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가로줄무늬의 경사각이 서로 나란하지 않은 구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화산쇄설물이 흘러내려온 방향이 변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화산쇄설물이 화도 주변에서 사면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같은 지점 위를 흘러간 화산쇄설물의 이동 방향이 변했다는 것은 화산폭발이 일어난 화도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줄무늬가 비스듬한 방향으로 직선형으로 진행되다가 U자형으로 오목하게 아래로 내려간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빗물에 의해 하도가 만들어진 이후에 이후 다음 폭발에서 만들어진 화산쇄설류가 함께 분출한 수증기에 젖었거나 빗물과 함께 섞여 끈적끈적해진 후, 하도에 고여 굳어진 것이다. 화산의 폭발과정에 시간적 단절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 용머리응회환 외벽에서 사층리의 방향이 변하는 부분이 쉽게 발견된다. 이는 폭발할 때 화도의 위치가 변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손교수를 이런 자료들로부터 용머리응회환은 화도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의 순차적 화산폭발이 있었고, 그 때 마다 화구의 이동이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이 일대 지반이 불안정한 탓에 화도가 쉽게 바뀌며 폭발이 진행되었고, 그 영향으로 용머리의 모양이 독특한 구조를 띄게 되었다. 그리고 응회환이 수십만 년 동안 파도에 의해 깎이면서 남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곶 모양으로 남게 되었다.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