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 칼럼> 日 반도체회사 엘피타 도산이 갖는 의미

엘피타(エルピ?ダメモリ株式?社, Elpida Memory) 라는 회사가 2월27일부로 망했다.
일본 회사 하나 망한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 할런지 모르지만, 이 회사가 망한 것이 시대의 막을 내리고 또 새막을 올리는 순간이 든다고 생각이 되여진다.

엘피타(Elpida)라는 회사는 반도체 DRAM 를 생산하는 회사이다.
DRAM은 컴퓨터 휴대폰 디지카 TV등등의 전기 전자제품에 기억기능을 하는 부품이다. DRAM을 가르켜 '산업의 쌀' 이라고 말 할 정도로, 가전제품 전자기기에 없어서는 않될 중핵 부품이다. 이 DRAM이 없으면 오늘의 각종 기계가 존재하지 못하는 그런 아주 중요한 곳에 중요히 쓰여지는 부품인 것이다.
1980년대 반도체 DRAM은 일본 기업이 세계 70% 이상을 석권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면서 시들시들 해지기 시작하면서, 너도 나도 발을 빼기 시작했다. 한국의 삼성, 하이닉스, 타이완 기업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채산이 안맞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산업의 쌀' 이라고 불리우는 DRAM를 그냥 버린다는 것은 나라가 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나중에 큰 코 다칠 우려가 있다고 느낀 기업및 정부가, 각 기업이 가지고 있던 DRAM를 한곳 모아서 만든 회사가 바로 '엘피타' 인 것이다. DRAM에서 일본에 남은 유일한 회사이다.

기업만 모인 것이 아니라 정부도 돈을 돈을 넣었다.
일본 정부까지 돈을 넣은 국책회사가 손을 들고 만 것이다.
망해다고 하면서 망한 원인의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삼성에 있다면서, 여기를 봐도 삼성이요, 저기를 봐도 삼성이다. 삼성은 세계 시장을 약40%이상을 가지고 있고, 한국의 하이닉스는 약25%이상의 가지고 있다. 둘을 합친 한국의 점유율은 세계의 약70% 정도이다.
그러면, 왜 삼성은 되는데, 이 회사는 되지 않았을까?
제품 특성에 있다. 우선 DRAM은 실리콘 사이클 이라고 있다. 경기가 좋은때와 나쁠때가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주기가 올랐을때는 물건이 없어서 난리가 나고, 주기가 밑바닥에 왔을때는 물건이 남아돌아 재고로 죽여준다. 또 사이클이 한번 돌때마다 다음 세대 제품이 나온다. 1M 제품에서 2M 혹은 4M 제품으로 버젼업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그 사이클 주기가 4년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더 짧다. 반도체 특히 DRAM은 사이클이 맨 밑바닥에 왔을때 다음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거액의 설비투자를 해서, 사이클이 맨 위에 왔을때 대량공세로 한탕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이클이 밑으로 돌때는 다음을 위해서 준비하는 그런 사이클이 있는 산업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다. 반도체 특히 DRAM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한탕주의에 딱 맞는 산업이라고.

삼성은 가능했고 일본은 불가능한 것은, 삼성은 여러 제품들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가 밑에 왔을때는 휴대폰이 잘 나가서 현찰이 들어와 있어 대량투자가 가능하고, 휴대폰이 시들시들하면, 반도체가 물건이 없을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량투자가 가능한 것이다.
특히 일본은 회사 사장에게 큰 힘이 없다. 월급쟁이 사장이다. 한국은 회장이다. 회장의 강력한 리드쉽으로, '내가 다 책임 질테니, 밀어' 라는 명령 하나에 밀고 나가서 성공이든 실패를 해야 되는 장사가 반도체 장사인 것이다. 월급쟁이 사장과 한국의 회장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최근에 높아진 일본 엔, 엔고도 이 회사의 파산에 한몫을 한 것이다. 아무리 싸게 만들어 봐도 높아진 엔고 때문에 한국산에게 가격면에서 당하질 못한 것이다.

일본에서 DRAM를 생산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DRAM은 주변에 있는 각종 산업과 같이 수준이 높아져야, DRAM도 수준이 높아진다. 앞으로 일본에서 DRAM를 생산하지 않으면, 일본의 주변 기기및 원료 산업의 기술력도 같이 쇠퇴하고 마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또 DRAM 생산에서 만들어지는 자체 기술력이 다른 산업에서 응용하는 것이다. DRAM 기술이 다른 산업에서 쓰여지고 있다. 만약 DRAM이 없어지고 그 기술이 없어진다면 그 기술 배워서 써먹던 다른 산업도 같이 쇠퇴 되는 것이다.
일본이 또 일본 정부가 이걸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지금 부채액이 너무도 어머머마하기에 손을 못 넣은 것이다(부채액 4480억엔, 제조업에서는 사상 최고액).
그럼 이 회사가 망했다는 것은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일본이 디지털 산업에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고 말 할 수 있다. 한시대의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1960년대 80년대까지 그 유명했던 일본의 가전산업이, 이제 디지털이 되면서 손을 들기 시작해서, 막 내림이 시작했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송구스럽지만 필자와 DRAM과의 관계도 추기해 본다.
필자는 1986년 龍谷대학 대학원 경영학연구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석사 논문 제목이 「일본 반도체기업의 DRAM 제품 전략」이다.

지도교수는 가토 요시오(加藤 義郞)교수님이시다. 가토 교수님은 본래 대학에 계셨분이 아니시다. 공학박사로서, 마쓰시다 전자(松下電子, 상표명으로 내쇼널, 파나소닉)에서 반도체 생산의 총 책임자로서, 마쓰시다의 반도체를 성공시킨 장본인 이다. 그 성공을 높게 평가받아, 대학으로 모셔져서 교수님이 되셨다.
대학원 제자 제1호생이 바로 필자였다. 제자 1호생이기에 교수님의 많은 사랑과 채찍을 받았다. 사실 입학당시 나는 반도체가 무엇이며, DRAM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나를 일본의 반도체 대가중에 대가가 1:1로 가르치신다.

교수님이 회사에 계실때 당시 세계 최고 첨단의 공장을 설계, 공사중에 회사를 그만두시고 대학으로 오셨다. 대학으로 오시면서 가장 믿고 사랑한 후배를 책임자(공장장)으로 맡기시고 그만 두셨다. 항상 그 최고 첨단의 공장을 보고 싶어 하셨다.

▲ 신재경 세이비(成美)대학 교수.

교수님과 필자, 둘이서 공장견학을 갔다. 도야마(富山)현 우오쓰(魚津)시.말 그대로 무인무진의 공장이었다. 외부인사가 제조현장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 또 외국인이 들어오는 것은 더욱더 처음이란다. 교수님이 제일 믿는 후배가 제일 높은 자리 공장장이시니 가능한 일이었다. 귀중한 견학을 했다. 그 공장장은 그 도시(魚津시)에서 아마도 서열 넘버1 으로 모셔지고 있는 것 같았다.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지금도 디지털과 아나로그에 대한 강의는 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가끔 고등학교에서 의뢰가 온다. 특별 강의를 부탁한다고. /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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