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⑪ 제주의 뱀신앙

제주에서는 곡물의 신, 재복의 신으로서 뱀신앙이 흔하다. 제주도의 일반신, 당신, 조상신에 고루 뱀신이 결합되어 있고 그것은 뱀신앙이 그만큼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만8천 신이라는 모든 신들을 청하여 두 이레 열나흘 동안 이루어졌다는 제주의 큰굿은 제주사람들의 우주관, 자연관, 삶의 지혜가 그대로 담겨있는 사료이다.

큰 굿은 관혼상제에 대한 절차와 방법들을 알려주는 생활지침이며, 노동과 기원이 어우러지는 노래, 놀이와 춤을 배워주는 문화예술이다. 대구법 의인법 환유와 은유 등을 통한 의사소통의 절묘한 방법을 배워주고, 슬픔과 기쁨 등 인간감정을 나누고 다스리는 지혜와, 무엇을 선택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의 철학 등이 굿을 하는 중에 술술 풀려 나온다.

현란한 몸놀림과 무구의 소리들 중에 자연, 사물, 사람들, 모든 대상들에 항상 조심하고 정성을 다하자는, 근본적인 청유도 멋있다. 더군다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들을 제시해 준다.

이 큰굿을 할 때 제차에 따라 예외 없이 집안의 부를 이루게 해주는 뱀신의 이야기인, 칠성본풀이를 구연한다. 하나의 신을 청해서 하는 작은굿에서도 칠성본풀이가 청해지는 경우가 많다. 뱀신은 마을의 당과도 밀접하다.

▲ 왼쪽. 제주큰굿의 칠성본풀이 때 쓰이는 칠성(현용준 사진), 오른쪽. 집밖에 모셔진 밧칠성(강정효 사진).

본(本)을 푼다는 뜻의 ‘본풀이’는 신의 내력담, 즉 신화를 말한다. 곡물을 지키고, 부자가 되게 해주는 이 칠성본풀이의 뱀신은,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집안의 고팡에는 안칠성을, 뒷뜰에는 밧(밖)칠성을 곡신과 부신으로 너도나도 모시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토산여드렛당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의 마을당으로 뱀신을 당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제일이 매 월 매 여드렛날(8일, 18일, 28일)에 이루어지다 보니 여드렛당이라 불려진다.

▲ 토산리 여드렛당. 제일이 8일, 18일, 28일이어서 여드렛당이라 한다. 제주도의 전 지역에 전승되고 있어 여드렛당계로 구분되기도 한다.

산신이나, 농경․치병신, 해신이 중산간이나 해안에, 각각 적합한 공간적 분포를 이루고 있음에 반하여 이 여드렛당은 제주에 전도적으로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치마 속을 따라 다닌다는 이 뱀신은 딸에서 딸로, 즉 모계계승의 형식으로 모셔져 가는 신이라는 뚜렷한 특징이 있고, 잘 모시지 않았을 경우 벌을 준다고 여겨, 재앙신적 성격이 짙다.

이런 뱀신앙은 현대에 와서 생김새의 흉물스러움과 함께 미신으로 폄하되거나, 이브를 유혹한 악의 이미지로 바꿔지면서 그 다양한 의미들이 상실되고 왜곡되었다. 뱀이 여자들의 치마폭을 따라다닌다 하면서 이 신앙이 각별했던 표선이나 토산, 김녕의 여성들이 결혼을 할 때 불리한 점으로 작용했고, 심지어는 마을 어린 학생들이 제주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하숙집을 구할 때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계속>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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