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주멩기(좌)                           
아득한 옛날 신비의 섬 제주에는 여신들이 많이 살았지. 이 땅을 사랑한 여신들은 이어달리기를 하자고 했어(우)
창조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먼저 달렸어(좌)         
풍요와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이어받아 애기를 점지해주는 삼승할망에게(우)

<김정숙의 제주신화> 13 신화 - 제주, 제주여성의 원형

신들의 이름에 띄어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신화학에서 신화 속 이름들은 이름 이전에, ‘속성’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① 설문대할망, 영등할망, 삼승할망. 

‘여성’ ‘한국여성’ 이라는 보편성과 함께, 제주의 여성들은 분명 그녀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다. 제주여성들이 가지는 부지런함, 무뚝뚝함, 강인함, 조냥정신 같은 것들은 제주의 자연환경과 역사, 시대상황 속에서 형성된 집단적인 특성이며, 그들이 가져온 가치기준, 의지, 철학이고 모델, 즉 제주의 원형이다.

제주도 신화에는 이런 원형의 근간이 되는 많은 여신들이 등장하며, 그 역할이나 기능도 매우 중요하게 관념화되고 있다.

<천지왕본풀이>의 총맹부인, <초공본풀이>의 자지명왕아기씨, <이공본풀이>의 원강암이, <삼공본풀이>의 가믄장아기, <삼승할망본풀이>의 삼승할망, <차사본풀이>의 과양생이의처, 강림의 큰부인, <멩감본풀이>의 사만이의처, <세경본풀이>의 자청비, <문전본풀이>의 여산부인, 노일저대구일의딸, <칠성본풀이>의 아기씨 등 많은 여신이 있다.

당본풀이에도 일뤠또, 요드레또, 백주또, 서물한집, 객세전부인, 송씨아미 등 많은 여신들이 등장한다. 조상본풀이에는 구슬할망, 광청아기 등이, 삼성신화에는 삼처자가 있고, 설문대할망도 있다.

제주여성들이 가지는 부지런함, 자율적인 능력, 독립성, 용감성, 객관성, 자신의 내부에 심어 놓은 인간적인 선에 대한 강고한 원칙, 희망과 절망들은 제주의 많은 신들, 백주또, 가믄장아기, 강림의큰부인, 자청비 등을 만들어내고, 상호작용을 나누고 마음속의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더욱 구체화되고 강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각각의 여신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제주의 그림책연구회원들이 공동작업으로 그린 그림들을 소개한다.
소곤거리며 점점 커져가는 주체와 객체, 제주신화의 현재화에 대한 표현들이 공동작업을 거쳐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 

신화 한 조각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되고, 멘델스존의 음악이 되고, 샤갈의 그림이 되었다. 그림, 조각, 연극, 영화, 음악, 만화, 게임, 의식주의 소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탁월하게 형상화하며 접합된 그리스신화와는 달리 아직 우리 제주신화의 형상화작업은 미미하다.

초록주멩기 속에 담겨지고 전해지는 제주를 상상해보며, 덧붙여진 내 글이 귀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깐, 든다. 다양한 형상화작업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 초록 주멩기(좌)                          

 

▲ 창조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먼저 달렸어(좌)        

설문대할망

설문대할망은 제주를 창조한 거대여신이다.
그녀는 500명이나 되는 자손들을 먹여 살리려 죽음을 무릅쓰고 가마솥에 죽을 끓였다고 한다. 척박한 토양에서 머릿수건을 동여 메고 늘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지혜와 힘을 보여주며 자식들을 키워왔던 제주의 어머니들에 다름 아니다. 

제주의 문화는 ‘여성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제주도를 지탱해 온 것은 척박한 땅에서 자손들을 먹이고 입히려 종일 뛰어다니며 물허벅을 마련하고, 애기구덕을 만들고, 갈중이를 만들어 입고, 웡이자랑 노래를 부르며, 조냥의 쌀독을 마련하는 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이것들이 다름 아닌 창조였고 제주의 문화다.

영등할망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영등굿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등할망은 2월 초하루 제주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복덕개’라는 포구로 들어와 열나흘까지 15일 여를 머무르다 우도를 거쳐 돌아간다는 바람과 풍요의 여신이다.

이 기간 동안 영등할망은 한라산에 올라가 오백장군에게 문안을 드리고, 곳곳을 돌며 꽃구경을 하면서 너른 들에 곡식의 씨를, 바닷가에 소라 전복 미역 씨를 뿌려 주고 바닷길을 지켜주는 효험도 뿌려 주며 제주의 살림을 풍요롭게 해 준다고 한다.

제주지역에서는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르며 영등굿을 벌여 영등할망을 대접한다. 특히 영등달이면 ‘바람이 분다’라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바람이 우리 제주에는 불어온다. 그 바람으로 인한 제주만의 멋진 풍광, 이문간, 올레, 안팤거리, 모커리, 정낭, 돌담의 모습들은 그녀가 몰고온 선물인 듯도 싶다.

삼승할망

삼승할망은 인간에게 아기의 잉태를 점지해 주고 해산을 도와주고 생명을 주는 생육의 여신이다. 동해용궁의 딸과 명진국의 딸이 꽃가꾸기 경합을 벌였는데 경합에서 이긴 명진국의 딸이 삼승할망이 되었다. 이 삼승할망은 한 손에는 번성꽃을, 한 손에는 환생꽃을 쥐고 앉아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보며 하루 만 명씩 잉태시키고 해산시키는 신이다.

제주에서는 아이가 잉태되고 출산하여 열다섯 성인이 되기까지 자라는 것은 이 할머니의 소관이라 믿고 있으며,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제주사람들은 ‘할망손이 약손’이라 말하며 배를 쓸어주시거나 이 할머니에게 작은 소리로 ‘아이고 설운 할머님, 제발 우리애기 낫게 해 줍서’ 기도한다.

생명탄생에 대해 경외하고 그 과정에서 겸손함과 조화, 양보의 미덕을 배우며, 그렇게 세상은 지속되어 가리라 믿는 많은 여성들은 이 삼승할망 여신 원형을 많이 보듬고 있는 여성들이다. (계속)/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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