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17 자청비이야기1
 
* 이번 글부터 3,4회분 정도는 신화의 줄거리입니다. 신화의 내용은 현용준, 문무병 선생님의 채록과 책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 고대 신화학에서 신화 속 이름들은 속성을 나타낸다고 하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속성’으로 생각하여, 맞춤법 띄어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청비 신화

자청비는 <세경본풀이>에 나오는 여신이다. 자청비가 등장하는 이 <세경본풀이>는 제주신화로는 보기 드물게 사랑에 관한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인 자청비는 사랑과 농경의 여신이다.

시주가 한 근 모자라 태어난 부족하고 결핍된 존재, 여자

옛날 김진국 대감과 자지국 부인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가재와 전답이 많고 비복을 거느려 부러울 것 없는 살림이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시름이 많았다. 부부는 자식 하나 점지해 달라고 정성을 드렸다.
그런데 시주가 한 근 모자라, 열 달 후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앞이마엔 해님이요, 뒷머리엔 달님이요, 두 어깨엔 금 샛별이 송송히 박힌, 귀여운 아이였다. 자청하여 낳았으니 자청비라 이름 지었다. 

“맨날 빨랠 하니 손이 곱답니다” 는 말에, 빨래터로 가는 그녀

열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자청비에게 베틀을 만들어 주었다. 자청비는 베틀 솜씨가 빼어나 세상에 다시없는 최고의 비단을 짜냈다.

어느날, 자청비는 몸종인 느진덕정하님의 손이 새하얗게 고운 것을 보고 물었다.
“넌 어째서 손이 그렇게 고우냐?”
“맨날 빨랠 하니 손이 곱답니다.”
하님(하녀)의 말을 듣고 자청비는 빨래를 하러 갔다. 마침 하늘의 문도령이 아랫녘으로 글공부를 하러 내려오다 빨래하는 자청비를 발견했다. 둘은 첫 눈에 반했다. 자청비는 부모님을 졸라 남장을 하고 문도령을 따라 글공부하러 들어갔다.

사랑을 쫓아 남장을 한 자청비

그날부터 둘이는 한 솥 밥을 먹고, 같이 앉아 글공부를 하고, 한 방에서 기거했다.
하루는 은대야에 물을 가득 떠다 은저 놋저를 걸치고 두 사람의 이부자리 사이에 가져다 놓고 자는 자청비를 보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문도령이 물었다.
“문도령, 글공부하러 올 때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잠 중에도 이 젓가락을 떨어뜨리지 않게 명심해야 공부를 잘 하게 된다고 하더라.”

그날부터 문도령은 혹여나 잠결에 대야의 젓가락을 건드려 떨어질까 노심초사하여 잠을 설쳤다. 자청비는 마음 놓고 잤다. 결국 글공부하며 조는 문도령의 성적은 자꾸만 떨어지고 자청비는 읽는 것도 일등, 쓰는 것도 일등, 항상 장원이었다.

▲ '자청비' (강요배 그림)

문도령과의 내기

문도령은 무엇이든 이기고 싶었다. 자청비에게서 아무래도 여자맵시가 난다고 의심하게 된 문도령이 수를 썼다.

“이보게 자청도령, 우리 오줌갈기기 내기나 한번 하세!”
문도령은 여섯 발 반이나 내쏘아 갈겼다. 자청비는 대나무 붓통을 하문에 끼우고 끄응 힘을 주어 갈기니 열두 발 반이나 내쏘았다. 씨름도 하고 달리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자청비는 꾀를 내어 문도령을 이겼다. 

눈치 없는 문도령에게 핀잔을 주다

그러던 어느 날 문도령에게 글공부는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서수왕 딸아기한테 장가를 가라는 편지가 하늘 옥황에게서 왔다. 자청비도 따라나서며 둘러댔다. 
“나도 어제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전갈이 와서 돌아가야 하네. 가는 길도 동행하게 됐군.”
둘은 같이 내려오다가 처음 만났던 연화못에 이르렀다.

“문도령, 삼년 같이 공부했으니 묵은 때도 씻을 겸 목욕이나 하고 헤어지자고.”
“그거 좋지. 그런데 넌 어디 가냐, 여기서 안 씻고?”
“무엇이든 너보다는 위였으니, 난 윗물에서 하겠어!”
자청비는 하겠다던 목욕은 않고, 버들잎을 따서 편지글을 쓰고는 동글동글 띄워 보냈다.
“눈치 없는 문도령아, 멍청한 문도령아! 삼년 한 방에서 자고 먹고 같이 살아도 남녀 구별도 못하는 눈치 없는 요 문도령아!”

만단정화와 함께 드디어 사랑을 풀다

버들잎으로 쓴 자청비의 편지를 보고서야 문도령은 알아차렸다. 황급히 옷을 꿰어 입고 자청비를 따라 갔다. 자청비는 부모님께 문도령을 열다섯 아래의 여자아이라 속이고 집안으로 들였다.

자청비는 열두 폭 치마로 갈아입고 단장하여 문도령을 맞았다. 둘은 만단정화를 나누며 한 이불, 한 요에, 잣베개 같이 베고, 연 삼년 속여 오던 사랑을 풀었다. 아침이 되자 문도령은 박 씨 한  알과 얼레빗 반쪽을 꺾어 자청비에게 주면서, 박 줄이 뻗고 딸 때가 되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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