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작업에 한창인 신창범씨. 그는
공사를 시작할 무렵 집 내부. <사진출처=신창범씨 블로그>
공사를 거의 마친 게스트하우스 외관. 옛 주택 느낌이 물씬 난다. <사진출처=신창범씨 블로그>
방수공사와 페인트칠을 마친 게스트하우스 외관.<사진출처=신창범씨 블로그>
공사를 거의 마친 게스트하우스 외관. 옛 주택 느낌이 물씬 난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인터뷰] 구도심 폐가를 게스트하우스로 되살리는 신창범씨

▲ 공사 작업에 한창인 신창범씨. 그는 "거창하게 도시의 재생이 아닌 낡고 퇴락한 집들이 생명을 더하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떠난 제주의 구도심도 조금씩 활기를 띄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이른바 ‘구도심’이라 불리는 제주시 칠성로 일대. 사람이 몰려드는 상가 거리를 조금만 빗겨 나면 골목마다 인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텅 비었다.  

이른 오전, 골목 어귀에서 뚝딱이는 소리가 새나왔다. 소리를 따라 살폈더니 눈 씻고 뜯어봐도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빈집에서 흘러나왔다.

웬 중년 남성 혼자 공사 작업에 골몰해있었다. 주인공은 신창범(47)씨. 그는 혼자서 이 폐가를 게스트하우스’로 고쳐 짓는 ‘건축학개론’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지인이 6년 전 이사 가면서 방치해둔 40년도 더 된 2층짜리 낡은 양옥집. 1·2층 통틀어 100평 규모, 주방 합쳐 방 10개. 이를 본 신 씨는 머릿속에 퍼뜩 구상이 떠올랐다. 일명 ‘나는 목수다’ 프로젝트다.

“제주 시내에는 게스트하우스가 그렇게 많지 않다. 제주의 시작과 종점에 있는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꿈꾼다. 사람들이 모여서 여행 정보를 나누거나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작은 놀이판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말씨에서 제주 냄새가 나지 않아 육지(?) 출신인줄 알았더니 고향이 제주란다. 신 씨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고향을 떠나 지냈다. 지난해 3월 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사표를 내고 28년 만에 고향의 품에 안겼다.

처음 7개월은 올레길만 걸었다. 지근지근, 뚜벅뚜벅 고향 땅을 발로 밟아가며 30여년 묻지 못한 안부를 물었다. 뭍에서 얻은 상처도 제주 바람이 달래줬다.

그러다 덜컥 블로그 활동을 시작했다. 간만에 들여다본 제주의 속살을 차곡차곡 기록으로 담았다. 블로그 이웃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자 싱거운 일상에 맛이 더해졌다. 그렇게 알음알음 제주시 중앙로의 카페 소설에서 커피를 팔기도 했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제주에 산다는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제주의 속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골에서건 도시에서건 느닷없이 마주치는 폐가들. 유명한 관광지라도 그 이면에는 방치된 폐가들이 항상 눈에 띄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건물들도 많았다”

▲ 공사를 시작할 무렵 집 내부. <사진출처=신창범씨 블로그>
숨이 푹 꺼진 무근성 일대와 마주했을 땐 가슴이 아리기까지 했단다. 신 씨는 아주 어릴 적엔 무근성에서 살았고, 초·중학교 땐 두멩이 골목(지금의 일도2동 중앙병원 근처)에서 살았다. 이곳 구도심 골목골목이 친구들과 뛰놀던 기억이 한가득 밴 곳이다. 횃불 든 삼촌들 따라 주전자 들고 문어 잡던 기억도, 벗들과 깔깔대며 바다에서 멱을 감던 기억들이 ‘개발’이라는 이유로 콘크리트로 덮이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제주의 구도심은 활기를 잃었을까.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했다”

“고향을 떠난 자의 부채의식 같은 건데…. 거창하게 도시의 재생이 아닌 낡고 퇴락한 집들이 생명을 더하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떠난 제주의 구도심도 조금씩 활기를 띄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다”

포부는 굳셌지만 막상 손을 대려고 하니 막막했다. 예산이 문제였다. 그는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며 낙관으로 공사를 이어갔다. 빠듯한 예산 덕에 웬만한 공사를 직접 했다. 철거 작업, 미장이질, 방수작업, 타일 시공까지 온전하게 그의 몫이었다.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초반에는 몸져눕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서울서 건축잡지의 편집장을 맡으며 쌓인 ‘안목’이 서툰 손놀림을 받쳐주었다.

▲ 공사를 거의 마친 게스트하우스 외관. 옛 주택 느낌이 물씬 난다. <사진출처=신창범씨 블로그>

 

남자 혼자서 폐가를 게스트하우스로 고치고 있다는 소식이 조금씩 퍼지자 작은 정성들이 모였다. 이따금 소식을 전해들은 벗들도 간식거리며 필요한 물품들을 사 들고 그를 찾았다. 온 김에 팔을 걷어붙이고 신 씨의 작업을 돕기도 했다.

2월 1일 작업을 시작해 두 달에 가까워지자 마냥 흉물스런 폐가도 제법 모양새가 갖춰졌다. “운명이 있다면 이 집은 나를 만나기 위해 지난 6년을 버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던 그의 정성으로 윤을 더해가고 있었다.

작업하는 동안 집 곳곳에서 수십 년은 된 일제 석유난로며, 지금은 보기도 어려운 추 저울, 두렛박 등 유물(?)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집이 두 주인공의 기억을 짜맞춰가는 과정이었듯 신 씨의 건축학개론 역시 기억 저 편의 옛 추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이다.

신 씨는 5월 중순까지 공사는 마무리 짓고 늦어도 6월에는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열 계획이다. 여행자와 제주의 문화예술인들이 만나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그는 말했다.

▲ 방수공사와 페인트칠을 마친 게스트하우스 외관.<사진출처=신창범씨 블로그>
▲ 공사를 거의 마친 게스트하우스 외관. 옛 주택 느낌이 물씬 난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한라산생태연구소, 도서출판각,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아트스페이스씨 등 도내 문화단체들이 구도심 영광의 옛 기억을 되살리고자 속속 제주읍성 안으로 파고드는 가운데, 신 씨의 건축학개론 프로젝트가 이 같은 분위기에 더욱 힘을 싣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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