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저우에 사는 왕(王)과 그의 친구. ⓒ양기혁
하서(河西)의 끝, 과저우(瓜洲) 인근의 사막풍경. ⓒ양기혁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8 둔황으로 가는 길, 열차에서 만난 청년

롱시를 지나면서 차창 밖의 풍경은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왕에게 그것들을 가리키면서 매우 흥미롭다는 뜻으로 말했다.

“쩐 치과이!” 왕이 내 수첩에‘梯田(티티엔)’이라고 썼다. 계단식 밭이라는 것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 남해안을 여행하면서 본 남해의 다랭이논이 생각났다.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로 휴게소나 주점으로 변신하면서 그 계단식 논들이 많이 훼손되고 농사짓기를 포기하여 잡초가 무성한 것을 보고 실망했었는데, 여기 창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장대한 규모의 계단밭은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메마른 산비탈을 일구어낸 사람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을 보는 것같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장감에 젖게 하였다.

란저우가 가까워져 오자 왕(王)은 나에게 황하(黃河)가 보인다면서 내가 앉아 있는 복도에
서 반대편 차창을 가리켰는데 나에게는 계곡만 잠깐 보였을 뿐이었다. 왕은 계속하여 황하에서중국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며, 내 수첩에 ‘황하-중국의 어머니 강’이라고 썼다.
나는 그에게 농담으로 한마디 건넸다.

“푸친허스 써머(아버지 강은 무엇이냐)?”
“메이요우(없다).”
그는 웃으며, 그러나 단호하게 없다고 말한다.

▲ 란저우에 사는 왕(王)과 그의 친구. ⓒ양기혁

곧이어 도착한 란저우에서 왕과 친구는 기차에서 내렸다. 란저우는 깐수성의 성도이며, 중국이 야심차게 벌이고 있는 서부대개발의 핵심도시이기도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와 공장들, 곳곳에 솟아 있는 타워크레인의 모습들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

황하는 칭하이성 내륙 고원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가 란저우를 거쳐 내몽고 지방으로 흘러가고, 내몽고 오르도스 지방에서 크게 만곡(彎曲)을 그리며 남하한 다음 동관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보하이(渤海)만으로 흘러들어 간다.

란저우에서 황하를 건너가면 황하의 서쪽, 즉 하서(河西)지방이 시작되고, 하서의 끝에 둔황(敦煌)이 있다. 그 너머는 옛부터‘서역(西域)’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신장위구르 지역이다.

깐수성은 내몽고와 신장위구르 사이의 고비 사막에서 남동쪽으로 시안 인근까지 길게 뻗어 있다. 그 대부분의 지역은 사막과 황토고원으로 이루어진 불모의 땅이나, 남쪽의 남산(南山)산맥(혹은 기련산맥)에서 몇 개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오아시스 도시를 만들었는데, 란저우의 서쪽 하서지방은 이들 오아시스 도시를 연결하여 서북쪽으로 1000㎞ 이상 이어진 실크로드 동단(東端)의 주요한 통로로서‘하서회랑(河西回廊, Hexi Corridor)’이라고도 불린다.

둔황을 비롯한 하서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실크로드로 알려진 동서교통로의 요충일 뿐만 아니라《사기》에“호(胡)와 강(羌)이 통하는 길”이라고 나와 있는 것처럼 북방 유목민족과 남방 티베트계의 여러 종족들에게도 중요한 교통로로서 문명의 십자로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기차가 란저우를 출발하면서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던 대륙의 광활함을 보여주는 풍경도 어둠 속에 묻혀 가고, 나도 하루를 마쳐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식당칸으로 갔다. 그동안 컵라면이나 빵 같은 걸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식당칸은 처음이다.

메뉴판을 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람들 먹는 것을 보고 주문했다. 밥 한 공기, 돼지고기에 양배추와 향료를 넣어서 볶은 것, 국물이 같이 곁들여 나온다. 식어서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국물은 몇 모금 뜨다가 먹기를 포기하고, 달착지근하게 볶은 돼지고기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다가 보니 음식을 담은 그릇들의 모서리가 대부분 깨져 있었다. 내 것뿐만 아니라 앞자리의 청년과 그 건너 편도 접시든 밥공기든 가리지 않고 모서리 부분이 조금씩 깨져 있었는데, 다들 개의치 않고 식사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릇이 박살이 나서 음식을 담지 못할 정도가 아니면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잠시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모서리 좀 깨져 있는 게 무슨 대수인가, 음식만 맛있게 먹으면 되지.’혹은‘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이런 그릇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하는 서민들의 자포자기라고 해야 할까. ‘거리의 신호등 색깔이 무슨 상관인가, 차에 부딪치지 않고 길을 건너 가기만하면 되는데.’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침대칸으로 돌아와서 늦은 시간이지만 믹스커피 한잔으로 개운찮은 식사의 뒷맛을 씻어내고, 침대로 올라간다. 이제 곧 열차의 실내등도 꺼질 테니까.

내일 아침 보게 될 둔황은 어떤 곳일까. 오늘 밤 꿈속에서 둔황을 그려봐야지 생각하며 이불을 끌어올려 잠속으로 들어간다.

룸메이트 다이스께, 그리고 모래폭풍에 잠긴 둔황 며칠 여행하는 동안 잠자리에 별 어려움없이 잘 잔 편인데, 지난 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였다. 늦게 마신 커피 탓일까, 비좁은 침대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집어 보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만나게 될 둔황을 그려 봐야지 하고 생각해 보지만 알 수 없는 둔황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고,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들만 오락가락하며 잠을 쫓아내는 것 같다.

밤새 뒤척이며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아침 6시면 울리는 핸드폰 알람소리다. 한동안 듣질 못했는데 겉옷을 침대 머리맡에 두어서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알람소리가 6시를 알리니 현지시간은 5시다. 침대에 누운 채 커튼을 젖혀 창밖을 내다보니, 희뿌옇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 하서(河西)의 끝, 과저우(瓜洲) 인근의 사막풍경. ⓒ양기혁

그리고 거기 사막이 펼쳐지고 있었다. 황토흙과 검은 모래가 섞인 사막이 이어지고, 다시 낮은 구릉 지대가 나타나고, 멀리에는 희미하게 산맥이 둘러 싸고 있다. 북쪽으로 고비사막이 펼쳐지고, 둔황 서쪽으로는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으로는 쿤룬산맥과 티벳고원으로 연결되는 광막한 고원과 사막의 한복판을 열차는 밤새 달려왔고, 날이 밝아오는데도, 고비사막으로 이어지는 사막은 직도 계속되고, 군데군데 듬성듬성 자라난 마른 풀포기들은 사막에 동화되어 가는 듯 누렇게 말라가고 있고, 철로와 나란히 서서 전선을 이어 가는 전봇대는 가냘파 보인다.

멀리 뿌연 흙먼지 속에 흐릿하게 마치 사막의 신기루인양 보이던 철구조물들은 어느새 거대한 송전 철탑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끝없이 이어진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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